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의 대화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여야 하며 스스로의 생각으로 자립해야 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세상에 표현할 권리가 있다."
– 임마누엘 칸트
회사 재직 시절, 나는 "좋은 기획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상사가 원하는 기획서를 쓰고,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설계했다.
회의에서 반대 의견이 있어도 "상사의 의견이니까. ", "선배들이 그렇게 하니까" 하며 따랐다.
그렇게 한 회사에서 8년 넘게 일했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고, 평가도 좋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상한 질문이 떠올랐다.
"이게 진짜 내가 원한 기획일까?"
8년을 한 프로젝트에 있다 보니 아는 것이 많아져서일까?
회사에서 현 프로젝트를 L 형태로 변경하자는 디렉터의 의견에 나도 모르게 의견을 나왔다.
"우리 게임은 L이 아닙니다. 현재 봇 대응으로 필드 보상이 없는데 L형식으로 한다면 필드 보상을 다시 지급한다는 것인가요? 그리고 현 DPS 방식도 문제가 많아 보스 로딩이 끝나기 전에 이미 처치하는 이슈가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대응도 없이 L 형태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의견 뒤에 들은 말은
"나대니까 좋냐?"
결국 나는 내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디렉터에게 사과하고, 팀을 떠나야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더욱더 의견을 내는 것이 두려워졌고, 윗 분의 생각에 맞춰서 기획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내가 쓴 기획이 과연 윗 분에 마음에 들게 쓴 것인지 검증하고, 인증받아야 한다는 두려움에 자신감이 점차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혼란 속에서 칸트의 이 말을 만났다.
"회사에서 인정받으려면 그들의 방식을 따라야 하는 거 아닐까?"
칸트의 대꾸: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여야 하며 스스로의 생각으로 자립해야 한다. 허락받으려 하지 말고, 스스로 사유하라."
순간 이해했다.
칸트가 말하는 계몽(啓蒙)이란 바로 이것이었다. "감히 알려고 하라(Sapere aude)". 타인의 판단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용기를 가지라는 것.
나는 그동안 "좋은 기획자"라는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고 있었다.
회사의 허락, 상사의 승인, 업계의 관행. 자유는 누군가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인데, 나는 계속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게임을 기획하다 보면 NPC와 플레이어의 차이를 명확히 느낀다.
NPC는 스크립트대로 움직인다. 정해진 대사를 하고, 정해진 루트를 따라간다. 반면 플레이어는 자유롭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길을 만들어간다.
NPC는 허락받은 범위에서만 존재한다. 플레이어는 스스로 세계를 탐험한다.
나는 그동안 NPC처럼 살았다. 정해진 스크립트를 읽고, 허락받은 범위 안에서만 움직였다. 진짜 자유는 플레이어가 되는 것, 스스로 사유하고 표현하는 것이었다.
칸트의 말을 곱씹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타인의 기준으로 생각할 때:
"이게 업계 표준이니까 따라야 해"
"상사가 원하는 방향이 맞을 거야"
"다들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래야지"
→ 자유를 잃고, 스크립트를 읽게 된다
스스로 사유할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해"
"이게 더 나은 방법일 수 있어"
"내 관점에서 표현해 보자"
→ 자유를 만들고, 내 이야기를 쓴다
자유는 허락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힘이었다.
그날부터 나만의 '사유의 자유 루틴'을 만들었다.
매일 저녁: 생각 일기
- "오늘 진짜 내 생각으로 한 결정은?" 기록하기
예: "회의에서 내 의견을 말했다"
기준 점검
- "오늘 누구의 기준을 따랐나?" 관찰하기
예: "상사의 의견에 무조건 동의했다"
내 목소리
-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예: "이 방법보다 사용자 중심 설계가 낫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두려웠다.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면 튀는 사람이 될까 봐. 하지만 몇 번 실천해 보니 내 안에 웅크린 자신감이 나타났다.
회의에서 내 의견을 말할 땐 디스코 음악처럼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신나게 말하기 시작했다.
거절당해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허락이 아니라 내가 사유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작은 자유들이 모여 큰 용기가 되었다.
"내 생각대로 하면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요."
칸트의 대꾸: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할 권리는 허락받을 게 아니야. 그게 자유로운 인간의 본질이야."
퇴사 후, 나는 더 이상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내 방식으로 기획하고, 강의에서 내 생각을 표현하고, 이렇게 글로 내 관점을 쓴다.
인정받을지 안 받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다. 이건 내 사유라는 것.
칸트의 말처럼, 모든 인간에게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표현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회사가 주는 게 아니고, 상사가 허락하는 게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걸 사용할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
자유는 허락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힘이다. 오늘부터 스스로 사유하고 표현하는 것, 그것이 진짜 자유다.
당신은 오늘 누구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나요? 진짜 내 목소리를 내고 싶다면 무엇이 필요한지 댓글로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