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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leena Aug 07. 2018

3개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남미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의 시간을 쓰고 또 되짚는 여정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종종 미지의 땅덩어리를 꿈꿨다. 낭만이라기에는 지나치게 환상적인 그곳은 추상화에 가까운 이미지로 시작되어 어느새 출처도, 정체도 불분명한 갈증의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한 번쯤’이 ‘꼭 한 번’으로 바뀐 데에는 ‘그녀’의 영향이 컸다. 당시 대학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던 우리는 매주 자신의 여행기를 들려줄 학생을 모집하고 있었고, 그녀는 속된 말로 대어였다. 23살,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떠난 4개의 대륙과 17개의 나라, 혼자만의 1년 5개월은 분명 흔치 않은 경험이지 않나. 이런 여행, 저런 여행, 그런 여행이 다 있다만 그녀는 우리에게 저런 여행, 그러니까 완전히 색다른 경험에 대한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녀가 사랑했다던 남미라는 저 땅, 저 먼 대륙의 황홀함. 길었고, 멀었고, 그래서 특별했던 그녀의 경험은 확실히 기폭제였다. 우리를 남미로 이끈 것은 바로 그 ‘특별함’이었다. 


아니, 사실 열등감이었던 것도 같다. 호기심이라 믿고 싶었고, 말하고 싶었던 열등감이었다. 인턴, 자격증, 취업. 대학 졸업반이 되어 마주한 벽 앞에서 우리는 ‘열에 아홉’인 이들이었다. 언제나 보통의 언저리에서 종종거려야 했던, 가치와 의미가 간절해 어딘가 특별하고 멋진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던 우리였다. 어제와 같은 오늘, 그리고 내일과 같은 모레가 불 보듯 뻔했던 시시하고 숨 막히는 나날이 조금 더 가치 있기를 바랐다.


떠나기로 마음먹었고, 떠났다. 강요와 의무에 따르기보다는, 불확실성의 두려움에 굴복하기보다는 ‘멋’대로 굴어보고 싶었다. 별 볼 일 없는 다짐과 일탈 일지 모르지만 한 길밖에는 몰라서, 그것이 맞지 않은 옷임을 알면서도 벗어던지기가 쉽지 않았던 우리에게는 나름의 발버둥이었다. 



콜롬비아에서 에콰도르를 지나 페루로,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이어 칠레로, 마지막으로 아르헨티나에 다녀왔다. 여기만 아니면 됐고, 지금처럼만 아니면 됐기에 우리의 여정은 동기도 경로도 불분명했다. 하고자 하는 것은 없었고, 해야만 하는 것도 몰라 허둥대기도 참 많이 허둥댔다. 마음과 몸의 고단함을 무시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허술하고 미흡한 점 투성이었다. 경로를 벗어났다 말하기에 어딘가 정석적이고, 즉흥적이라 하기에 대범함은 턱없이 부족했다. 다분히 고생으로 가득 차 있지도 않으며, 자부할 수 있는 개성 넘치는 후일담도 없다. 


어쩌면 그래서, 눈 맞추고 이야기할 시간이 많았다. 요령이 없어 동이 트고 질 때까지 걷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러다 만난 이들과 주머니 속 간식을 나눠 먹었다. 하릴없이 지키고 앉아 있던 술집에서 함께 잔을 부딪칠 친구를 만났고, 늘어져 음악을 듣다 달아오름을 참을 수 없을 때는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 질문하는 것이 두렵지 않아 지고, 묻고 싶어 지는 것이 늘어가는 동안 우리는 이다음에 벌어질 일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대책 없었지만, 모든 순간 온몸으로 부딪힐 수 있었던 무모함에 감사한다.


느릿하게 곱씹고 싶은 기억인지라, 조금은 미련스럽게 붙잡아 두고 싶은 추억인지라 하나하나 천천히 풀어내려 한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도록 이어질지 모를 우리의 쓰고, 또 되짚는 여정의 시작이다.



풍경에 대한 경외보다는 사람에 대한 감탄으로 채워진 글이다. 불확실성과 확실성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기도 하며, 순간의 포착에는 미흡함을 메우기 위한 후의 작업이 덧대어지기도 했다. 사적이고 모호하며, 읽을거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감성도 지성도 부족한 글이기는 하다. 욕심 조금 부려 부디 그 중간 어디쯤이라도 머물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75일이라는, 누군가에는 터무니없이 짧기도 누군가에게는 조금 벅차기도 한 이 애매한 시간 동안 우리는 온전히 우리였다. 그래서 어땠냐고 묻는다면, 무이 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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