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을 되찾는 여정
태어나는 순간부터 제 목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끈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거부할 수 없는 '굴레'였죠.
저는 그 굴레를 끊임없이 당기며 살았고, 그 끈이 조여올 때마다 가족의 일부가 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양보'였어요.
"누나니까 양보해야지."
"누나니까 이해해 줘야지."
특히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하고 싶은 놀이를 동생에게 양보해야 했던 순간들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양보하지 않아 동생이 울고 보채면, 엄마는 항상 짜증 섞인 눈짓으로 말했죠.
'시끄러우니까 그냥 네가 져줘.'
'우애'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포장된 일방적인 희생이었습니다. 양보를 거부하면 '이기적인 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저는 그 꼬리표가 두려워 제 감정을 숨기는 법을 배웠죠. 그래서 저는 지금도 '우애'라는 단어가 참 싫습니다.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혼나던 어느 날 밤, 저는 이불속에 숨어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왜 나에게만 양보가 강요될까? 동생은 한 번도 나에게 양보해 본 적이 없는데.'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날의 서러움은 제 마음속에 깊은 응어리로 남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대학에 가고, 사회인이 되어도 제 굴레는 당연한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부모님의 요청을 거부하는 것이 참 어려웠어요. 거절의 말을 꺼내기 전부터 이미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려왔죠. 어머니의 푸념 어린 말씀은 제 마음을 더욱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족인데 그것도 못 해주냐?"
"다른 집 첫째들은 안 그러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저는 그저 첫 번째로 태어났을 뿐인데, 제 의도와 상관없이 부여된 역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딸은 살림 밑천', '누나는 동생을 지켜줘야 해'라는 말들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 말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제 삶의 방향을 바꾸려 노력했지만, 깊게 뿌리 박힌 세뇌는 중요한 순간마다 저의 용기를 앗아갔습니다.
그래서 사회생활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희생만 하며 살아온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에서도 어려움을 겪었죠.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남의 기대에 맞추는 데만 익숙해져 있었으니까요. 그런 과정을 겪을수록, 내가 얼마나 나를 잃고 살았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동생이 또 회사를 그만두고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 어머니의 익숙한 부탁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동생이랑 한번 얘기해 봐라. 네 말은 들을 거야."
그 순간, 저는 제 안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왜 제가 매번 동생을 달래줘야 하는데요?"
제 목소리는 제가 들어도 낯설 정도로 날이 서 있었죠. 그 소리에 화가 난 어머니의 신세 한탄이 이어졌고, 다시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어요. 후회보다는 그동안 억눌려왔던 감정을 표출했다는 후련함이 더 컸거든요. 아주 작은 반항이었지만, 제게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과연 부모님은 저를 진정으로 '사랑'했을까요? 그렇다면 왜 항상 조건이 붙었을까요? 친척 그 누구보다도 '여성스럽지 않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라고 비교만 당해왔는데 말이에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교했던 것이었죠.
그래서 결혼만큼은 온전히 저의 의지로 결정하고 싶었습니다. 집도 혼수도 모두 공평하게 마련했죠.
"친척 누구는 집도 혼수도 다 남편 쪽에서 해주는데, 너는 왜 공평하게 하냐?"
부모님의 쓴소리가 뒤따랐지만, 저는 동등하고 싶었습니다. 결혼은 두 사람의 동등한 관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었거든요. 그래야 온전한 위치에서 '나'를 인정받고, '나'의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결혼은 제 굴레를 벗으려는 아주 중요한 첫 번째 몸부림이었습니다.
사실 40대가 된 지금은 동생도 나도 조금은 변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40대의 동생이 보이스 피싱에 당하고도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는 모습을 보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보이스피싱으로 사기당한 동생을 위해 밤새도록 신문고에 글을 올리고, 관련 정보를 찾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거든요.
정작 동생은 속상해서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는 걸 알고 나니 허탈함이 밀려왔습니다.
마흔 살의 성인 남자가 사기를 당했는데, 왜 제가 해결책을 찾고 있을까요? 부모님 돈까지 잃어버린 동생. 현재 퇴사 중인 저 역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상황. 이번만큼은 동생이 온전히 스스로 견뎌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손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어요. 어떻게든 도와줄 수 있을지 방법을 찾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는 깊은 한숨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정말 내가 해야 할 일인가? 아니면 그저 내가 해왔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일인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쉼의 시간을 가진 지금,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바라는 삶과 가정이 어떤 모습인지요. 가족에게는 필요에 의해 '훈육된 역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래서 제가 경험한 '역할'을 아이에게 주지 않고, 아이가 원하는 '역할'을 스스로 부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게 되기도 해요.
물론 이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동생은 여전히 나이만 먹은 '아이'고, 그 아이를 돌보는 건 여전히 제 몫인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동생을 놓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이 기회에 제 목에 걸린 끈을 조금씩 풀어볼까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더 이상 이 굴레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굴레는 가족을 위한 것이었지만, 가족이 저를 위해 만들어준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완전히 벗어던질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숨 쉴 수는 있도록 조금씩 느슨하게 풀어가려고 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 이 '굴레'라는 끈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언젠가 그 끈이 완전히 풀려, 온전히 제 이름으로 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