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냐,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데
성공, 하고 싶지? 어쩌냐,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데....
자, 언니가 너 좋아하는 드라마 얘기 한번 해볼게. 드라마에서 처음 1화에서 한 5화까지는 못 살고 지지리도 박복한 우리네 여 주인공 얘기가 나와. 가끔 왕싸가지 재벌 2세한테 몇 번 모욕도 당하고. 그러다 한 5화~10화에 이르러서는 이 박복녀가 불현듯 시작한 사업이 초 대박이 나. 그때 가서는 이 왕싸가지 재벌 2세가 조금씩 말랑말랑 거리기 시작해. 그러다 마지막 회인 16회에 이르러서는 이 박복녀는 세상없는 때복을 거머쥐지. 일타쌍피로 큰돈도 벌고 재벌 2세와 결혼도 하는 해피엔딩. 드라마의 결론은 그래.
그렇다면, 현실에선 어떨까? 네 현실은??
시. 궁. 창
누가 그랬니? 꿈만 꾸기만 하면, 맘만 제대로 먹으면 바꿀 수 있는 게 인생이라고. 큰 꿈 꿔라, 도전하라, 누려라.(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 책을 사라! 일단 이 강의를 들어라! 일단 이 유튜브를 구독하라!...) 등등. 언제부터 이런 목소리들에 이끌려서는 마치 이 생이, 이 지구가 너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대단한 착각에 빠지게 되었을까?
꿈이라는 건 도대체 언제 이뤄지는 거니?
자, 언니가 오늘은 이 오빠 소개해줄게. 라이언 홀리데이라고. 이 오빠도 스토아 철학 완전 찐 팬이야. 이 오빠가 한 얘기야.
“지금 우리 사회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에고의 불길에 사납게 부채질을 해댄다. 역사를 되짚어볼 때 지금처럼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고 부풀려서 말하기 좋은 때가 없었다.(…) 부모와 교사, 사회적 명사들, 주위 사람들 모두 크게 생각하고 크게 살라고, 기억에 남을 만한 사람이 되고 위대하게 도전하라고 말한다.” - 라이언 홀리데이, 「에고라는 적」
그래. 요즘 세상, 참 너 스스로에게 너무 큰 기대를 갖게 한다, 그지? TV, 영화, 책 모든 미디어들이 "그들은 이렇게 성공했다. 당신들도 성공할 수 있다!” 그렇게 부채질을 해대고....
옛날에는 풍문에서나 떠돌거나 혹은 들을 일 없던 남 얘기를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너무 쉽게 알게 되지. 그 덕분에 너와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연매출 수십억 달성했다는 참 배 아픈 얘기도 알고 싶지 않아도 굳이 알게 돼버리지. 꿈꾸기만 하면 바라기만 하면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부풀리는 여러 자기 계발 책들도 여기에 한몫들 하지.
그러다 보니 자꾸 성공이 만만하게 느껴져.
그러다 보니 자꾸 너도 성공하고 싶어 져.
그러다 보니 자꾸 너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말이야.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너는 여전히 성공을 “이룬” 것이 아닌 아직도 성공을 “꿈꾸고” 있는 사람이 되어있지. 꿈을 꾸고는 있지만 아직도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
그럼 너, 실패 한 거니?
그럼 너, 무능력한 거니?
"발전한 사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전보다 높아진 소득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를 더 부유하게 해 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볼 때 우리를 더 궁핍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무제한의 기대를 갖게 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 우리의 현재의 모습과 달라졌을 수도 있는 모습 사이에 늘 간격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원시의 야만인보다 더 심한 궁핍을 느낄 수 있다."-알랭 드 보통의 "불안"
그래. 보통 아니게 똑똑한 알랭 드 보통 오빠의 얘기야. 쌀밥 걱정 없는 지금이 쌀조차 없던 시절보다 더 배고파졌단 얘기지. 마음이 굶고 있단 얘기야.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기대하는” 마음이 굶고 있다는 거야.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큰 떡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가 도통 충족이 되지 않아서 그래서 고픈 거야. 너도 고프지?
있지. 이 언니가 살아보니, 꿈이라는 것을 이루려면 꿈을 많이 꾸는 것보다 차라리 그 꿈을 잊고 사는 게 더 낫더라. 이 말이 뭔 말이냐고?
