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운 만능 치트키
얘, 쿠팡에서 애들 간식 싸게 나왔길래 왕창 샀더니 너무 많아서 너네 애들 나눠주려고 너 좀 불렀어. 근데, 너 오늘 좀 피곤해 보인다?
뭐? 또 그 부장이니? 잠시 육아 휴직하고 복직했더니 잠깐 일 놓았었다고 너를 완전 저능아 취급하더라고? 부장이 잡아먹을 듯 하니 까마득한 후배들도 너 무시하는 거 같아 돌아버릴 것 같다고? 안 그래도 자신감 바닥인 복직 맘이라 한없이 쭈그리가 되는 데, 이젠 바닥을 기게 생겼다고?
얘, 그러기에 이 언니가 뭐라 그랬니? 진작에 복직 전에 철학책 몇 권 읽으면서 멘털 관리 좀 하라고 했지? 철학 따위가 먹고사는 거랑 뭔 상관이지 싶지? 애 먹이고 씻기기 바쁜데 그런 개똥철학 읽을 여유가 언제 있나 싶지? 철학이 밥 먹여주나 싶지? 근데 철학이 너 밥은 안 먹여줘도 밥맛은 훨 맛나고 찰지게 만들어줄 걸?
자, 언니가 또 중요한 얘기 할 거니까 잘 들어봐. 언니가 좋아하는 3대 섹시한 대머리(비록 머리숱은 없으나 머리 안에 든 거 많아 섹시한 오빠들-알랭 드 보통, 유발 하라리,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오빠들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있어. 알랭 드 보통이라고.. 이 오빠가 말했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 「불안」
너 그런 거 느껴본 적 있지? 어떨 때는 네가 되게 천재인 것 같아서 완전 우쭐했다가 바로 그다음 날 출근해보니 너 자신이 완전 머저리 같을 때 있지? 어떨 때는 회사에서 집에서 네가 없으면 세상이 안 돌아갈 것 같다가도 어떨 땐 완전 쓸모없는 쓰레기 같을 때 있지?
너, 그거 왜 그런 줄 알아? 네가 헤퍼서 그래. 다른 사람들이 너 자신의 의미를 결정할 수 있게끔, 네가 곁을 너무 많이 내어줘서 그래. 그럴 수밖에 없지. 네가 너 자신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으니까. 너 자신에 대한 확신의 뿌리가 약하면 세상과 타인의 태도가 너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해버리게 되거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너 자신의 확신의 뿌리를 단단히 심어두면 되지. 철학으로 말이야.
철학이라는 것과 친해지면 가장 달라지는 게 뭐냐면 세상과 타인 앞에 “거리두기”가 가능해져. 어떨 땐 너 자신한테도 “거리두기”가 가능해지지. 특히 너의 그 감정. 네가 이겨먹기 힘든 네 감정에도 “거리두기”가 가능해져. 한마디로 자신과 세상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는 거야. 또 하나의 안경이 생기는 거지.
얘, 너나 나나 사회적 동물이라잖냐. 섞여 살 수밖에 없지. 어쩔 수 없이 남에 평가나 시선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 그런데 언니가 살아보니 말이야. 본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매정할 정도로 칭찬에 인색한 존재더라고. 칭찬이나 인정에 애타 하며 발바닥에 땀나도록 애써봐도 너의 부장을 비롯한 타인들은 그거 잘 인정 안 해줘.
칭찬에 인색한 놀부한테 칭찬 밥 얻으려 너무 맘 쓰지 마. 그리고 비난도 그래. 왜 저 사람이 나한테 저런 말을 했을까 하며 골머리 싸매며 네 상처를 자꾸 후벼 파지 마. 헤프게 말고 비싸게 굴어.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든, 비난이든 너무 곁을 주지 마. 타인의 평가에 거리를 둬.
잠깐, 금방 언니가 뭐라고 했지? 타인의 평가에 거리를 두라고 했지? 그래. “거리”. 아까 철학과 친해지면 “거리두기”가 가능하다고 했지? 그래~~ 그래서 언니가 너보고 철학이랑 좀 친하게 지내라 한 거야. 철학이랑 친해지면 자유로워질 수 있거든. 강인한 자기 확신으로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자유로울 수 있는 진정한 자유. 철학은 타인의 평가 앞에서 너한테 아주 훌륭한 방어무기가 되어 줄 거야. “필터링”으로 말이지. 뭔 말이냐고?
