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생활기록부에는 늘 비슷한 말이 적혔다.
'학업 성취도는 우수하고, 태도는 성실하며, 수업 참여도도 좋다.'
선생님들이 나에게 전해주는 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용한 편이긴 해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하는 말이기도 했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지금까지,
아이에게는 거의 매년 크고 작은 괴롭힘이 있었다.
상대는 늘 달랐지만, 상황은 놀랄 만큼 비슷했다.
처음에는 친하게 지내다가
어느 순간부터 태도가 달라지고,
그 뒤에는 소외와 뒷담화,
필요할 때만 ‘쓰여지는’ 관계로 변질되었다.
아이에게 무언가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걸까.
그 질문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아마도 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쌓일수록
나는 조금 다른 방향을 보게 되었다.
내 아이는 ‘문제가 있는 아이’라기보다는
관계 안에서 반복적으로 상처받아온 아이에 가까웠다.
우리 아이는 조용하다.
쉬는 시간에 먼저 다가가 말을 걸거나,
무리에 자연스럽게 섞이는 아이는 아니다.
혼자 그림을 그리다가도
먼저 말을 걸어주는 친구가 있으면
기꺼워하며 어울렸다.
그 모습은 어른의 눈에는
차분하고 성숙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다르게 읽힐 수도 있다.
재미없고,
다가서기 어렵고,
때로는 재수없는 아이로.
아이는 참을성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부당한 상황에서도
즉각적으로 화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분노를 늦게 꺼내는 성향은
그 감정을 밖으로 내보내는 대신
몸과 불안으로 돌려보내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강박과 불안, 공황 증상은 그렇게 서서히 쌓여왔다.
아이에게 친구가 한 명이라도 생기면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그 한 명의 존재가
학교를 버티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 관계가 오래가지 못하고 끝날 때마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또’라는 단어가 남았다.
그리고 그 ‘또’는
다음 관계를 시작하는 데 큰 벽이 되었다.
학교는 아이에게 배움을 주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아이의 고립을
감지하기 가장 어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눈에 띄는 문제 행동이 없고,
성적이 안정적이면
아이의 외로움은 쉽게 놓쳐진다.
문제는 그래서 가장 늦게 발견되었다.
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나는 담임 선생님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다.
아이의 성향,
관계에서의 어려움,
이전의 경험들.
어떤 선생님은 귀 기울여 주었고,
어떤 선생님은
“잘 지켜보겠습니다”라는 말로 정리했다.
그 과정은 늘 조심스러웠고,
때로는 지치기도 했다.
이 글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다만 묻고 싶었다.
아이가 매년 같은 일을 겪었다면,
그건 정말 개인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구조의 문제였을까.
나는 아직
모든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내 아이는
궤도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다른 궤도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