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아이는 조용해지는 법을 먼저 배웠다

by 나침반


제멋대로이고 이기적이며, 악해 보이는 행동이
‘아이의 순수함’이라는 말로 용인되는 것이
나는 오래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우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용인의 영역이 아주 조금 넓어졌다는 것이다.

취학 전까지는,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8세 전후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이들의 인지와 정서는
영유아 때보다 분명히 성숙해지고,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

본격적으로 속하게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 즈음부터는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은 남에게 해서도 안 된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회성만큼은
길러져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로 흘러갔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은
영악하게 속마음을 숨기면서도
감정을 표출하는 데에는
점점 더 거리낌이 없어졌다.


‘조용한 모범생’이었던 내 아이는
그 틈바구니에서 자연스럽게 먹잇감이 되었다.


같이 있으면 도움은 되지만 재미없는 아이였다가,
잘 거절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임이 드러나는 순간
쓸모 있고 만만해서
‘이용하기 좋은 아이’가 되어버렸다.


마치 공식처럼
학기 초에는 무리에 속하지 못해 힘들어하고,
학기 중에는 다행히 친구 몇 명을 사귀어 조금 숨을 돌리다가,
학기 말이 되면
그 친구들로부터 다시 밀려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혹자는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아이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집과 학교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으니,
내가 모르는 어떤 부정적인 면이
이런 결과를 낳은 건 아닐까 의심해 보기도 했다.


매 학년 부모 상담 주간이 되면
나는 늘 같은 질문을 했다.


“아이가 얌체처럼 굴거나
문제를 일으킬 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나요?”


선생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조용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데
문제가 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아이는 늘 예기치 못한 상황을 두려워했고,
그 방어 기제로
더욱 ‘조용히 있는’ 방법을 택한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이

동성의 또래 아이들에게는
비호감으로 읽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력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관계라는 것은
결국 상호 노력의 결과인데,
내 아이가 아무리 심리 상담을 받고 약을 먹는다 한들
주변 환경의 변화가 없다면
이 상황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사실을
비로소 깨닫고 인정하게 된 것이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나서였다.


예전에는 보호자로서
아이가 사회 속에 섞이지 못한다는 사실 앞에서
죄책감과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당당하고, 담담하다.


지난 5년간
아이 못지않게 나 역시 상처받고 분투했으며,
학교와 제도의 한계를 체감하고
사람에 대한 기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경험치’를 하나 더 획득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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