자, 네 부장 얘기로 한번 돌아가 볼까?
네 부장이 너한테 “능력이 없다”라고 말했어. 자기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는 1번처럼 부장의 "넌 능력이 없어"라는 말이 곧 너 자신을 규정해버리게 돼. "이런 젠장, 나 능력 없구나~"하고 말이지. 그런데 2번을 봐봐. 철학을 통한 자기 확신이 있다면 한번 필터링을 거치게 되지. 부장의 "넌 능력이 없어"라는 말에 “그런가?”, “진짜 그래?”, “그 인간 말이 정말 맞아?”하는 의심의 필터링을 거치게 되지. 그 결과 넌 2가지의 결론을 내릴 수 있지.
A. 아, 그렇구나. 나, 능력없구나. / B. 아녀! 뭔 소리여! 나 능력 장난아니게 짱인데?!
A면 뭐, 깔끔하게 인정해야지. 더 노력하거나 아님 그냥 살거나. 대신 그냥 살 거면 계속되는 부장의 비난은 각오해야겠지. B면? 그러면 부장의 말은 그냥 싹둑 무시해야지 뭐. 물론 기분은 썩 좋지 않겠지만 그 사람의 평가로 네 가치가 두 동강 나지 않고 멀쩡히 빛나고 있는 거니, 그것으로 된 거지 뭐.
재밌는 건 뭔 줄 알아? 언니의 경험으로 보니 말이야, 이 필터링의 결론의 대부분은 B로 결론 내어지더라는 거야. 생각해보니 당연하더라고. 네 부장은 너를 단편적, 부분적으로만 판단하지만 넌 너 자신의 능력을 연속적, 통합적으로 판단하게 되어있거든. 왜냐? 네 부장은 그저 너를 ‘봐’ 왔겠만 넌 진짜 너로 ‘살아봐’ 왔으니까. 서로 달리 볼 수밖에 없는 거지.
자, 그러니 이제 언니가 너한테 두 번 얘기 안 한다. 시간 될 때 철학책 좀 몇 권 읽어둬. 확신의 뿌리가 삐뚤어지지 않고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그 오빠들 만나. 스토아 철학하는 오빠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네카, 에픽테토스). 철학으로 자기 확신의 뿌리를 제대로 내리게 되면 필터링 기능은 더더욱 강화될 거야. 그럼 다른 사람의 평가에 좌지우지 흔들리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만능 치트키 하나 달고 사는 거라고. 전쟁터 나가는 데 그 정도 무기는 장착해야 하는 거 아니니? 이 오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딱 너 들으라고 2천 년 전에 이런 얘기 했어.
“칭찬을 받으면 더 나아지는가? 에메랄드가 칭찬을 받지 못한다고 더 나빠진다더냐? 금, 상아, 작은 꽃 한 송이는 어떤가? 다른 사람이 나를 경멸하는가? 경멸하라고 해라. 나는 경멸을 받을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면 그만일 뿐이다.”
이 오빠 봐. 이 오빠 치트키 완전 있네. 필터링 확실하잖아. 칭찬이든 욕이든 뭐 신경 안 쓴 데잖아. 흔들림 없이 자기 확신대로 산다잖아. 그리고는 너한테 또 한마디 더 붙인단다.
“바깥에서 도움을 구하지 말고 남들이 주는 안식도 구하지 마라.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네 확신의 뿌리가 얕거나 삐뚤어지지 않고 제대로 깊게 자리 잡아야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는 거야. 이제 알겠니? 네가 왜 두부 멘털이었는지? 자기 확신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야. 이젠 튼튼하게 뿌리내려. 철학이 아주 기름진 양분이 되어줄 거야. 네 가치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 네가 스스로 지켜나가야 하는 거지. 더는 다른 사람들이 네 가치와 의미를 결정짓게 내버려 두지 마. 이젠 좀 비싸게 굴어.
자, 여기, 애들 간식 잘 챙겨가고. 밤이 늦었다. 조심히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