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는(live) 거니? 사는(buy) 거니?

정체성의 입증

by 이룰때

얘, 세상 얼마나 좋아졌니? 이렇게 집구석에서 앉아서 커피에다 케이크 배달도 시키고. 커피 뭐 시킬래? 아메리카노? 다이어트 중이라고? 요가-요요-헬스-요요-필라테스-요요-저탄 고지-요요-간헐적 단식-요요라고? 네 인생은 팔 할이 요요구나.


그런데, 언니가 뭐하나 묻자.

넌, 어떤 사람이야?

너무 뜬금없어 대답 못하겠다고? 그럼 다시 묻자.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자, 네가 왜 요요에 늘 시달리는 줄 아니? 물론 네 몸이 다이어트 때 줄어든 음식에 놀라 음식이 들어오는 대로 몸에 저장해놔야겠다 싶어 재빨리 지방으로 비축해버린 탓도 있겠지. 그런데 더 중요한 건, 네 생각의 요요야. 네가 너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던 그 생각, 그 생각이 다이어트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야.


초고도 비만에 시달린 한 여자가 있어. 이 여자도 사연이 많아. 한 구할 정도는 요요 인생이지 싶어. 어느 날 이 여자가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지. 자신이 진정 원하고 바라는 게 뭔지. 그걸 정리해서 깔때기에 넣어 참기름 짜내듯이 쭉 짜 보니 문장 하나가 뚝 떨어지는 거야.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다.”

딱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 저 한 문장이더라고. 그 뒤로 이 여인은 그 문장을 가슴에 새긴 채 지냈어.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머릿속 마음속에서 그걸 내려놓고 싶지 않았어. 잊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했지.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건강한 사람은 무엇을 할까?’ 운전을 할까? 아니면 걸어갈까? 오후에 커피숖에 들어서면서 ‘건강한 사람은 뭘 주문할까?’ 아메리카노를 주문할까? 카페모카를 주문할까? 식당에 들어서면서 ‘건강한 사람은 뭘 먹을까?’ 샐러드를 먹을까? 치킨을 먹을까? 집요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멈추지 않았어.


그리고 이 여자는 자신이 되고픈 사람의 모습대로 ‘건강한 사람답게’ 선택하고 행동했어. 그 결과 그 여잔 45킬로그램을 감량했어. 그리고 진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되어 버렸어.


네 정체성, 네 맘대로 만들어봐.


언니가 물었지? 넌 어떤 사람이냐고. 언니가 물은 건 너가 너 자신에 대해 가지는 생각, 즉 정체성을 물은 거야. 지금의 너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너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쥐어주면 돼. 그걸로 너는 전과 다른 새로운 선택, 새로운 행동을 할 수 있으니까.

“온 우주는 변화이고 인생은 의견이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자, 우리 오빠들이 늘 얘기했었어. 세상을 바라보는 의견, 생각, 감정을 변화시키면 넌 그 변화된 의견대로 세상을 인식하게 된다고. 그렇담 세상뿐 아니라 네 스스로에 대한 의견, 생각, 즉 정체성도 얼마든지 변화시키고 얼마든지 변화된 정체성대로 살 수 있단 얘기지? 이 정체성도 지난번 언니가 얘기한 세상사의 분류 중 두 번째, 니 맘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속하니까. 똥이 아닌 된장.

언니가 그랬지? 네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네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 너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한번 만들어. 니 맘대로~ 그리고는 너 자신을 속이는 거야. 마치 네가 그 정체성을 갖춘 사람처럼.


45킬로를 뺀 여자도 그랬잖아. 몸과 마음이 전혀 건강한 상태가 아니었지만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만들고 그걸 자신과 동일화시켰어. 그리고는 마치 자신이 건강한 사람처럼 선택, 행동했고 그 결과 미래의 정체성이 결국 현재의 실재 자신의 정체성이 됐잖아.


너, 변하고 싶어? 그럼 먼저 네 맘속에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체성부터 만들어. 삶의 방식, 태도, 습관은 쉽게 안 변해. 이것들은 그간 살아온 관성 때문에 수많은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재빠르게 원래 삶으로 되돌리려는 요요를 일으킬 거야. 그럴 때마다 네 정체성이 그 요요에 맞서 줄 거니깐.


너는 사는(live) 거니? 사는(buying) 거니?


자, 아까 언니가 새로운 정체성을 마치 지금의 너라고 착각하게끔 하라고 했지? “아! 이게 내 참모습이구나.”하는 착각. 어떻게 착각시킬 수 있을까? 너는 몰랐겠지만 넌 이미 그 방법 중 하나를 알고 있어. 그건 바로 쇼핑!


