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없는 스무 살의 동생
책임
어떤 일을 맡아 그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태.
동생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 적도, 책임진 적도, 책임을 묻지도 않는 동생의 삶은 나이만 먹은 '아이'로 남게 했습니다.
스무 살,
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동생에게는 그저 숫자에 불과했습니다.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권유에 떠밀려 컴퓨터 공학과에 진학한 동생은 예상대로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 꿈꾸던 게임 개발자의 길이었지만, 폭력으로 인해 꺾인 자신감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했고, 동기들과도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동생은 군대라는 도피처를 선택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부모님이 선택해 준 도피처였습니다. 그마저도 혼자 가질 못하고 친구와 동반 입대했습니다.
부모님은 평생 동생이 '철' 들 수 있는 그 어느 것도 경험하지 못하게 했으면서, 군대 가면 '철'이 들 거라 믿고 그렇게 군대에 보냈습니다.
"군대 가면 철 좀 들겠지."
훈련소 2주까지. 딱 그 기간 동안 '철'든 모습이었습니다.
동생이 안쓰럽다며 동생 사진을 보고 아파하시면서도, 동생이 보낸 편지의 부모님 안부에 철 들었다고 믿었던 딱 그 기간이 지나자 '철'든 것처럼 보이는 모습은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역시나, 군대에 간다고 나약하게 자란 아이가 갑자기 강해질 리 없었던 거죠.
동생은 입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관심병사가 되었습니다. 적응하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하며, 또다시 무력감에 빠진 것입니다.
그때마다 전화를 걸어 면회를 요청했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 폭력의 데자뷔를 느낀 부모님은 동생이 탈영할까 두려워 정말 자주 면회를 가셨습니다.
친구 따라 군 입대를 한 덕분에 전방에 배치된 동생을 보러, 한 달에 한 번 2시간이 넘는 길을 달려 면회를 갔습니다.
사실 동생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동생이 무사한지 확인하러 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가면, 동생은 외박을 핑계로 방을 얻어 PC 방에 시간을 보내다 들어갔습니다. 그런 동생을 위해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 초년생의 얼마 안 되는 월급의 일부분을 동생에게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에 한 번씩 동생이 원하는 간식을 사서 보내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는 것도 당연한 제 역할이 되어 있었습니다.
"군대에 들어가면 철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아니, 믿고 싶었습니다. 동생이 그곳에서라도 스스로 설 수 있게 되기를,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배운 적 없는 '철'이 갑자기 들 리 없었죠.
제대 후 돌아온 동생은 예고도 없이 대학을 중퇴했습니다.
"앞으로 요리를 할 거야."
갑작스러운 선언이었습니다. 그동안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동생이 갑자기 요리에 빠진 이유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또다시 동생의 결정을 지지하셨습니다.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요리도 좋은 일이야."
동생은 워낙 머리가 좋아서 요리를 배우는 속도도 빨랐습니다. 레시피를 응용하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데 재능을 보였습니다. 주방장들도 동생의 실력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동생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반복했습니다. 첫 번째 직장, 두 번째 직장, 세 번째 직장... 패턴은 항상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실력을 인정받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료들과 마찰이 생기고, 결국 그만두는 것.
그런 동생에게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해외에서 실력 있던 메인 요리사가 동생의 재능을 알아보고 해외로 같이 가서 실력을 쌓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거절했습니다. 갑자기 '양식'이 아닌 '일식'을 하고 싶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거절해 놓고 취업한 자리는 동네 횟집에서 기계로 손질된 회를 써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동생은 누군가에게 맞추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신의 확신대로 앞으로 나서지도 않는 애매한 상태를 반복했습니다. 기회가 생기면 잡지 못했고, 문제가 생기면 도망만 가는, 이도 저도 아닌 그런 상태로 시간만 흘렀습니다. 그렇게 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한다는 이유로 합리화하며 경력만 애매하게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워서일까요? 아니면 인정받고 싶어서일까요? 사람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으면서도 동생은 사람을 참 잘 믿었습니다. 몇 번을 배신당하고 호구 소리를 들으면서도, 사람에게 베풀며 인정받았다고 좋아하는 순진한 성격이었습니다. 그 순진함이 때로는 안타까웠고, 때로는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던 동생의 성격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술에 취해 주차된 차 유리를 부수지 않나, 길거리에 누워 자다가 돈을 모두 잃어버리지 않나, 믿던 사람에게 뒷치기를 당해 병원에 실려오지 않나... 그런 사고에 대한 해결은 항상 저와 아버지의 몫이었습니다. 보험 처리를 해주고, 잃어버린 돈을 대신 내주고, 병원비를 지불하고, 상대방과 합의를 보는 것까지. 동생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라고 하면, 부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애가 착해서 그런다. 네가 이렇게 해결해주면 되지."
그렇게 동생의 문제는 저와 아버지의 책임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나이가 먹은 동생은 어릴 때보다 더 혼내기 어려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머님은 달래기만 하고, 아버지는 조용히 해결해주기만 했습니다. 저 또한 동생을 위로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생이 제 이름으로 사고를 쳐 저에게 고지서가 날아와도 차마 동생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강하게 혼내고 나면 동생은 자존감이 떨어져 스스로 자학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 못난 놈이야"
"나 같은 건 죽는 게 나아"
이런 식으로. 그런 모습을 보면 더 이상 혼낼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달래야 했습니다. 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동생을 조심스럽게 다루었습니다. 마치 폭탄을 다루듯이.
이렇게 집에서 항상 걱정하고 잘해주는데도 동생은 세상 모든 것이 불만이 되어 있었습니다.
"왜 이 사회는 이렇게 불공평해?"
"성실한 사람이 손해 보는 세상이야."
"나 같은 사람은 성공할 수 없어."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탓, 남 탓을 하며 현실을 회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빌려주고, 술을 사주며 친분을 다졌습니다. 결국 끼리끼리 모였습니다. 동생 주변에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현실에 불만만 가득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없는 사람들. 동생은 점점 괴상해져 갔습니다.
외로움과 책임감 사이 동생이 외롭다고 사들인 동물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면서 계속 데려오는 모습이 동생 자신과 닮아 있었습니다. 문제를 만들어놓고 해결하지 않는 패턴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동생이 안타까우면서도 화가 났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아갈 건지, 언제까지 문제만 만들고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건지.
하지만 동시에 두려웠습니다. 제가 동생을 너무 강하게 몰아붙이면, 동생이 정말로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이대로 놔둘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또다시 문제를 수습하고, 동생을 달래고, 부모님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계속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 모든 것이 동생에게는 독이 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저 자신도 이 악순환의 공범이 되고 있다는 것을.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