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회피하는 가족은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새벽 5시.
전화벨 소리에 졸린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으니 동생입니다.
"누나, 집이 숨 막혀! 부모님 눈치도 보이고… 아무래도 상담을 받아서 약을 타야 할 것 같아."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또다시 한숨을 삼켰습니다.
보이스피싱으로 거액을 사기당한 지 한 달. 동생은 여전히 자신이 저지른 일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응급처치 식 해결책을 찾아 의존하거나, 죽고 싶다는 익숙한 패턴을 늘어놓습니다.
"운동해. 힘들 때일수록 몸부터 움직여야 머리가 돌아가. 내가 준 책은 읽어봤어?"
나도 모르게 쓴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하지만 동생에겐 조언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아 위로의 말을 건넨 후 통화는 그렇게 어정쩡하게 끝났습니다.
걱정이 되어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아버지께서는
"그러게 내가 동생에게 돈 보내자마자 너에게 좀 알아보라고 전화했는데, 그때 전화했으면 사고는 안 쳤을 거 아냐"라며 장난스러운 어투로 문제의 원인을 저에게 돌리셨고,
어머니는
"네가 좀 도와줄 수 없냐? 이번 달 이자와 원금 나가니까 애가 멘붕인 것 같더라"라며 도움을 구하셨습니다.
가족은 늘 '온전한 공동체'로 묘사되곤 했습니다. 드라마 속 가족들처럼 서로를 지켜주고, 힘들 때 버팀목이 되며, 결국에는 눈물 흘리며 화해하는 따뜻한 울타리. 나도 한때는 우리 가족이 그런 모습이 되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죠.
결혼하고 나서야 조금 숨통이 트였습니다.
더 이상 명절 때마다 시골에 내려가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덕분에 친척들의 시선과 말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대신 명절을 시골에서 보낸 후 돌아온 어머니를 통해 시골 소식을 간접적으로 듣곤 했습니다. 시골 큰 아버님네 소식, 막내 작은 아버님네 소식 등을 듣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그렇게 '우애'가 가풍이라 강조하신 것치고는 속이 검은 것을 감추지 않으셨기 때문이죠.
어머니는 그런 친척들 소식 뒤에 꼭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그나마 우리 가족이 제일 낫더라."
그 말속에는 변화에 대한 의지는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현상 유지면 충분하다는 체념이 담겨 있었죠.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저'와 '어머니'의 희생 위에 세워진 불완전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 번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엄마의 과보호가 아빠와 동생을 지금처럼 만든 거 아닐까요?"
그 순간 어머니는 펄쩍 뛰셨습니다.
자신이 평생 쌓아온 가치를 부정당한 기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화내는 모습에서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서 받은 상처가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 역시 '버림받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매일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면서도 어머니와의 전화를 끊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가족'입니다.
연락이 뜸해져도, 실망이 쌓여도, 서로에게 상처를 줘도, 가족이라는 이름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 실처럼 계속해서 우리를 이어 붙입니다.
완전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 안쓰러운, 그게 우리의 '가족'이었습니다.
예전엔 다른 집 가족들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각자 자기 몫을 책임지고, 서로를 이해하며 존중하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 우리 가족만 이럴까?'
하지만 이제 압니다.
완전한 가족은 없다는 걸을요. 완전해 보이는 가족이라도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어려움들이 있다는 걸을요.
그래서 선택했습니다. 가족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요.
동생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무리 애쓰고 희생해도, 그들이 갑자기 성숙한 어른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단순할 수 있습니다.
내 도움을 단호히 끊어내는 것.
이제 동생이 하소연해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지만, 대신 동생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고 뿐입니다.
부모님의 "가족인데 좀 도와달라"라는 말에도 조용히 선을 긋고 있습니다.
아마 친척들이 우리 집 사정을 알았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족인데... 좀 도와주면 어떠냐?"
라는 말과 함께 거절한 저를 향해 차갑다는 소리와 가족애가 없다는 원망하는 소리를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족의 불완전함을 내 불완전함으로 동일시하며 채우다 보면, 정작 저는 자꾸만 소외되어 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족은 불완전합니다. 여전히 갈등이 있고, 여전히 문제가 반복됩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하기에, 완전한 가족을 꿈꾸기보다 불완전한 가족 속에서도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