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이 안되니?>
오늘은 언니 얘기 좀 먼저 해볼게. 언니는 격랑의 30대를 지나고 나름 잔잔한 40대를 보내고 있어. 인생의 큰 파도를 한번 넘게 되면 사람은 달라지기 마련이야. 그래서 언니의 20대와 40대는 큰 차이가 있지. 그래도 한 가지 변함없이 유지하는 게 있지. 바로 다이어리 쓰기야. 내가 오랜만에 20대대 쓴 다이어리를 뒤적였더니, 이건 뭐랄까. 소설 수준이더라고. 뭐가 그렇게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은지. 10년, 20년이 지난 지금 뭘 이뤘냐고? 못 이룬 게 대부분이야.
그땐 그 꿈들이 참 절실했었는데. 돌아보니 진짜 노력은 없고 가짜 노력만 하고 있었더라. 예쁘게 또박또박 다이어리에 목표만 적는 것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착각, 친구나 카톡 프로필에 목표 얘길 하면서 노력하고 있다는 착각 말이지. 지금은 뚜렷이 보이는데 그때 목표를 쓰며 놓친 게 있더라고. 바로 “운. 이. 좋. 으. 면.”이야.
공무원 시험은 네 노력만으로 완벽하게 달성 가능할 것 같지? 아니야. 네가 영혼이 탈탈 털리도록 문제집 들고 공부한다고 해서 합격이 보장되니? ‘운 좋게’ 그해 문제 출제가 내가 공부한 수준에 딱 맞게 출제되거나 ‘운 좋게’ 그해 경쟁률이 낮았다거나 등등 수많은 ‘운 좋게’가 맞아떨어진 상황에서야 비로소 “합격”이야.
취업은 또 어떻고? 네가 한 회사를 선택하여 지원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회사가 너를 선택해주면 그제야 “합격”이야. 그런데도 넌 다이어리에 목표를 쓸 때, (운이 좋으면) 취업하기, (운이 좋으면) 결혼하기, (운이 좋으면) 내 책 출간하기 등 실제로는 “운이 좋은” 상황을 기대하면서도 이 “운이 좋으면”을 호기롭게 삭제해버리지. 그리곤 그 목표의 달성이 마치 온전히 네 노력만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지. 얘, 그런데 말이지. 운이 없으면 어쩔래? 그럼 내년 2023년 다이어리에도 올 해랑 똑같은 목표를 적고 있겠지? 또 그런데 말이야. 내년에도 또 운없으면 어쩔래?
“행복은 우리 뜻대로 해낼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구분하는 능력에 비례한다.”-에픽테토스
이 오빠의 말은, 다시 말해서 우리가 행복하려면 “구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거야. 핵심은 구분이야 구분.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구분해둬야 하는 게 뭐지? 바로 똥인지, 된장인지의 구분이지? 그래. 우리 쉽게 얘기해서 앞으로 네 뜻대로 될 수 없는 건 그냥 똥, 그나마 네 뜻대로 될 수 있는 것은 된장이라고 해두자. 자, 언니 얘기 더 들어봐. 얘기 아직 안 끝났어.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또 이런 얘기를 했어.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윌리엄 제임스
이 오빠 말을 간단히 도식화하면 “내 자존감의 크기=실제 시도해서 달성한 것/기대하는 것” 요렇게 될 거야. 자존감의 크기가 커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수가 커지려면 분자가 커지거나 분모가 작아져야지? 즉, 내 자존감이 커지려면 실제 시도해서 달성하는 게 많아지거나 아니면 기대하는 것이 적어지거나
얘, 이 둘 중에 쉽게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은 뭐겠어? 그렇지. 그냥 기대감을 낮추는 거야. 원시시대보다 지금 사람들이 마음이 굶주린 것은 원시시대 사람들에겐 없던 무한대의 “기대”때문이야. 그래. 이 "기대"가 문제인 거야. 자, 이번엔 여기 윌리엄 제임스 얘기와 아까 에픽테토스 얘기를 한번 합체시켜볼까? 그럼 이런 문장이 뽑아지지.
“삶에 문제들에 내 뜻대로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구분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차라리 기대조차 않는 편이 현명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이것들을 언니가 아까 뭐라고 했지? 그래. 똥. 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똥. 똥을 부여잡고 있음 안 되지. 빨리 자리를 떠야지. 네 통제 권한 밖의 일은 깨끗하게 손 씻고 머리 털고 그냥 돌아서. 뭐? 그거 비겁한 거 아니냐고? 얘,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자, 언니가 다시 얘기하니 잘 들어봐. 네 뜻대로 되지 않는 문제를 내려놓는 것, 네 권한 밖의 일에 마음 쓰지 않는 것. 이건 비겁이 아니야. 오히려 용기야. 그동안 네가 세웠던 목표, 야망, 꿈을 한번 냉정히 봐봐. 네 맘대로 이뤄질 수도 없는 것들을 언젠가는 이뤄지겠지 하고 마음에 품고는, 그 꿈속에 살면서 마치 꿈을 이룬 듯한 기분 좋은 착각을 즐겼던 건 아니니? 그 환상에서 깨어나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은 내려놓는 것. 이건 진짜 비겁이 아니라 용기야.
그렇게 용기 있게 너와 마주하고 나면 이제 네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시간낭비 않고, 다른 것에 고달파 않고 네 의지와 권한으로 이룰 수 있는 것에 몰두할 수 있어. 네가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네가 통제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해. 집중할 가치가 있는 것들에 집중해. 집중해야 할 것들에 집중해.
40대인 이 언니의 다이어리 맨 앞장에 쓰인 올해 목표에는 지지리도 운 없어도 거뜬히 이뤄낼 목표만 적어뒀어. (가족사진앨범 정리하기, 매일 소설 30분 쓰기, 아이와 영어 그림책 한편씩 읽기 등등) 운 좋으면 이뤄낼 화려한 꿈 말고 운 따위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오로지 너의 노력만으로도 완성되는, 오늘 당장 실천해볼 수 있는 그런 목표를 세워.
세상을 정복하고 싶니? 그럼 너 자신부터 정복해. 네가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그것부터 제대로 해. 다른 데 저 멀리 앞서간 사람 등짝 보고 있지 말고, 네 발치 앞에 놓여있는 돌멩이부터 솎아내. 멋진 인생을 만들려면 먼저 멋진 하루를 보내야 하니까.
“부를 정복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정복하고 기존의 질서보다는 나의 욕망을 바꾸려고 노력하며 자신의 생각 이외에는 그 무엇도 온전히 통제할 수 없음을 믿으며 그럼으로써 삶에 최선을 다한 후에는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되리라.”-윌리엄 B. 어빈, “직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