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의 무게와 갇힌 삶
반복
어떤 행동, 말, 과정 등을 같은 모습으로 거듭하는 동생의 태도를 말합니다.
동생은 문제가 발생하면 제게 조언을 구하곤 하지만, 그 조언을 자신의 상황과 비추어 해결하기보다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대로 적용하다 해결이 되지 않으면 제 탓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생은 나이가 먹어갈수록 스스로 '바꾸겠다'는 결심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이기적이었고, 자기밖에 몰랐으며, 모든 문제는 '남'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동생을 보며 바뀌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답답해져 갔습니다.
언제까지 동생이 저지른 일을 제가 해결해야 할까요. 어느새 어린 시절 동생을 지키겠다는 사명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동생의 문제는 항상 같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반복되는 사이클과 다짐의 무게 동생의 삶은 완벽한 반복이었습니다.
20대의 동생은 동료에게 배신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고 병원에까지 실려갔습니다.
그때도 동생은 아무런 변화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좀 더 신중하게 사귈 거라 다짐할 줄 알았는데... 동생은 그렇게 자신의 뒤통수를 때리고, 카드를 훔쳐 달아난 동료를 용서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30대의 동생은 사람을 쉽게 믿고,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을 이용한 또 다른 '친한 형'이 소개한 다단계에 빠져, 거액을 투자했다가 모든 돈을 잃었습니다.
"나보다 그 형이 더 잃었어! 그분은 와이프도 다단계 하거든."
다단계에 돈을 잃고 겨우 빠져나와서 한 말은, 저 형보다 덜 잃었다는 자기 합리화였습니다.
저작권 위반으로 고발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영화와 음악을 무차별적으로 다운로드하다가 걸린 것이었습니다.
"거기가 이상한 거 아니야! 다들 이렇게 해."
동생이 제 이름으로 다운로드하여 제게 벌금이 나왔는데도 '미안하다'는 말 하나 들어보지 못하고 대신 해결해 주고, 보상해 주는 저와 부모님 덕분에 동생은 그렇게 문제를 일으키고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로 굳어졌습니다.
그렇게 40대가 된 동생은 결국,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 피싱범에게 속아 2억이라는 돈을 은행 다섯 곳을 돌면서 현금으로 뽑아 갖다 주는 바보 같은 짓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보이스 피싱범도 동생에게
"이 정도 하면 보통 눈치채는데 바보냐"라고 할 만큼 조롱을 받고서야 동생은 잃은 돈보다 창피하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자학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그 돈의 일부가 부모님의 노후 자금이었다는 것이죠. 처음으로 부모님은 자신이 만든 동생이라는 결과물을 마주하게 되었고, 허탈함에 어쩔 줄 모르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너도 이상한 거 알았잖아. 내가 전화했을 때 너도 사기인 거 알았잖아. 그때 멈췄어야지. 네가 답을 맞다고 정해놓고 스스로 합리화해 버리는데 어떻게 그걸 막아?"
동생이 제게 전화를 해서 돈을 빌려달라 했을 때 문제를 인식하고 동생을 설득했지만 믿지 않던 동생이 자신이 진짜 보이스 피싱을 당했다는 걸 보이스 피싱범의 조롱으로 인지하게 된 이후, 저의 질책 어린 말에 동생이 한 대답은
"나도 이상했는데...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줄 알았어"였습니다.
세상에 옳고 그름도 판단하지 못할 지경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정말 똑같았다. 해당 사건 번호도 있었다"며 무서웠다고 말하는 동생을 달래기엔 너무 큰돈을 잃었습니다. 동생은 이 사건 이후로 자신의 모든 돈과, 부모님의 노후 자금 일부와 대출까지 받아 날린 것이었습니다. 그래 놓고 제게 도와달라고, 갚아달라고 했을 때는 정말이지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한 번도 '다음엔 다른 거라고' 다짐이라도 해 본 적 없더니 결과는 이 모양이었습니다.
이제는 인정해야 했습니다.
품에서 편안하길 바라며 키운 동생은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지경까지 와 버렸다는 것을요.
이런 큰 사건을 일으키고도 동생은 원인을 찾을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변화할 의지도 없다는 것을요.
자기애가 결여된 자기 연민 속에 갇혀서 스스로를 불쌍히 여길 뿐이었습니다.
"나는 운이 없어"
"나 같은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세상이 나한테만 왜 이렇게 가혹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일이 생겨!"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 바빴습니다.
자기 자신 하나 제대로 돌보지도 않고, 남에게 인정받으려 살던 동생은 언제나 '피해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동료들이 나빠서, 사회가 불공정해서, 사기꾼들이 교묘해서. 가끔은 그 역할이 동생을 안심시켜 주는 방패처럼 느껴졌습니다.
피해자로 남아 있으면 책임을 질 필요가 없으니까요. 변화해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요. 익숙해진 무력감 가장 두려웠던 것은, 동생의 반복이 이제는 의지보다 익숙함이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동생도 변화하고 싶어 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로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했을지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패와 변명의 패턴이 너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실패하면 가족이 수습해 주고, 변명하면 누군가 이해해 주고, 다짐하면 또 기회가 주어지는 이 시스템이 동생에게는 너무 편했을 겁니다.
이제는 진짜 변화보다는 변화하는 척하던 동생을 변했다고 믿으며 합리화하던 부모님에서 벗어나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이 사건 이후에도 동생을 감싸며 대변해 주는 부모님 앞에서 처음으로 큰 소리를 냈습니다.
"엄마! 동생은 40이야! 그러니 더 이상 엄마가 대변하지 말아 줘! 결국 엄마가 동생을 망치거나 다름없어!"
라고요. 부모님께 사과하지 않는 동생을 보면서도 여전히 감싸는 부모님을 보며 외삼촌이 겹쳐 보였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동생을 감싸던 버릇이 남아 여전히 조심스럽긴 합니다.
언제나 힘들면 쉽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동생이 걱정되기도 하고요.
이 힘든 걸 스스로 이겨내 성장하길 바라지만, 너무 큰 사건이기에 쉽게 무너질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오랜 세월 스스로 살아보지 못한 동생이 과연 이 계기로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갈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 고통 속에서 언제가 있을 동생의 변화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동생의 변화를 위한 단호한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도움'을 끊어내는 것! 가끔 동생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책을 선물하는 정도의 도움 외엔 일체의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봐야 스스로 성장하고, 더 이상 이런 문제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계기로 우리 가족 모두 깨닫고, 동생을 이제 날아갈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나'도 동생과 부모님을 위한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