감정이 휘몰아치는 일이 발생되면
다시 차분함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했던 방법은
동해에 가서 바다를 보고 오는 것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과
푸르고 깊고 검은 바다에
내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고 올 수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 보니
오며 가며 운전하는 시간 동안 생각의 정리도
많이 되었다.
그렇게 몇 번을 다녀온 이후로,
동해 바다를 보고 오는 게 어느새 도피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나는 마음의 회복이 필요할 때면 동해 바다를 바라게 되었다.
아이의 스케줄에, 가족의 스케줄에,
서쪽 끝에 사는 탓에 안 막히면 왕복 6시간
그날의 감정에 따라 바다를 바라고 보고 오는 게
부담이 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이사할 때 바다를 대체할만한
무엇인가를 찾고 싶었다.
물론 아이의 학군에 따른 이사가 더 주된 이유였지만
큰 공원과 호수가 있는 곳으로 조금 더 오버해 이사했다.
이 공원과 호수가
바다를 대체해주기를 바라면서 이사했다.
집 앞에 공원을 나름 열심히 다녔다.
머리를 비우고 공원 한 바퀴를 돌았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면 좀 괜찮아졌다.
하지만 가까움과 익숙함이
더 이상 해소 할 수 없는 무엇인가에
막혀 있는 느낌이었다.
'떠남'이라는 것으로 얻는
그 무엇인가의 느낌은
단순히 집을 떠남 과는 다른 것이었다.
원래 이 글을 쓰기 전에 바다를 보러 갈까 생각하다가
진짜 바다가 보고 싶은 것인지,
해방감을 원하는 것인지,
중요한 건 무엇인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맞는지를 생각했고
그 글을 쓰기 위해 이 글을 열었다.
그리고 원래 생각의 결론은,
마음을 전환하고 회복 탄력을 위한 것이므로
시간을 아끼기 위해 다시 공원을 향해보자였다.
혹은 그 목적에 맞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였다.
다만, 글을 쓰며, 한 해를 돌아보니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원으로 해결되는 마음의 회복 탄력과
동해바다로만 해결되는 마음의 회복이 다르다는 것.
그것은 대체되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을 단련하여 바다를 봐야 하는 강도까지
가게 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바다가 공원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래도 한 켠으로는 안심이 된다.
바다가 해결하지 못하는 그 마음을 마주하게 되면
마음속 바다로 깊게 빠져들게 될 텐데
그 강도가 높여나가면,
언제나 바다는 내 마음의 피난처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