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즐기며 들판에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예쁜 돌멩이 하나를 인벤토리에 넣으려고 했을 뿐인데... 무게 제한이 걸렸네요.
'돌멩이 하나 안 넣으면 되지'
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인벤토리는 나에게 허용된 소득 상한선이자 생존의 임계점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모두 각자에게 할당된 슬롯과 무게 제한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정된 칸에 무엇을 채우느랴를 고민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벤토리의 모든 칸을 '금전적 가치가 높은 것'이나 '스탯을 높여주는 장비'로 꽉 채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소득의 상한선까지 꽉꽉 눌러 담지 않으면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낙오될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죠.
최강자를 벗어난 지금
기존의 '가치 높은 것'으로 채워진 인벤토리는 없습니다.
대신 '가치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로 새롭게 채워져 있죠.
이런 인벤토리를 보여주면 주변에서 이런 말을 건네기도 합니다.
"아이구 기사님!! 인벤토리에 웬 말린 풀때기랑 조약들만 가득합니까?, 이런 걸로 인벤토리 낭비하시면 랭킹에서 영영 밀려나요!!"
"랭킹이요? 귀찮아서... UI 알림 꺼버렸는데요.. 헤헤"
"아니, 그래도 남들 버는 만큼 벌어야지! 가방 확장도 좀 하시고..."
"아... 가방 확장요... 무거우면 하품도 못해요. 전 지금의 나른한 상태가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더 가치 있는 것들로 채워야 한다고... 그리고 더 채울 수 있게 상한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요.
일리 있는 말입니다.
더 큰 그릇이 되어 더 많은 성취를 담는 것, 그것은 아주 훌륭한 '성장형 메타'입니다.
하지만 상한선을 높이기 위해 내 시간과 건강, 재물을 바쳐 '확장 퀘스트'에 뛰어드는 순간, 다시 효율의 노예가 되고 말 것입니다.
넓어진 인벤토리는 결국 더 무거운 책임감과 더 많은 불안으로 금세 채워질 테니까요.
그러니 상한선을 높여서 더 많이 소유하기보다, 상한선 안의 빈 공간 그 자체를 소유하는 건 어떨까요?
남들이 무거운 전설급 장비의 무게에 짓눌려 땀을 흘리며 한 걸음을 내딛을 때, 가벼운 배낭을 메고 가뿐하게 뛰어다닐 수 있으니까요.
나를 짓누르던 아이템의 무게를 줄임으로써 '활동의 반경'을 넓힐 수 있는 것!
꽉 채워지지 않은 인벤토리 슬롯이기에 언제든 예상치 못한 행운이나 길가에 핀 꽃 한 송이가 들어올 수 있는 '자유의 창문'이 됩니다.
결국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엔딩을 보는 건, 훈수를 두는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
그들이 '쓰레기'라고 부르는 제 인벤토리 속 잡동사니들은 제 세계를 유지하는 핵심 재료들입니다.
당신의 소득 상한선 안에는 지금 무엇이 들어있나요?
혹시 상한선을 높이느라 정작 그 넓어진 칸을 즐길 기력조차 뺏기고 있지는 않나요?
가끔은 인벤토리를 열어 과감히 '버리기'버튼을 눌러보세요.
빈칸이 생길 때 비로소, 당신의 진짜 모험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저의 규칙 제1조는 이것이니까요.
“자기 인벤토리는 자기 마음대로 채운다. 빈칸은 낭비가 아니라 여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