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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leena Jan 29. 2020

명물이 되어야 할 버거와 명물이 된 케이블카

후안 말대로 메데인,  밤이 되면 유난히 빛나는 메데인의 판자촌


파묻혀 헤엄치고 싶은 맛을 만나다


메데인에는 서울로 치면 강남과 같다고 불리는 데가 있다. 바로 ‘포블라도’ 일대이다. 세련된 쇼핑센터와 고급 레스토랑, 값비싼 호텔과 호화로운 주거 단지가 가득한 게 꼭 강남의 풍경과 비슷하다고 해서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첫날, 양말이며 속옷이며 사야 할 것들이 잔뜩이었던 우리는 후안의 추천에 따라 포블라도 일대로 쇼핑을 떠났다. 그러나 막상 포블라도 역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쇼핑센터가 아닌 식당이었다. 아침도 점심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탓에 배가 심하게 고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고 많은 포블라도의 레스토랑들은 모두 그림의 떡이었다. 비싸도 너무 비쌌다. 


“이 가격이면 우리 동네에서는 두 끼도 거뜬하겠는데?”



많고 많은 포블라도의 유명 레스토랑들이 그림의 떡이라면, 단순히 제 값을 한다 평하기에는 지나치게 훌륭한 버거를 판매하는 이곳에 가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버거의 크기에 놀라 핫도그를 주문하지 않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 대체 어디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며 동네를 하염없이 돌다가 발견한 곳으로, 카운터 앞에 놓인 몇 개의 의자나 가게 난간에 걸터앉아 포장지에 싸인 음식을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가게였다. 


토마토와 감자 샐러드, 베이컨과 쇠고기 패티 두 장에 치즈 두 장이 알차게 들어찬 ‘슈퍼 햄버거'는 4달러에 불과하다. 직사각형의 모짜렐라 치즈가 덩어리째 녹아내리며 두툼한 햄을 감싸고, 그 위로 감자 샐러드와 얇게 썰어 바삭하게 튀긴 고구마 칩을 잔뜩 얹은 ‘슈퍼 핫도그’는 3달러도 하지 않는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데, 기대 이상의 맛은 더욱더 감사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파묻혀 헤엄치고 싶은 맛이었다. 마음껏 가져다 먹을 수 있도록 비치된 케첩, 마요네즈, 머스터드 등의 소스를 잔뜩 뿌려 한입 베어 물면, 치즈가 햄버거 속에서 또 핫도그 위에서 흘러내리고 짭조름한 햄이 입안 가득 씹힌다.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감자 샐러드. 감자 샐러드는 그저 돈가스나 족발 옆에 달려 나오는 음식이라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을 잠시 반성해 본다. 감자 샐러드는 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차가워 음식 맛을 조화롭게 이끌었다. 감자 샐러드가 이렇게 대단한 양식이었다는 걸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부른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포블라도 역으로 향했다. 그렇게 중요하다고, 꼭 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던 쇼핑은 햄버거와 핫도그가 선사한 감동에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였다. 어둠이 밀려오기 직전의 때, 하늘은 보랏빛과 주황빛이 절묘하게 섞인 아름다운 색으로 덮여가고 있었다. 다리 위를 건너던 우리는 어둠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전망대로 통하는 그 메트로카블레


포블라도 역에 다다랐을 즈음, 저 멀리로 유난히도 반짝이는 불빛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방이 완전히 어두워지면 그제야 제 목소리를 내듯 하나둘씩 불을 밝히고 자신의 존재를 내보이는 메데인의 다닥다닥한 판자촌, 그 풍경. 우리가 서있는 이곳보다 한참 높은 곳에 위치한 그것들은 다닥다닥 한데 모여, ‘빛의 촌'을 이루고 있었다. 


포블라도 역에서도, 메데인 버스 터미널에서도, 메데인 어디에서도 쉽게 보이는 저 높고 넓은 풍경은 흔히 메데인의 조망 포인트라고 불린다. 사람들은 그곳에 올라 낮에는 한낮의 메데인을, 밤에는 한밤의 메데인을 감상한다.


콜롬비아는 극심한 빈부격차가 국가의 대표적 특성 중 하나로 언급되는 나라이다. 주거 환경의 차이, 그러니까 순전히 경제 능력을 구분 기준으로 삼는다면 말 그대로 좋은 동네와 나쁜 동네가 명백히 드러나는 곳이다.


메데인의 대중교통 중 하나인 케이블 카는 도심의 심각한 빈부 격차, 빈민촌과 그렇지 않은 구역의 물리적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높은 곳까지 연결되지 않은 버스나 지하철 노선 때문에 이동이 불편했고, 연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소외감을 발생시키기에 충분했다. 정부는 분열과 더딘 성장세, 그리고 차이가 차별이 되는 것을 방치할 수만은 없었고, 그렇게 메데인 시내를 가르는 ‘메트로카블레’가 탄생했다. 


메트로카블레는 메데인의 모든 시민이 누릴 수 있는 합리적이고 필수적인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확실히 이를 이용해 위아래 동네를 넘나드는 이들이 늘기는 했다. 특히 메트로카블레가 멈추는 윗동네에는 아랫동네와 같이 상점이 들어서고, 공원이 조성되고,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정부의 계획은 성공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시내의 물리적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교통수단이 유사 관광상품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메트로카블레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필수적인 교통수단이라기보다 시내를 조망하기 위해, 야경을 보기 위해 이용하는 관광상품에 가까웠다. 메트로카블레의 이용 가격이 저렴하고 합리적이라는 말은 대부분 관광객들의 입을 통해 나온다.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의 메트로카블레를 타고 비탈진 오르막을 올라 메데인의 밤낮을 구경한다.


경사진 땅을 따라 위로, 또 그 위로 빨간 벽돌 집들이 다닥다닥 늘어선 동네의 불빛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저 거리를 밝히고, 집안을 밝히는 불빛일 뿐이다. 


빛나는 그곳은 우리의 발길을 이끌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삶의 일부가 관광품이 된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생을 유지하기 수단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 순간의 즐길거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잔뜩 불편하고 마뜩잖았기 때문이다. 


마음 놓고 들어 갈 수 없는 포블라도의 값비싼 레스토랑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메데인의 빈민촌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야경을 마주했다. 무엇을 먹고 그리도 밝게 빛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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