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너는 괜찮니?

폭력과 침묵 속 나의 상처

by 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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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실이나 내용이 맞는지 틀림없이 그러한가를 알아보거나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


아침부터 휴대전화 화면에 뜬 ‘아빠’라는 이름.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을 때, 수화기 너머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장난기 대신 무거운 불안이 섞여 있었습니다.


"동생이 5,600만 원을 급하게 빌려달라 해서 보내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해서 말이야. 무슨 일인지 네가 확인 좀 해봐."


5,600만 원?!

그 숫자가 머릿속을 맴돌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3월부터 내내 불안해 보이던 동생의 모습이 떠올라 애써 외면했던 걱정이 현실로 밀려오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설마, 나이가 있는데 사고를 치겠습니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억지로 불안을 눌러놓았죠.

동생에게 바로 전화하여 따지면 '나를 못 믿냐'는 날카로운 반발이 돌아올 것을 알았기에, 저는 두 시간을 망설이다,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차가운 한숨과 함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버지께 돈을 빌렸다며, 무슨 일이냐? 3월부터 네가 불안해 보인다고 들었는데 그 일과 관련 있는 것이냐?" 나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수화기 너머 동생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급박했습니다.

"미안해 누나 근데 말할 수 없어. 하지만 오늘 중으로 해결될 것 같아."

그렇게 끊은 전화는 계속 불안으로 다가왔고, 그것은 두 시간 후 걸려온 전화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엔 다급함으로 가득했습니다.

"누나.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오늘 중으로 갚을게!"


"이유를 말하지 못하면서 돈을 빌리는 건 문제 있는 거야. 오늘 중으로 갚을 수 있는 돈을 빌리는 사람은 없어. 솔직하게 말해봐. 너 사기당했지!"


내 질문에 돌아온 것은 초조함이 가득한 숨소리뿐.

수화기 너머 모든 공기가 얼어붙은 것 같은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동생은 나지막이 대답했습니다.

"응, 그런 것 같아. 그런데 오늘 중으로 해결될 수 있을 거랬어."


동생은 이미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의 말을 그대로 믿고 모든 돈을 넘겨준 상태였습니다.

당장 경찰에 신고하라고 재촉했지만, 동생은 '내일이면 해결될 것'이라며 오히려 저를 안심시키려 했습니다. 동생 대신해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당사자가 직접 신고해야 한다는 말에 다급하게 동생을 종용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세상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결국 다음 날이 되어서야 동생은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모든 상황을 인지하게 된 동생은 보이스피싱범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며 메시지를 보냈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조롱이었습니다.

"비싼 경험 하셨네요. 그러게 제가 계속 눈치채라고 신호를 보냈는데… 억울하면 저랑 같이 보이스피싱 하실래요?"

범인은 눈치 없는 바보라며 조롱까지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동생은 평생 모은 돈과 부모님의 노후 자금까지 잃고, 6,000만 원이라는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그 빚은 단순히 돈의 무게가 아니었습니다.

평생 고생 없이 살아온 동생이 처음으로 겪는 고난의 시작이었죠. 부모님은 저에게 동생의 빚을 대신 갚아주고 매달 조금씩 받으라고 요청하셨지만, 저는 '절대 도와주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지난 세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저에게 얹어진 모든 부담과 책임으로부터 이제는 나를 지키겠다는 다짐이었죠.

이번에도 도와주면, 동생은 나이만 먹은 '아이'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거든요.

돈 때문에 가족의 불행으로 고통받겠지만, 편하게 살아온 만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할 기회는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생이 이 기회를 놓치면 같은 사건을 또다시 반복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 결단 이후, 동생과 부모님은 저에게 끊임없이 좌절과 실망을 쏟아냈습니다. 그들의 원망은 거대한 폭포수처럼 쏟아졌지만, 저는 동생에게 매일 자기 계발 영상과 책을 보내는 것으로 그 불만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물음은


"왜 너는 괜찮아?"

라며 나에게 말하는 원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 없었습니다. 가족의 불행에 제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지만, 차갑고 냉정하게 보였을지라도 저는 제 결정을 굽힐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만든 굴레에 갇혀 저는 어린 시절부터 울 수 없었어요.

어린 시절에는 '복 달아난다'라고 울지 못했고, 동생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시점부터는 가족에게 '폐'가 될까 울음을 삼켰습니다.

'더 힘든 동생이 있는데 나의 울음은 나약해 보일 거야'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마음은, 어느 순간 저를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 강해진 이후부터 저는 울음과 애정을 갈구하는 대신 '독기'로 하루를 버티게 되었습니다. '나를 무시하는 어른들'이 말하는 '조신하지 않은 여자애는 불행하고 실패한 삶을 살 거다'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저는 제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제 눈에도 동생의 상처와 불행은 분명히 보였습니다.


결국, 저와 동생 모두 어른들이 만든 굴레의 피해자입니다.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고난 없이 시키는 대로 살아오다, 나이가 들면 성장하여 어른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인해 우리 둘은 서로 상반된 모습으로 자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 할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동생이라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생이 그리고 제가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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