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신경정신과를 방문했다.
20분 정도의 대면 상담 후 종합심리검사를 진행하기로 했고
지면 검사지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8세 아이가 하기에는 적지 않은 분량이었다.
검사지 제출 날에는 대면 검사도 함께 진행됐다.
결과가 나오는 날, 담당 선생님과 긴 상담을 나누었다.
요점은 몇 가지로 정리됐다.
“지능이 높고 집중력도 좋지만, 불안 지수가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우울증에 대한 지표도 함께 나왔다.
소아 진료에서의 ‘우울’은 아주 미미한 수치라도
의미 있게 본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이는 8~9세 무렵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무척 충격적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내색하지 못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묻자
아이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엄마나 아빠 때문도 아니고,
환경적인 스트레스 때문도 아니며,
학교생활이 힘들긴 했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고 했다.
아이가 어려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이 아이를 그만큼 몰고 갔는지
스스로 정리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은 놀이치료를 권했고,
이듬해에는 센터를 옮겨 그림치료도 진행했다.
아동 임상치료에 대한 판단은 여기서는 덧붙이지 않겠다.
결론적으로, 내 아이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상담 치료는 약 2년반 정도 받고 중단했다.
그 후로 한 학년, 한 학년 올라가는 동안
추가로 병원을 찾지는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점점 학교생활에 적응해 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교 후 툭하면 터지던 눈물도 줄었고,
어느 날은 엄마인 나보다 훨씬 의연해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렇게 성장해 가는 거구나.’
‘내가 너무 걱정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자리 잡을 즈음,
5학년이 된 아이에게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4학년 때와는 달리 엄격한 담임 선생님,
여기에 사춘기의 복잡하고 불안한 심리 상태가 더해지며
이전에는 없던 신체 증상이 나타났다.
학교에 대한 혐오가 강박으로 드러나
학교에 가지고 간 물건을 만지는 것을 꺼려했고,
결벽 증상이 심해져
손에 하얀 각질이 생길 만큼 손을 씻어대기도 했다.
나를 향한 눈빛과 말투에도 적의가 가득했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짜증을 냈고,
챙겨 주고 걱정하는 말조차 거부했다.
집에 돌아와도, 아이의 마음은 쉬지 못했다.
그 시기, 나는 숨어서 울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5학년이 끝나갈 무렵,
다시 아이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종합심리검사를 청소년용으로 바꿔 다시 진행했다.
결과는 예전보다 조금 더 긍정적이었지만,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다.
이전 상담 치료의 경험이 좋지 않았던 탓에
상담은 대기 상태로 두고 약물 치료를 선택했다.
약물 치료라고 해서 무섭거나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SSRI,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하루 한 알 복용하는 방식이었다.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날이 서 있던 말투가 부드러워졌고,
밤마다 마주하던 어두운 표정도 조금씩 옅어졌다.
무엇보다,
아이가 집에서만큼은 온전히 쉴 수 있었다.
평온하던 날의,
아주 평범했던 나의 아이로 돌아온 것 같았다.
가끔 진료 일정을 지키지 못해
약을 거를 때도 있었지만,
아이가 예전처럼 급격히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이렇게 긴 글을 남기는 이유는,
나와 비슷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 보호자들이
병원 방문을 고민하는 순간,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아이가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일 때,
곁에 서서 함께 쉬어 주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그 시간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다고
조용히 말해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