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하고 낯설게
일본 드라마와 재회하기

네플릭스에서 기무라 다쿠야의 <BG 신변경호인>을 마주한 날의 상념

by 이루카



연휴 직전의 어느 날 네플릭스 추천 화면에 기무라 타쿠야 얼굴이 떠서 깜딱. 자그마치 2020년 신작 드라마 <BG 신변경호인>(그냥 '보디가드'라고 하지~)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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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플릭스에 뜨는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는 다소 밋밋한, 마이너한 작품이려니~ 싶기도 해서, 거의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기무타쿠 최신 작품이라니! 최근은 한국의 케이블 채널에서 일본 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뭔가 일본 최신 ‘주류’ 드라마가 한국의 지상파로 밀고 들어온 느낌이랄까? 어떤 의도에서 이 드라마에 자막을 붙여 한국에 릴리스할 판단을 한 것일까? (일본에 가서 네플릭스를 켜야 그나마 일드 인기작을 볼 수 있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보기 위한 방법은 너무 번거롭고 귀찮다...심져 지금은 갈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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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처음 갔을 때 일본어 학습을 위해 드라마를 보려 해도, 본래 일본 드라마나 문화에 대한 관심이나 정보가 전혀 없었던지라.... 렌탈숍에서 비됴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당시에는 렌탈숍에서 신작을 제외한 비됴는 수욜마다 반값 할인을 했기에, 수요일에 맞춰 드라마 비됴를 한 세트씩 빌려옴). 없는 돈에 아무 드라마나 고르기는 아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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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유학을 와 있던(그리고 이 분야를 섭렵한) 친구가 간단한 해법을 제시해줬다. '잘 모르겠으면, 일단은 기무타쿠가 나오는 드라마를 골라~' 기무타쿠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가 나오는 드라마라면 당대 최고의 극본에 최고의 배우, 스태프가 함께 하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설령 개인적 취향이 맞지 않아도, 최고 수준의 일본 드라마가 어떤 것인지 파악을 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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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생활이나 문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이, 그리고 자막이 없는 드라마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단어뿐 아니라,,, 내가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개념이나, 물건, 문화들이 많았다). 렌탈숍 일정에 맞춰 수요일마다 빌려온 비됴를 반납하기 전까지 음악처럼 틀어놓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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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본에 간 2001년 4월은 그의 대표작 <HERO>가 방영을 마친 직후였다. 주제가인 우타다 히카루의 Can You Keep a Secret?의 음악이 공전의 히트중이었지만,,, 본방 사수나 제값 주고 신작을 빌려볼 [돈과 마음의] 여유는 없어서, 기무타쿠의 2001년 이전의 작품들을 [아무리 오래 전의 것일지라도] 닥치는대로 빌려다봤다.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도 많았던지라, 나중에 인터넷이 활성화된 이후로는 파일로도 찾아서 다시 반복해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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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타쿠의 인기는 그 이후로도 [지난 스마프 해산 소동까지는] 꾸준히 계속되었지만, 그의 연기나 출연 드라마의 인기는 사실상 2001년 <HERO>가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일본에 있는 동안 나온 그의 신작 드라마들 중에 내가 일본 입국 초기에 본 드라마들을 능가한다는 느낌을 받은 경우는 [최소한 내 기억에는]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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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가,,, 더 이상 그의 드라마에 '일본 최고'가 붙지 않아서인지, 일본 드라마의 수준 자체가 점점 하향곡선을 그린 때문인지,,,, 그와 상관 없이, 일본 도착 직후의 불안한 마음과 부족한 일본어 실력으로, 수십 번씩 배경음악과 대사를 외우도록 반복해서 그의 드라마를 돌려 보았던 나의 특수한 감성으로 인한 기억의 왜곡 때문인지는 모르겠다(2000년대 이후 기무타쿠 드라마 중에는 굿럭 정도 외에는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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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전 많은 이들이 열광했던 <HERO>와 같은 작품은 [옛정(?)으로 찾아서 보기도 하지만] 지금의 젠더 감수성으로는 끝까지 보기 힘들다. 상식에서 벗어난 엉뚱한 남주의 행동거지를 모범생에 똘똘한 여주는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툴툴거리지만, 알고보면 남주의 모든 언동에는 깊은 뜻이 숨어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매회마다 작은 에피소드에서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고(이런 드라마는 한일의 구분 없이 하나의 장르를 이루는 듯), 시리즈 전체를 통해서는 매뉴얼과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현장 중심주의'라든가, [살인의 이유가 될 정도로?] '철저한 직업 정신' 등이 강조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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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본 많은 드라마의 주제가 '관료주의' '매뉴얼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던 기억이 있다. <HERO>가 그랬고, 나의 최애 드라마인 <춤추는 대수사선>이 그랬고, 시즌 15까지 완주한 <파트너(相棒)>도 그렇다. 여전히 일본 드라마는 그런 정도의 문제의식과 교훈을 담으려 들까? 오랜만에 기무타쿠 주연의 '주류'[일 것으로 짐작되는] 일드 시청을 시작하면서, 살짝 호기심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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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2020년에 나온 <BG>에도,,, 드라마 속에 교훈을 '담았다'라고 말하기도 뭣할 정도로, 하나의 주제를 매회에서 촌스럽게 '윽박지르고' 있어서 놀라왔다. 이번에는 일관해서 '관과 민'의 관계를 쟁점으로 삼고 있는데, 실제 이 문제가 일본 사회에서 얼마나 화두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젠더 부분을 어떻게 다루는지, 이전 드라마와 비교해서 보게 되기도 하고. (일드 특유의 오글거림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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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무타쿠의 [살짝 입술을 실룩이며 큰 눈동자가 흔들리는] 섬세한 표정 연기가 좋다'고 할 때마다, 일본인 친구는 '모든 드라마에서 연기가 항상 똑같지 않아?'라며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는데, 이번에 보니 그 친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무타쿠가 한국의 배우였으면 피부가 저렇게 주름이 지거나 어두워지지 않도록 압구정과 청담동의 최신 의료기법이 동원되지 않았을까...확실히 일본인들이 한국인에 비해 외모에 대한 관심이 덜한가... 혼자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갸웃갸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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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조연들도 반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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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내내 달려 제9회 최종회까지를 마친후 잠시 상념에 잠긴 사이 ... 갑자기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해서 깜딱! 이게 뭐지? 알고보니 시즌 2의 1화가 바로 이어진 것이었다. 기무타쿠 드라마의 시즌 2가 있었나? 이 드라마가 기무타쿠가 나온 일드로는 예외적으로 시즌2까지 만들 정도로 수작이었나? 이게 어떤 의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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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드라마나 영화 보고난 후에 뒷 얘기나 배우들에 관해 이것저것 검색도 해봤겠지만,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지, 다른 일의 부담 때문인지 그럴 의욕은 안 생긴다. 이런 걸 업으로 했으면, 드라마 보는 게 즐거웠을까, 괴로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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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드가 워낙 발전해서 이젠 일드보다 낫네~라고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빈센조>의 충격이 너무 컸다.


<202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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