네가 뭔가를 이루기 위해 목표를 정하고 그걸 ‘꿈’이라고 이름을 붙였어. 그다음 순서는 당연히 꿈을 이루기 위한 숱한 노력의 과정이 이어져 야만 하지. 그러나 대부분은 말 그대로 꿈만 꾸고 있을 때가 많지. 왜냐? 그게 가장 편하고 기분 좋으니까.
책상에 턱을 괴고 펜으로 다이어리에 꿈 몇 자 적었다고 그걸 노력으로 착각하는 거야. 마치 “꿈을 꾸는 것”(꿈을 쓰거나, 꿈을 말하거나, 혹은 상상, 망상, 환상 등등) 그 자체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언니는 누군가가 꿈을 정말 이루고 싶다면 그 꿈을 열심히 꾸기보다는 그냥 그 꿈을 잊어버리라고 말해. 그 꿈을 잊어버리고 그냥 오늘 할 일을 하는 거야. 성공한 인생을 살려면 성공한 오늘을 먼저 만드는 게 순서야. 10년 뒤의 일을 마치 오늘 일처럼 착각하면서 꿈만 붙들고 있지 말고 그 꿈을 위해서 오늘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오늘 일을 땀 흘려하는 거야. 그렇게 수많은 오늘들이 쌓이고 쌓여서 너의 찬란한 1년, 5년, 10년이 완성되는 거야.
얘, 그러니 꿈을 꾸지 말고 그냥 꿈을 잊고 살아. 앉아서 꿈꿀 시간에 땀 한 방울이라도 더 흘려. 그게 몇 배, 수십 배, 수백 배 더 승산 있으니까.
자, 언니가 좀 극단적인 예를 들어볼게.
세계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사회에서는 작곡가로 이름을 꽤 날렸던 한 음악가가 수용되었어. 수용소에서는 누구도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지. 무슨 일을 했던 사람인지도 중요하지 않았지. 그저 수감번호로만 불릴 뿐이었어. 지옥 같은 수감생활이 이어지던 1945년 2월 어느 날, 꿈을 꾸게 되는데, 꿈속에서 어떤 비상한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 목소리가 말하길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쟁이 머지않아 3월 30일에 끝날 거라는 거야.
꿈에서 깨어난 이 사람은 그냥 너무나 행복했어. 3월 30일이면 이 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그 희망만으로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 거야. 하루하루가 행복이었고 그 잔혹한 노동도 힘든 줄 몰랐어.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지나가지만 현실에서의 전쟁은 전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
어느덧 3월 29일.
갑자기 그 사람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 그리고 기다려왔던 3월 30일. 그날이 되었지만 불행히도 여전히 전쟁 중이었지. 결국 시름시름 앓으며 헛소리만 중얼거리다 정신을 잃고는 3월 31일에 그만 사망하고 말았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던 주치의의 말에 따르면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평소랑 달리 급격하게 증가했었데. 그 원인은 가혹해진 노동조건이 아니라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야. 성탄절이 되어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리지 않자 그만 용기를 잃고 절망감에 빠졌고 이런 심리적 문제가 면역력에도 영향을 미쳐 사망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지.
좀 극단적인 얘기를 했지만 결국 현실에서 벗어난 막연한 꿈, 희망은 오히려 독이라는 얘기야. 인생에 대가 없이 이뤄지는 게 어디 있디? 인생에서는 무언가를 얻게 되면 지금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있어. 꿈을 꾸는 것보다 땀 흘리는 게 더 힘들지. 그러나 그 땀이 바로 네 미래에 대한 대가야. 넌 적금을 붓듯 조금씩 조금씩 찬란한 미래의 값을 부지런히 치러가고 있는 거야.
그래도 꿈을 꾸고 싶다고? 그렇다면 그 꿈, 제대로 꿔봐.
그 꿈을 위한 유일한 순간인 오늘에 너무나 충실한 나머지 까맣게 그 꿈을 잊어버리는 것. 그 순간이 바로 네가 진짜 제대로 꿈꾸는 순간이야.
“목표를 향해 서둘러라. 그리고 헛된 희망을 버리고 너 자신이 염려된다면 아직도 그럴 수 있을 때 너 자신을 돕도록 하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