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고픈 줌마들을 향한 쓴소리
자자, 일단 커피 한잔 좀 해. 아메? 아님 달달 구리 한 믹스? 그래. 기분 안 좋을 땐 달달한 게 장땡이지. 난 다욧 해야 해서 아메 할게... 자, 일단 한 모금 좀 마셔. 마시고 얘기하자.
그래. 나한테 위로받고 싶어서 왔다고? 애 키우는 게 힘들어서? 늘어진 뱃살이 억울해서? 백날 애만 보고 있는 너 자신이 한심하다 느껴져서?? 그런데 어쩌냐. 난 너 위로해줄 생각이 없는데.... 나까지 너 위로해줄 필요 있냐? 여태 위로 많이 받아 왔잖아. “위로”, “힐링”, “괜찮다.” 뭐 이런 거 많이 봐왔잖아.
게다가 너 인스타그램, 페북도 잘하더라. 너 그거도 따지고 보면 위로받고 있는 거다. 사람들이 너 얘기에 ‘좋아요’ 해주고 팔로우 버튼 눌러주고 그러면 너 기분 좋아지잖아. 다른 사람의 인정으로 가장한 위로. 너, 그거 받고 있는 거잖아. 그만큼 위로받았으면 위로는 이제 됐지 않아? 나까지 너 위로해줘야 해??
자, 언니가 유식한 척 좀 할게. 기분 나빠말고 들어. 「네 안의 잠든 거인을 깨워라」를 쓴 앤서니 라빈스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지.
"한 번 천천히 생각해보라. 여러분이 갖고 있는 문제와 부정적 감정의 대부분은 아침을 좀 더 빨리 먹거나 팔 굽혀 펴기를 10번 하거나, 잠을 한 시간 더 자기만 하면 해결됐을 문제들 아닌가? 그런 문제들에 대해 일기를 쓰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 않은가?”
너무 진지해지지 말아. 특히 너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에 진지해지지 말아.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너 자신이 휘둘리게 내버려 두지 마. 넌 네가 느끼는 감정보다 더 크고 가치 있는 존재이니까. 감정이라는 것에 자꾸 비위 맞춰주지 마. 자꾸 받아주면 버릇만 나빠져. 감정이라는 거, 그렇게 대단한 거 아니다~ 앤서니 라빈스 말마따나 맛난 음식 먹고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나면 어제 잡아먹을 듯 달려들던 감정이 다음날 아침 갑자기 순한 양이 되어버릴 때도 있잖아~
자, 언니가 유식한 척 한 김에 한마디 더 할게. 2천 년, 무려 2천 년 전에 스토아 철학자(언니는 이 오빠들 참 좋아해.)가 한 말이야. 에픽테토스라고...
당신이 원하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상처 주는 일은 없다. 당신이 상처 받는 때는 자신이 상처 받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이다.-에픽테토스
네가 "상처 받았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상처 안 받는 거야. 상처 못 받는 거야. 네가 "상처 받았다." 생각하면 너는 상처 받는 거야. 피해자가 되는 거라고. 그러니 문제는 상황이 아니야. 그 상황을 해석하는 우리의 생각, 인식이 문제인 거지. 그걸 바꾸면 우리는 우리 감정을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다고. 그러니 타인이나 외부의 위로 보다는 너 자신을 믿어. 네 안에 있던 “강인함”, 부정적인 상황에 당당히 맞설 “투쟁의지”, 남이 뭐라든 환경이 어떻듯 내 갈길 간다는 “평정심과 초연함”, 이걸 키울 능력을 너 스스로 퇴화시키지 말라고...
에버랜드 사파리의 동물들 봤지? 아침이고 낮이고 늘어져 무기력하게 잠만 자는.. 원래는 “야생” 동물이었던 애들 말이야. 동물원에 갇혀 지내다 사냥의 본성마저 잃은 맹수들처럼 너도 나도 어쩌면 우울과 불안에 맞서 싸울 전투력을 스스로 과소평가한 채 무기력하게 지내왔을지도 몰라.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알랭 드 보통, 「불안」
가만히 보면 말이지. 우리가 위로에 의지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는 깊은 내면의 결핍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건지도 몰라. 내면이 충분히 강하지 못하면, 쉽게 말해서 유리 멘털, 두부 멘털이면 그 결핍을 외부로부터 수혈받을 수밖에 없어. 그럴수록 더 강해질 기회조차 못 갖고 더더 나약해지기 마련이지.
인생, 원래 써. 누가 인생을 장밋빛이라고 했냐? 인생은 쓰고 고단해. 그래. 그런 인생을 살면서도 나는 뭔가를 “이뤘다”를 외치고 싶겠지. 그러나 인생은 무언가를 “이뤘다”에 방점을 찍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방점을 찍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뤘다....!' 삶이 호락호락하디? 20대보다 30대가, 30대보다 40대가 더 큰 책임의 무게를 지닌 채 살아야 하더라고. 어깨가 빠질 지경이지. 이 전쟁터 같은 인생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도 위로지만 넘어져도 스스로 털고 일어서서 태연히 가던 길가는 흔들림 없는 강철 같은 강인함이 진정 필요해. 그래서 내가 위로를 못해주겠다는 거야. 내 위로가 앞으로의 네 인생에 큰 의미가 없으니까.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 거야. 인생의 여정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지만 늘 최종적인 책임은 늘 혼자 짊어져야만 하거든. 누가 네 인생 대신 살아주지 않잖아. 남편도, 아이들도.... ‘힘들다’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어. 달라지고 싶다면 힘들어도, 아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이뤄야 해. 그러려면, 그러려면 강해져야만 해.
진정한 강철 멘털을 갖고 싶어? 그럼, 다음에 내가 오빠 몇 명 소개해줄게. 2천 년 전에 살았던 오빠들인데, 스토아 철학자라고..ㅋ, 기회되면 차차 얘기해줄께.
아, 우리 둘째? 괜찮아, 괜찮아. 우리 둘째 아직 낮잠 깨려면 시간 남았어. 얘기 좀 더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