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비판을 피하려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되지 말라. 인생의 궁극적 가치는 생존이 아니라 깨달음과 사색의 힘에 달려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
회사를 다닐 때, 나는 "안전한 기획자"였다.
회의에서 논쟁이 될 만한 의견은 내지 않았고, 기획서에도 거절당할 만한 아이디어는 넣지 않았다.
상사가 "이건 좀 위험한데?"라고 하면 바로 수정했다.
그렇게 10년을 일했다. 큰 실패도 없었고, 비판도 거의 받지 않았다.
그래서 퇴사 후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기 위해 잦은 이직을 했다.
하지만 이 잦은 이직은 족쇄가 되어 면접 때마다 곤란하게 하는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이직이 잦은데 이유가 뭔가요?"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이직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현 프로젝트 종료 후 계획은 있으신가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한 회사에 오래 다닌 것이 아쉬워 시작한 도전이 무색하게 아직까지 내 길을 못 찾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비판을 피하느라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도전을 통해 나는 결국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것처럼 그 어떤 결론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생각하고 도전한 걸 끝까지 해보기라도 할 걸. 시도 후 완결 내지 못한 잔재들만 앙금처럼 남아 안 하느니 못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강의가 부족해서 비판받으면 어떡하지?"
"내가 가르칠 자격이 있나?" 두려웠다. 하지만 첫 강의를 시작하고 깨달았다.
비판을 감수하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강의하고 싶은 사람"으로만 남는다는 것을. 비판받을 용기가 있어야 "강의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그 후회와 깨달음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말을 만났다.
"시도는 했는데 왜 아무것도 아니게 됐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대꾸: "비판을 피하려면 아무것도 되지 말라.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봐. 인생의 가치는 생존이 아니라 사색하고 완결하는 힘에 있다."
순간 이해했다. 나는 비판이 두려워 여러 곳을 옮겨 다녔지만, 어느 곳에서도 끝까지 해보지 않았다.
"여기서 비판받으면 어떡하지", "이게 내 길이 아닐 수도 있어"라는 두려움에 중도에 그만뒀다.
시도는 했지만 완결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됐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의 의미를 이제야 깨달았다. 반쪽짜리 시도는 안 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강의는 달랐다. 비판받더라도 끝까지 해보기로 했다. 한 기수를 시작하면 끝까지 완결하기로 했다.
게임을 기획하다 보면 "미완성 퀘스트"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게 된다.
플레이어가 퀘스트를 시작하고, 중간까지 진행하다가 포기하면? 그 퀘스트는 진행률에만 남을 뿐 아무 보상도, 성취감도 없다.
반면 완료한 퀘스트는 보상과 경험치를 준다. 과정이 어려웠어도 완료하는 순간 의미가 생긴다. 시도는 중요하지 않다. 완결이 중요하다.
나는 그동안 여러 퀘스트를 시작했지만 완료하지 않았다. 비판이 두려워 중간에 그만뒀다. 그래서 진행률만 쌓이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강의는 달랐다. 어렵고 비판받더라도 끝까지 완주하기로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곱씹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비판을 피해 중도 포기할 때:
"여기서 비판받으면 어떡하지"
"이게 아닌 것 같아, 다른 곳으로 가자"
"시도는 했으니까 됐어"
→ 시도는 했지만,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비판을 감수하고 완결할 때:
"비판받더라도 끝까지 해보자"
"이 한 가지는 완성하자"
"결과를 만들어내자"
→ 비판받지만, 진짜 무언가가 된다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많이 시도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완결했느냐였다.
그날부터 나만의 '완결의 용기 루틴'을 만들었다.
매일 저녁: 완결 기록
- "오늘 끝까지 해낸 것은?" 기록하기
예: "강의 1회차를 완료했다"
중도 포기 점검
- "오늘 비판이 두려워 멈춘 것은?" 관찰하기
예: "글을 쓰다가 비판받을까 봐 공개를 미뤘다"
완결 다짐
- "내일은 무엇을 끝까지 해볼 것인가?"
예: "LinkedIn 글을 완성해서 올린다"
처음엔 두려웠다. 완결하면 비판받을까 봐. 하지만 몇 달이 지나니 달라졌다.
강의 한 기수를 완주했다. 비판도 받았다. "이 부분은 좀 아쉬웠어요", "설명이 어려웠어요." 하지만 괜찮았다. 끝까지 완결했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잦은 이직으로 아무것도 아니게 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강의를 완주한 사람"이 되었다.
"비판받을까 봐 끝까지 해보지 못하겠어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대꾸: "비판을 피하면 안전하지만 아무것도 아니게 돼. 끝까지 완결해야 진짜 무언가가 되는 거야."
퇴사 후 2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잦은 이직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한 탓에 몇 번의 면접을 탈락으로 끝맺음을 했다.
그래서 더 최근의 면접이 더 간절하게 다가왔다.
지금도 사실 모르겠다.
시간을 저당 잡혀 업무를 할 거라면 프리랜서가 아니라 다시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이왕이면 콘솔 등 안 해본 장르와 플랫폼을 도전해보고 싶다. 그 외엔 모르겠다.
잘 달리다가 가끔씩 제동이 걸리긴 하지만, 이 제동이 있기에 생존이 아닌 가치를 생각할 쉼의 시간도 있다고 본다.
육아와 프리랜서, 강의 등 쉬지 않고 달리던 시간에 잠시 시간을 내 본 면접 내용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속 답답하게 자리 잡은 날이다.
"보통 N사 출신으로 오래 재직하면 커리어 생각해서 새로운 도전은 잘 안 하는데 신기하네요."
"강의도 하고 프리랜서도 할 만큼 진취적인데 꿈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없으신 것 같아요."
오늘은 이 질문이 내 안에서 외면했던 답을 구하고 있는 밤인 것 같다.
그동안의 포기한 수많은 시도들을 돌아보며, 이제라도 비판받더라도 끝까지 완결하여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생의 가치는 생존이 아니라 깨달음과 사색의 힘에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힘은 완결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에,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 그것이 생각하며 존재하는 용기를 가지고 싶다.
존재는 시도가 아니라 완결에서 온다. 비판을 감수하고 끝까지 해내는 것, 그것이 진짜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