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40대의 내가 20대의 나에게...
거기, 안녕? 언니야. 아니 아줌마야. 네가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을 그 ‘아줌마’. 길가다가 네 얼굴이 하도 죽상이길래 와봤어. 너한테 해줄 얘기가 생각나서. 얘기가 길어질 수도 있는데, 그건 이해해. 아줌마들은 원래 좀 그렇다니까.
너, 지금 취업이 그렇게 힘들어서 그러니? 무전무업(無錢無業-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도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을 무전무죄에 빗댄 말)에 청년실신(청년 실업+신용불량자)이라지? 라떼도 그랬어. 입사원서 80개 넘게 쓰고 나서야 겨우 취업에 성공했지.
취업하고 나니 쏟아지는 업무에, 야근 때문에 미치게 고단하니? 라떼도 그랬어. 아침 해 보고 퇴근하는 날도 제법 되었지. 똑같은 일하고도 승진은 딴 놈이 해서 킹 받니? 라떼도 그랬어. 승진 탈락에 구겨진 얼굴로 자리에 앉아있으면 지나가던 상사는 한마디 했지. “00 씨는 웃는 게 참 예뻐. 좀 웃어~.”
그런데 말이야. 너한텐 진짜 미안한데 말이야. 아직은 아니야. 주저앉아 울기에는 아직은 일러. 진짜는 오지도 않았거든. 진짜 인생의 쓴맛은 그다음이야. 고난이 파도처럼 3 콤보, 5 콤보로 이어지지. 4, 50대에 조기 은퇴? No~No~ 여자는 출산하는 그 순간부터 조기 은퇴야. 출산을 하면 모든 여자들은 같은 출발선에 놓여. 네 나이가 지금 20대든 30대든 상관없어. 네가 출산 전에 얼마나 눈부신 커리어를 가졌든지 상관없어. 네 이름 대신에 아이 이름과 ‘엄마’라는 게 붙기 시작하면 세상은 냉혹할 정도로 너에 대한 관심을 거둬가 버려.
오로지 아이와 아이 엄마만 중심이 되어버리지. 엄마들이 줄 따라 선 그 출발선에서 과거의 너는 내려놓아야 해. 무지하게 아까워도 그래야 해. 그래야 오늘을 살 수 있어. 누군가를 재우고 씻기고 먹이는 것에 네 몸뚱어리와 정신을 온전히 헌납할 때가 와.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야. 그리고 경험하게 되는 거야. 네 인생 최고의 괴력, 네 인생 최고의 책임감, 생명력. 매일이 니 게이지의 한계를 시험하게 되는 날이야.
이런 걸로 불평이라도 하면 네 앞에 자고 있는 아이 얼굴에 눈물 쏟게 된다. 너무나 사랑스러워, 너무나 미안해지거든. 아이 앞에 드는 죄책감으로 맘 놓고 푸념도 못해. 아이의 미소를 위로로 삼는 거지. 게다가 더 괴로운 건 책이든 TV든 엄마 보고 잘 하래. 엄마가 잘해야 애들도 잘 큰데. 그만하면 됐어. 언제까지 엄마들을 죄인으로 만들 거니? 그러니 둘째 안 낳는다고들 하잖아.
어떻게 애 엄마가 이런 얘기를 하냐고? 누구나 다 하는 엄마 일, 뭘 그렇게 유난이냐고? 내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겠니? 좀 모자란 자식으로 태어나서 좀 더 모자란 엄마로 된 거야. 누구나 다 엄마가 된다고 그 일이 당연한 건, 쉬운 건 절대 아니야. 그 쉽고 당연한 일을 누군가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겨우 해내기도 하는 거야. 엄마니까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고? 그런 말은 누가 만들어서 희생에 불평하는 엄마들을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거니?
자, 그러니, 거기 너. 지금 힘들다고 여기서 이러고 눈물 빼지 마. 앉아서 눈물 쏟는 것도 사치일 때가 오니까. 벌써 지치지 마. 진짜 체력의 바닥은 여기가 아니야. 발밑 저 아래 캄캄한 깊이를 알 수 없는 그곳이 네 체력의 바닥이니까. 그렇게 어깨 쳐져 있지 마. 너 스스로를 짊어지는 것보다 네 아이를 짊어지는 것이 어깨가 무너질 듯 훨씬 무거우니까. 그렇게 너 뒤에서 그렇게 힘들게 너를 지켜낸 엄마들이 있었으니까.
보니까 언니가 너무 겁만 준 거 같네. 엄마가 되는 게 겁나긴 하지. 엄마가 되기 싫다면 언니가 말리진 않을게. 그런데 말이야. 이 언니가 이거 하나는 약속할 수 있어. 네가 엄마가 되면 분명 전보다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 거야. 네 아이를 품고 나면 전에는 품을 수 없던 세상도 품을 수 있게 되거든. 네 자식뿐만 아니라 옆집 자식도 품게 돼. 하다못해 길 가의 새끼 강아지도 품게 된다.
가슴은 전보다 비록 쳐졌을지라도 네 마음은 더 넓고 깊어진다. 그렇게 전에는 이해 되질 않았던 세상이 참 많이도 이해할 수 있게 돼. 그도 누군가의 부모 혹은 남편과 아내, 혹은 자식일 테니까. 세상을 어미로 품을 수 있게 되니까. 그래서 전보다 세상 앞에 마음이 좀 더 편안해져.
또 아무 일 없는 하찮은 일상이, 그것이 곧 행복이라는 것. 그런 매직 같은 마음의 평화도 알게 돼. 전에는 “이것 말고 저것, 조금만 더 멀리, 조금만 더 높이”를 자신에게 늘 중얼거렸는데 이젠 그저 “딱 지금처럼만, 딱 오늘처럼만”이라는 만족을 누리게 될 때가 생겨. 늙어가는 주름이 처져가는 가슴이 서럽다가도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으로 기쁘게 보상받기도 해. 그러니 엄마 되는 거 각오는 하되, 너무 겁먹지 마. 엄마로 살며 찐으로 어른답게 한번 살아봐도 좋아.
아, 근데 이 언니가 너한테 한 가지 부탁 좀 하자. 길가다 서툰 엄마들 보면 이해 좀 해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빽빽 우는 애들 있어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 이해 좀 해줘. 그 엄마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젖었을 테니까. 알았지?
“왜 살아 있는 동안 사랑받는 존재, 떠났을 때 그리운 존재가 되도록 자신을 만들지 않는가? 왜 즐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도 즐겁지 않은 삶을 사는가? 왜 그렇게 사는가?”-세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