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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leena Jan 28. 2020

안녕, 우리는 한국에서 왔어

후안 말대로 메데인, 세상에 단 하나뿐인 분단국가의 이야기 


스스로가 못나 보이던 순간


갑작스러운 폭우로 우리는 하루 종일 호스텔에 갇힌 신세였다. 이른 저녁을 먹자마자 세희는 이층 침대로 올라가 그간 미뤄뒀던 잠에 빠져 들었고, 채연과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으로 한국 가수들의 무대 영상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우리처럼 호스텔에서 빈둥대던 이들을 하나둘씩 소파로 끌어들였다. 각각 브라질과 스위스에서 왔다는 ‘호벤’과 ‘한나’에 우리 둘을 더해 총넷이었다. 


“오늘 뭐 했어? 우리는 비 와서 하루 종일 호스텔에 박혀 있었어.”

“난 아까 물 박물관에 갔다 왔는데, 생각보다 재밌더라.”


호벤의 직업은 중학교 과학 선생님이었다. 메데인을 여행하는 중 근처에 물 박물관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갔다는 그는 호기심과 열정이 넘치는 사람임에 분명했다. 그는 처음 만나는 우리의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이 넘쳤다. 뒤에서 조용히 시리얼을 먹던 한나도 궁금한 게 많은 눈치였다.


너도 나도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이는 여행지에서 나를 대변하는 첫 번째 명사는 이름도 나이도 아닌, 나라이다. 우리는 처음 본 누군가를 ‘프랑스 커플’이나 ‘칠레 남자애들’하는 식으로 불렀고, 그들도 우리를 각자의 이름보다는 ‘한국 여자들’이라고 부르고는 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서로가 익숙해질 때까지 가장 흔하게 주고받는 이야기 또한 어디에서 왔고 그곳은 어떤 곳인지 묻는 것이었다. 


우리가 유독 많은 질문을 받았던 건 아마도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라에서 온 때문이지 않았을까.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 중에는 우리를 통해 한국을 처음 알게 된 이도 있었고 지나가듯 뉴스에서 들어 봤다는 이도 있었다. 또 누군가는 상냥함이나 미지의 공간 같은, 동양에 대한 먼지 폴폴 날리는 환상을 확인하려 들기도 했다. 

각자 이유는 달랐지만 어쨌든 한국은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대화 주제였다. 어디에 있는지 어떤 말을 쓰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음악을 듣는지, 뭐 그런 사소한 이야기라도 말이다.


“너네 한국에서 왔다고? 나 알아, ‘강남스타일’!”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하면 처음 만난 외국인들은 십중팔구 강남스타일을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춤을 선보이고는 했다. 그들을 볼 때면 무엇으로든 우리나라를 알고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강남스타일이 곧 한국’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는 게 아쉽기도 했다. 


그것 말고도 우리 자랑할 거 많아, 좋은 노래도 많고 음식도 맛있고 춤도 잘 추고 우리만 쓰는 글자도 있단 말이야.


“너희 전통 음악이랑 춤도 보여줘. 너희도 출 줄 알아?”

브라질의 전통 축제인 지역 카니발에 대한 영상을 쭉 보여주던 호벤이 물었다.


소개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기회가 주어지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여기 남미에서는 전통 음악인 살사나 삼바를 평소에도 즐겨 듣는다는데, 내가 즐겨 듣는 것 중 전통 음악은 뭐가 있지? 아리랑? 판소리? 그것도 아니면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민요라도…? 전통이라는 말의 무게에 멋들어지게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더해져 부담이 커졌고,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생각나는 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배웠던 교과서 속 이야기뿐이었다. 종묘 제례악을 비롯해 탈춤이나 판소리 같은 공연의 영상을 찾아 보여주는 동안 호벤과 한나의 질문은 계속됐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연주하는 건지, 또 악기 이름은 무엇인지. 그리고 언제나 마지막은 ‘너희도 할 줄 아냐’는 것이었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국악이라는 건, 전통 무용이라는 건 전문가들만 할 수 있는 거 아니었나.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르기보다는, 멋들어지게 차려 입고 무대에 오른 누군가를 향해 멀찍이서 박수를 보내는 것이 우리에게는 익숙했고 또 당연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전통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즐길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들이 무엇보다 궁금해했던 건 남한과 북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분단국가의 이야기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 뉴스에 이름을 올리는 북한과 남한은 어떤 곳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싶어 했다. 


우리는 알고 있는 만큼 성심성의껏 답했다. 식민 지배를 견디고 독립을 맞았지만 한국 전쟁을 겪으며 분단국가가 되었고 여전히 휴전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희생을 치렀으며, 오늘날 우리의 삶에 어떤 상처와 숙제가 남아 있는지까지도. 


30시간을 날아 남미로 여행을 온 우리가 정작 북한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던 그들이었다. 전쟁을 겪었고, 이산가족과 같은 마음 아픈 문제들이 남아있다는 말에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생각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인 듯 둘의 질문은 자정이 지날 때까지 이어졌다. 


“남한과 북한에 흩어져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가족들도 있다고?”

“그러니까 너희는 북한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이 없다는 거지?”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어?”


오랜 내전과 마약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콜롬비아만큼이나 우리도 여전히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마주한 기분이었다. 먼 나라의 이야기인 마냥, 기억했어야 할 것들까지 잊고 살았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못나 보이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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