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먼저 건네지 못하는 아이에 대해

by 나침반


남편과 나는 성향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내성적인 편이다.


아이가 그런 기질을 물려받았다는 사실 역시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성향이 아니라

환경만이라도 보완해 보자는 쪽을 선택했다.

여느 아이들이 다 거친다는 것들을,

가능한 한 빠짐없이 경험하게 했다.


영유아 시절부터

문화센터 오감 발달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주말이면 동물원, 놀이공원, 박물관,

어린이 뮤지컬, 키즈카페를 다녔다.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외부 활동에는

비교적 적극적인 부모였다.

뇌 발달 시기에 받은 이런 자극들이
타고난 성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 믿었다.


아이는 다소 예민하고 소심한 기질이 있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또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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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였다.


처음 만난 담임 선생님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경험했던 교사들과는 많이 달랐다.


할머니뻘의 담임 선생님은 1년 내내

긴장성 복통으로 보건실을 드나들던 아이를 지켜보다
“교직 생활을 하며 이렇게 예민한 아이는 처음 봅니다.”
라는 말을 남긴 채 다음 해 은퇴하셨다.


보건실 선생님 역시 매일 찾아오는

1학년 아이가 귀찮았는지,
배가 아픈 이유를 설명하는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억지로 변기에 앉혀 두거나
“너에게는 해 줄 게 없다.”는 말을

한숨 섞어 하기도 했다.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선생님들의 반응에 점점 예민해졌고,
아이는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매일 밤 학교에 가기 싫다며 우는 아이를
두 시간 가까이 달래다

결국 아동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아동 종합 심리 검사와 부모 검사를 진행했다.


아이의 지능은 상위 5%에 속할 만큼 높았지만,
불안 지수는 정상 범주를 넘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기질적인 요인이 크긴 하지만
지나치게 관용적인 양육 태도 역시
가정과 외부 환경의 간극을 키워
학교 적응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하루 종일 낯선 환경을 견디고 돌아온 아이에게
집에서까지 제재와 규칙을 들이밀기엔
내 마음이 그렇게 단단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칠 때까지
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아이에게 학원은
학교의 연장선에 불과했으므로.


학년이 올라가며 친구가 한두 명 생기기도 했다.
수동적인 성향 탓에
다가오는 쪽은 늘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아이들이었다.


그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는 동안에는
등교 거부도 줄었고,
불안으로 인한 복통도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친구만 있으면 괜찮아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작은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래서 학년이 바뀔 때마다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 보라고 권했고,
사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놀게 하거나
파자마 파티를 열어 주기도 했다.


집을 치우고 간식을 준비하는 일이 번거롭긴 했지만,
아이가 학교만 잘 다닐 수 있다면
그 정도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학생 수가 줄어든 요즘,
친했던 아이와 같은 반이 되는 일은 드물었고


학년이 바뀌어 반이 갈리면
‘친구’라 불리던 아이들 대부분은
새로운 관계에 더 집중했다.


소심한 아이는
먼저 연락을 하거나
약속을 잡거나
대화방을 만들어 관계를 이어 가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학년이 바뀔 때마다
아이는 다시 낯선 환경 앞에 서야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

낯선 친구에게
말 한마디 먼저 거는 것.


내 아이에게는
그것이 그런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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