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내 나는 그녀들 앞에 초라해지는 이유
오늘은 커피말고 차마실래? 너, 근데 오늘 표정이 별로네. 이 언니한테 일단 얘기 한번 해봐. 아, 그 엄마 얘기야?
"너도 인생 좀 즐기고 살아~." 그 엄마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그런데 너는 아침 밤낮 아이들 푸닥거리나 하고 있고, 우연히 거울에 비친 헝클어진 네 모습을 보니 ‘대체 이 아줌마는 누군데 여기 있나..?’ 싶다고? ‘이런 푼돈들 모아서 언제 한번 인생 즐기며 살아볼까’ 싶다고?
엄마로 여자로 정말 눈물 나게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는데....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리 자꾸만 초라해지는지, 왜 그 엄마 앞에서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지 모르겠다고?
얘, 근데 너 그 엄마 진짜 즐기며 사는 지 봤니? 아침부터 밤까지 한번 지켜봐 봤니? 그 엄마가 최근에 애들이랑 미국 여행 갔다 온 얘기는 귀담아 들었겠지. 어제 낮에 입은 신상 옷, 빨간색 뾰족구두는 눈여겨봤겠지.
그런데 집에서 어떤 음식을 어떤 맘으로 해 먹는지, 주말에 남편과는 몇 번이나 다투는지, 저녁 되면 애들 목욕시킬 때마다 등짝 때리는 소리가 아랫집 윗집 화장실에까지 다 울리는지, 너 그런 건 못 봤지? 그러니 아무도 모르는 거야. ‘나는 이렇게 즐기며 멋지게 살아, 너도 한번 이렇게 살아봐~’라고 말하는 것들이 진짜 제 인생 즐기고들 살고 있는지.
자, 언니가 중요한 얘기 하니까 잘 들어봐.
이거 좀 봐봐. 이탈리아의 루초 폰타나라는 화가가 전날 심하게 부부싸움을 했는지 캔버스에다 요따구 장난질을 했어. 장난을 쳤음 집안 쓰레기통에 고이 모셔둬야 할 걸, 이걸 작품이랍시고 떡하니 전시장에 전시를 해놨어. 그럼 뭔 의도가 있다는 얘기지.
이 사람이 이 캔버스를 찢은 건 찢긴 캔버스 뒤의 공간을 보여 주려고 하는 거야. 캔버스 위의 그림을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닌 거지. 우리에게 캔버스 너머 그 뒤를 보라는 거야. 캔버스 위에 그려진 화려한 그림, 즉 ‘가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찢긴 틈새의 뒤에 존재하는 ‘실재’의 공간을 환기시켜주는 거야.
잘 생각해봐. 우린 지금 얼마나 많은 이미지 속에서 살고 있냐? SNS, 유튜브, 뉴스 등등. 이미지 홍수야, 홍수. 그런데 이미지는 아주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것만 담은 거잖아. 실제의 24시간을 고대로 옮긴 게 아니지.
봐봐. 인스타그램에서 완전 분위기 죽이는 레스토랑에서 한 손으로 와인잔 들고 한 손으로 턱 괸 채 웃으며 찍는 그 엄마 사진 좀 봐봐. 그 여자는 일상 속에서 가장 예쁘고 뽀대 나는 순간을 찍었을 거야. 그러나 그 이미지를 본 너는 그녀의 그런 이미지가 곧 그녀의 일상 그 자체라고 생각하게 되지.
아침에 네가 아이들 밥 먹이느라 양치하는 거조차 까먹고 있을 때도 그렇게 사진 속 그 여자는 그렇게 웃고 있을 꺼고, 우는 아이 억지로 들쳐 메고 똥 묻은 애 궁둥이 씻고 있을 때도 사진 속 그녀는 그렇게 웃고 있을 거야. 밤이면 지친 몸으로 TV 앞에서 마트에서 4캔에 만원 주고 산 맥주 캔 따고 있을 때도 여전히 사진 속 그녀는 와인 잔을 든 채 웃고 있을 거라고.
이게 바로 “이미지” 대 “실재”야. 게임이 안 되지? 우린 이미지 앞에서는 모두 초라해지게 되어있어. 모르긴 몰라도 사진 속 그녀 자신도 화장실 변기 청소를 하다가 불현듯 사진을 보며 스스로 초라해질걸? ‘나 이렇게 멋진 여잔데, 화장실 청소나 하고 있고, 이런~’하고 말이지.
그러니 이미지에 속지 마. 언제까지 이미지 속 그녀들과 승산도 없는 대결을 하며 스스로를 초라함에 빠뜨릴 거야? 이미지의 화폭을 찢어. 찢어진 틈 사이로 캔버스 뒤의 삶의 본질을 봐. 그게 진짜 인생이고 삶이야.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아마 이 CF가 나온 후부터 즐겨라는 말이 들불처럼 번졌다지. 그런데 그거 알아? 이거 카드 광고야. 이 광고에서 말하는 “즐겨라”는 의미는 자기네들 카드를 시원하게 박박 긁어달라는 의미야.
언니는 평소에 즐긴다라는 표현은 잘 안 써. 내가 즐긴다고 말하는 거? 애들 낮잠 잘 때 가만히 앉아 차나 커피 마시는 거? 밤에 애들 재우고 드라마 보는 거? 모두 내가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것들이지. 책임질 게 없어야 비로소 즐길 수 있거든.
솔직하게 책임이라는 무게 앞에서 진정 즐길 수 있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말이 좋아 즐기는 거지. 그거 그냥 견디는 거야. 욕 나오는 데 참고 억지로 웃는 거라고. 그걸 ‘즐긴다’라고 다들 멋지게 포장을 해대는 거지만 실상은 그래. 그 포장에 속지 마. 나는 왜 이리 찌질할까 하고.
“너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잊지 말고 다음의 원칙을 적용하라. 이것은 불운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을 용감하게 참고 견디는 것은 행운이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토아 철학하는 오빠들 중에 젤로 멋진 오빠. 로마 황제까지 한 오빤데 허세끼 하나 없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황제였던 이 오빠도 묵묵히 이 악물고 참고 견디며 살아왔던 게 인생이라고.... 그러니, 걔네들은 그냥 그렇다 치고, 우리는 인생 앞에서 좀 솔직해지자. 좀 덜 멋있으면 어떠냐? 밖에선 쿨내 진동하며 다니다 집에서는 비루하게 공허함 느끼며 끊임없이 남들의 시선과 동경에 의지하는 나약한 이들보다는 훨씬 낫지 뭘 그래.
즐기기 어려운 것 앞에서 괜히 즐기려 애쓰지 마. 즐기는 척도 하지 마. ‘용감하게’ 땀 흘리고 ‘솔직하게’ 괴로워해. 덜 멋있어 보여도 그게 진짜이고 그게 결국 강해지는 거야. 잊지 마. 가짜 이미지 앞에서 지지마.
흔들림 없이 가던 길 가는 거다. 알았지?
내일도 흔들림 없이 애들과 푸닥거리하는 거다,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