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를 위한 변명
넷플릭스에서 하도 추천으로 뜨길래 한번 더 봤어. 이태원 클라쓰. 너도 봤다고? 캐릭터들이 활어처럼 탱글탱글 살아 있는 게, 정말 흥미진진하지. 어? 장가 아저씨 꼰대 연기 장난 아니라고? 아, 그렇지. 장가 아저씨 정말 꼰대지.... 그래, 너, 얘기 잘 꺼냈다. 언니가 이참에 오늘 꼰대 얘기 한번 좀 해보자.
보니까 나이 들고 좀 고집 세고 잔소리 많이 하면 꼰대로 찍히더라. 꼰대 하면 보통 권위주의, 원칙 강요, 시대착오 뭐 이런 단어가 떠오르는데, 이 “꼰대”에 대응하는 말이 있어. 바로 “요즘애들”. “요즘애들”이 나이 든 사람을 “꼰대”라 하면 “꼰대”들은 “요즘애들은 참 000해”로 받아쳐주지. 주거니 받거니~
꼰대 VS 요즘애들?
이 언니가 처음 이태원 클라쓰를 보면서 이게 “꼰대-장대희” vs “요즘 애들-박새로이”의 구도로 봤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더라고.
이 둘의 특징을 살펴보면 재미있어. 비슷한 듯 다르다는 거야. 일단 둘 다 자수성가를 했어. 근데 박새로이의 자수성가 신화는 기존 기성세대, 전후세대의 성공신화와 참 많이 닮았지.(중졸에 막노동 등) 게다가 둘 다 부르주아야. “꼰대” vs “요즘애들”의 대결구도라면 흔히들 사장님(자본가) vs 직원(노동자)의 구도여야 할 텐데, 사장 vs 사장의 구도야. 재미있지.
그런데 새로이의 복수 행보는 굉장히 계획적이고 신중해. 15년의 계획을 세우고 때를 잘 살펴 한 단계씩 실행 해나가지. 한순간의 대박을 노리지 않아. 그런데 이 꼰대 장가 아저씨는 가끔 새로이에 대한 감정(적대감)에 치우쳐 즉흥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해.
가장 흥미로운 건, 새로이의 똥고집이야. 새로이는 사람, 신뢰 등의 원칙을 줄기차게 고수하는데 장대희는 사리가 밝은, 실리를 강조하지. 이렇게 보면 말이지, 새로이와 장대희에게는 둘 다 각자 젊음의 수단과 관록의 수단이 막 섞여 혼재되어있어. 대체 누가 “꼰대”고 누가 “요즘애들”이니? 그러니 이 대결구도는 “꼰대” VS "요즘애들"의 구도가 아냐. "늙은 꼰대"와 "젊은 꼰대"의 대결이지. 그런 면에서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의의 중 하나는 꼰대의 의미를 재정의 내렸다는 것. “꼰대”에게서 “나이”를 떼어내고 거기에 “경험”을 대체한 것이지. 기존의 ‘늙은이’를 지칭하는 은어인 “꼰대”를 이 드라마로 이렇게 정의 내리고 있어.
* 꼰대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에서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나이 많은) 사람
그런데 말이야. 사실 기존의 “꼰대” VS “요즘 애들”도 그 나이가 본질이 아냐. 가지지 못한 자가 가진 자에 대한 열등감이 본질이지. 뭔 소리냐고? 자, 언니 얘기 들어봐. “꼰대”와 “요즘애들”은 각자가 상대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어.
꼰대 : 권위, 돈, 여유 / 요즘애들 : 개성, 자신감, 가능성
이때 서로는 상대에게 “꼰대”, “요즘 애들”하면서 상대방을 깎아내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이를 깎아내리면서 자신이 우월해지는 듯한 기분을 교묘히 즐기는 거지. “꼰대야, 꼰대”, “요즘애들은 참, 나”하면서 자신의 열등감을 스리슬쩍 안 들키게 해소하는 거야. 자, 언니가 좋아하는 대머리 오빠 얘기 또 꺼내야겠네. 알랭 드 보통이 얘기했어.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만한 인물이 못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알랭 드 보통,「불안」
언니가 앞에 한 얘기를 이 오빠가 다시 한번 고상하게 잘 풀어줬지? 한마디로 “자기 확신”이 부족한 사람들은 상대를 깎아내리면서 자기만족을 얻는다는 거야. 자, 여기서 나오지? 어제 언니가 얘기했던 “자기 확신”! 강인한 자기 확신을 가진 오빠들 있다고 했지? 왜 전에 얘기했잖아. 스토아 철학하는 오빠들 말이야.
상꼰대 오빠들 얘기
꼰대를 얘기하자면 이 오빠들만 한 상꼰대가 없지. 왜냐? 일단, 오빠들이 강해. 자신들의 생각이 되게 강해. 게다가 이 오빠들이 살았던 시대가 그리스, 로마시대잖아. 무려 2천 년 전! 세상에! TV도 신문도 없던 때 살던 오빠들 얘기가 검지 하나로 지구 반대편 노랑머리와 친구 먹는 이런 휘황찬란한 세상에 뭔 소용 있겠냐 싶은 거지. 시대가 어느 땐데 이런 고리타분한 구닥다리 오빠들 얘기를 듣고 있어야 하나 하는 거지. 솔직히 너도 그렇게 생각했지?