너, 지난번 언니한테 얘기했지? 얼마 전 유튜브에서 호리호리 호리병 몸매 가진 애가 귀 간지럽게 쏙닥거리는 목소리로 최근 직구로 운동복 샀네 어쩌고 하는 거 보고 너도 직구 질렀다며? 그 운동복. 그래. 그게 바로 그 방법이야. 그 운동복으로 마치 네가 그 호리병 몸매에 귀 간지러운 목소리 가진 여자가 된 듯한 착각을 갖게 하는 것.

나는 그것(물질)에게 나의 자아의식을 부여하고 따라서 그것은 나의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 정체성의 대상은 물질이다.(…)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필요 없는 물건을 억지로 사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을 갖고 있으면 자기 이미지가 혹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달라진다고 소비자가 생각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꿔 말하면 ‘나’의 자아의식에 보탬이 되리라는 믿음을 심어주면 되는 것이다.
-에크하르트 톨레의「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쇼핑은 새 정체성이 지금의 너인 것처럼 착각하게 할 수 있는 아주 손쉬운 방법이지. 그래서 많이들 저 방법을 쓰지. 침대에 누워 엄지, 검지 톡톡 몇 번으로 문 앞까지 물건이 날아와주니 편하긴 좀 편하니? 그 덕에 소비는 ‘나는 ~을 가지고 있다’는 소유의 문제를 넘어 이제는 '나는 ~을 가진 **한 사람이다’라는 존재의 문제까지 넘나들게 됐지. 네가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법한 것을 소유함으로써 네가 마치 ‘~한 사람’이 된 것과 같은 기분을 얻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요즘의 쇼핑이야.


그런데 말이야. 뭔가를 사기 시작하면 더 사고 싶어 져. ‘아직’, ‘미쳐’ 못 산 것들이 눈에 밟혀. ‘저것만 있으면 되는데’, ‘저게 없으니까’하고 자꾸 불행, 불만족을 못 가진 탓을 해. 그렇게 되면 네 행복은 ‘저것을 마침내 가지게 되는 때’로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는 거야.


정체성은 ‘~한 사람이다’이지, ‘~을 원하는 사람이다’가 아니야. 정체성은 주어진 것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이지, 무엇이 주어졌느냐의 문제가 아니야. 자꾸 ‘저것’에 집착하면 이미 너에게 주어진 것을 발전시킬 기회를 자꾸 버리게 돼. ‘저 것’ 말고 여기 있는 ‘이 것’에 집중해.


그리고 또 하나, 소비란 본질적으로 타인의 시선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어. 네가 그걸 입고, 그걸 차고, 그걸 타면서 그걸 본 타인이 알아봐 줬음 하는 거지. “나 이런 사람이야”하는 네 정체성을. 그런데, 언니가 처음에 정체성이 뭐라고 했니? 네가 너 자신에게 가지는 이미지, 생각이 정체성이라고 했지? 정체성의 입증은 남이 아닌 네가 너 스스로에게 하는 거야. 봐, 여기 우리 세네카 오빠도 얘기하잖아.

“당신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세네카

그러니 너 자신에게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확신을 주고 싶다면 쇼핑은 그다지 신통한 방법이 아냐. 다른 방법 써. 바로 행동. '그런 사람'이 되고 싶으면 그러한 행동을 하고, 그러한 행동이 일관되고, 그러한 행동이 쌓이고 쌓여 그러한 행동 자체가 자연스러워지면 네 정체성은 '그런 사람'으로 완성되는 거야. 소비는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감정의 충족에 불과해. 소비로 진정한 변화를 이루는 데는 한계가 있어. 진정한 변화는 “소유”가 아닌 “행동”이 쌓여서 이뤄지는 거니까.


그러니 호리병 몸매에 귓속말하는 여자의 운동복을 사는 게 아니었어. 그 여자가 하는 그 운동을 했어야지.


행동을 소비로 대체 말고 소비를 행동으로 대체해.

너를 사지(buy) 말고 너로 살아가(live).

너란 존재는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나가고 가꾸어나가는 존재야.

소비하며 쓰고 버리지 말고 행동으로, 경험으로, 네 인생 잘 모으고 간직해봐.

“자신이 소박하고 겸손하고 유쾌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도 어느 누구에게도 화내지 않으며 삶의 목표에 이르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순결하게, 조용하게 떠날 각오를 하고 자신의 운명과 사이좋게 지내며 삶의 목표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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