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의 진짜 엔드 콘텐츠는?

by 루니

마을 앞마당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지붕 위.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나태 고양이 기사의 눈밑으로 꽤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방금 막 계정을 생성한 듯, 기본 지급품인 낡은 셔츠를 입고 조그만 단검을 쥔 초보 유저(뉴비)가 슬라임 한 마리를 상대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컨트롤은 엉성하고, 대미지는 한 자릿수를 겨우 맴돕니다.

슬라임의 반격에 뉴비의 체력 바(Bar)가 붉게 물들며 위태롭게 깜빡이는 찰나였습니다.


어디선가 화려한 장비를 두른 고레벨 유저, 이른바 '고인물'이 나타납니다.

그는 뉴비를 도와 슬라임을 때려잡아 주는 대신, 조용히 지팡이를 들어 올려 눈부신 빛의 마법을 시전 합니다. 순식간에 뉴비의 체력이 가득 차오르고, 머리 위로는 공격력과 방어력을 극대화하는 최고급 버프(Buff) 아이콘이 줄지어 뜹니다.

고인물은 바닥에 며칠 치 물약값에 해당하는 골드 주머니를 툭 떨어뜨려 놓더니, 뉴비가 "감사합니다!"라고 채팅을 치기도 전에 탈것을 타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과거, 랭킹에 목숨을 걸고 메인 퀘스트를 밀던 시절엔, 지붕 위에 앉아 지나가는 뉴비들에게 버프나 걸어주는 고인물들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 퀘스트 깨기도 바쁜데, 왜 생판 모르는 남에게 아까운 마나와 시간을 낭비하지? 차라리 그 시간에 던전을 한 번 더 도는 게 이득 아닌가?'

철저하게 손익을 따지며 손익을 따지는 효율의 관점에서, 뉴비 지원은 아무런 보상도 없는 완벽한 낭비 행위였으니까요.

하지만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지고, 랭킹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난 삶을 선택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시크한 뒷모습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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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시스템 기획자로 15년 넘게 일한 후 가족과 나를 위한 퇴사 후의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습니다. 새로운 커리어 이야기, 게임 기획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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