자, 그럼 언니가 또 중요한 얘기 좀 해야겠네. 한번 잘 들어봐.
여기 자동차가 있어. 지금에 비하면 완전 구닥다리 자동차야. 우리나라 최초 자동차지. 최 씨 집안의 삼 형제가 밤낮없이 매달려서 겨우 4달 만에 이 차 한 대 만들어냈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 차 이름을 “시발(처음 ‘시’始, 출발 ‘발’發)”이라 지었지. 처음 달리는 자동차라는 의미로 그리 지었다는 데. 어쨌든 최 씨 삼 형제의 “시발”이 처음 달린 이후로 이제 60여 년이 지났어. 세기가 변했어.
지금은 뭐 자동차 속도처럼 자동차 생산도 쏜살같이 팍팍 이뤄지지. 이 자동차가 세상에 나오는 산고의 시간은 고작 1분도 안 걸려. 컨베이어 벨트 옆에 서있는 자동차공은 최 씨 삼 형제처럼 고생할 필요도 없어. 나사 쪼으기만 열심히 하면 되거든. 그래서 지금은 “시발”이라는 이름의 차가 없잖아. 그러니 저 자동차공은 최 씨 삼 형제에게 작금의 찬란한 기술적 진보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겠지. 좋은 세상에 태어났다 자축도 할 거고. 그런데 이렇게 한번 가정해보자.
“자동차가 달리다가 갑자기 멈췄다. 고장이 났다. 어떻게 해야 할까?”
최 씨 삼 형제는 당장 자동차에 덤벼들겠지. 조립 하나하나 다 했으니 자동차 구석구석부터 전체까지 훤히 꿰뚫고 있겠지. 머지않아 고장 난 원인을 발견할 거고, 원인만 알면 땡. 해결되는 거지. 자동차공은? 앞바퀴의 나사만 죄던 자동차공은? 멈춰버린 자동차가 왜 멈췄는지 원인조차 파악할 수 없지. 왜냐? 이 사람은 자동차를 아는 게 아니라 앞바퀴만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그렇담, 대체 최 씨 삼 형제와 자동차공 중 누가 더 자동차를 많이 아는 거니?
자, 언니 얘기 아직 안 끝났어. 더 들어봐. 꼰대 중에 상 꼰대인 스토아 철학하는 오빠들. 스토아 철학의 내용을 보면 윤리학, 천문학, 경제학, 정치학, 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여러 분야의 학문이 한데 어우러져있어. 한마디로 이 오빠들 수준이 최 씨 삼 형제야.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너무 많이 세분화, 전문화되어있지. 우리는 저 자동차공처럼 앞바퀴 나사 죄는 거에 아주 전문화되어있는 거야. 자, 그럼 또 가정해보자. “인생을 살다 갑자기 멘붕이 왔다. 정신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똑같이 직면한 상황에서 오빠들과 네가 어떻게 다를지는 이 언니가 입 아프게 얘기 안 해도 알지?
고대는 미처 분화되기, 전문화되기 전이야. 그래서 세상과 인생을 본질적, 통합적으로 봤지. 시간이 지나 지금은 세분화, 전문화로 곳곳에 벽, 칸이 쳐져있어.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것만 볼 수밖에 없지. 자동차공이 나사만 보듯 좁고 얕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라 얽힌 실타래 같아 보이는 인생의 문제들에 스스로 그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리지. 그래서 언니가 오빠들 얘기를 자꾸 하는 거야. 이 오빠들 얘기를 듣고 있으면 경마장 말 같은 좁은 시야가 팍팍 확장이 된다고. 쳐져있던 칸이 열리고 세워진 벽이 무너지는 거지. 더 근본적이고 더 총체적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을 갖게 되는 거야. 새로운 안경!
오래된 물질은 구질구질하고 따분하고 무가치한 것일 수 있어. 그런데 오래된 정신은 낡지 않아. 언제나 생생하고 신선해. 너, 얼마나 살 것 같니? 뭐, 언니가 인심 크게 써줘서 100세까지 산다 치자. 그런데 이 오빠들의 정신은 너보다 20배는 더 오래 살았어. 그 무거운 2천 년 세월의 먼지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고 있다고. 그것만으로 꼰대 중에 상 꼰대 우리 오빠들 얘기,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아? 오늘은 언니가 얘기가 많이 길었네. 헤어지기 전에 언니가 스토아 철학 3명의 오빠 중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 좀 덧붙일게. 오랜 세월의 먼지에도 여전히 생생하게 빛나는 말이야.
“앞으로는 너 자신이라는 작은 영역으로 은신할 생각을 하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빗나가거나 긴장하지 말고 자유인이 되어 남자로서,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죽게 마련인 동물로서 사물을 보도록 하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