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의 되물림

나는 배웠고, 나도 모르게 가르치고 있었다

by 루니
나는 배웠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여덟 살.

어머니와 힘겹게 다 차린 밥상을 안방으로 옮겼습니다.

외할머님의 가르침대로 남자인 아버지는 주방에 들어오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죠.

반찬 최소 열 가지에 국과 찌개는 기본, 고기 반찬은 항상 있어야 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식사를 하지 않으시면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했죠.

그래서 아버지의 무언의 화는 '밥 안 먹어'라는 침묵으로 이어졌고, 어머니는 홀로 그 침묵에 항복했기에 큰 싸움으로 번지진 않았습니다.

대신 어머니의 해소되지 않은 원망은 제가 들어야 했고요.


친척들이

"애는 왜 이리 여성스럽지 못해?"

라며 저를 자신의 자식과 비교할 때, 부모님 스스로 당신의 딸이 '문제 있는 아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그 원망을 스스로 삭혔습니다. 그리고 동생과 서로 의지하며 '우리는 문제가 있는 아이'라는 것을 인정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해소되지 않은 원망에 갇힌 어린 시절의 저는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가슴 깊이 웅크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인내심'을 강요하고, '나는 이렇게 자랐는데 너는 왜 이리 이기적이니'라는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참는 어머니와 다르게 살기 위해 별것 아닌 일에 크게 화를 내기도 했죠. 아마도 '무시당했다'고 느꼈던 과거의 상처가 자꾸만 터져 나왔던 것 같습니다.


희생의 되물림

"너는 왜 이리 극성맞니? 여성스럽지도 않고 말대꾸나 하고!"

동생을 돌보고 지키다 보니 어느새 부모님의 가르침과는 다른 '드센' 아이가 되었습니다. 친척들은 저의 이런 변화를 이해하기보다는 부모님께 타격을 주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죠.

이 대상에는 동생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참 미웠지만, 한편으로는 동생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자'인 동생이 주방에 들어가지 않고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부모님이 집을 비울 때면 라면과 계란국을 끓여주곤 했습니다.

동생이 아버지처럼 삐져서 방에 들어가면, 문 앞에 라면을 놓고 '어서 먹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죠. 어느새 저는 '드세면서 순종적인' 이상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태도는 스무 살, 첫 연애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친구의 추천으로 만난 남자친구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이유로 취업을 못 한 그를 위해 물건을 사주고 보살폈습니다.

결국 저는 소위 '호구'가 되었죠.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친구의 부탁에 못 이겨 함께 강사를 했지만, 친구는 뒤에서 놀고 저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면서도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못했습니다. 관계가 틀어질까 두려워 그렇게 연애도, 친구 관계도 오랜 시간 '호구'라는 명칭으로 참으며 인내했죠.

바보같이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무릎까지 꿇고 울면서 '내가 더 잘하겠다'고 애걸하던 순간, 제 안의 무언가가 깨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몰랐던 거죠. 집에서 배운 희생의 언어가 제 주변에 '호구'라는 낙인을 찍고 있었다는 것을요.


상처와 깨달음의 순간

그렇게 상처투성이의 이십 대를 지나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저는 모든 것을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도, 동료도, 연애도 싫고, 그냥 혼자 멋지게 살겠다고 다짐했죠. 그때부터 가면을 썼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밀어냈습니다.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보며 미안하고 가슴 아팠지만 애써 모른 척했습니다. 그제야 내가 '배려 깊은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배려'와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죠.

그 깨달음 이후, 어머니께 원망의 말과 함께 진솔한 속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엄마, 왜 그때 아빠한테 무조건 맞추고 살았어? 왜 내가 힘들 때 내 편 들어주지 않았어?"

엄마는 잠시 침묵하시다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일 가지고 왜 들추니... 나도 그렇게 자랐어."

이어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엄마의 모습을 보고 배웠어요. 참는 게 좋은 거라고."

엄마는 말을 잇지 못하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죠.

"미안해. 근데 나도 그렇게 배웠어. 그래서 나도 너무 힘들어."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거쳐 내려온 희생의 서사라는 것을요.


되물림을 끊기 위한 첫걸음

그래서 저는 이 되물림을 끊기로 했습니다. 변화는 작은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는 아이를 나의 어린 시절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괜찮아요" 대신 "사실 조금 힘들어요"라고 말하고, 동료가 일을 떠넘기려 할 때 "죄송하지만 제 업무가 많아서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경계를 설정했습니다. 데이트할 때도 "저는 이 영화가 보고 싶은데, 어떠세요?"라고 제 욕구를 표현했죠.

6개월째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렵습니다. 지난주에도 동생이 "누나가 도와줘야지"라고 했을 때, 반사적으로 "그럼"이라고 대답할 뻔했습니다. 다행히 잠시 멈추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데?"라고 물었지만요. 가족들도 처음엔 "왜 이렇게 변했냐"며 당황스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합니다. 이 변화가 저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필요하다는 것을요.


다음 세대를 위해

가끔 저의 어린 시절을 아이에게 강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느낍니다. '이 아이에게는 다른 것을 가르쳐주자.' 희생이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대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타인을 배려하되 자기 자신도 소중히 여기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아마 이 교육이 타인에게는 배려 없고 이해심 없는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바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나의 어린 시절과 다르게 자란다면 아이는 감정이 건강한 아이로 성장할 거라고 믿습니다.

때때로 바뀌지 않은 저의 사고가 아이를 향할 때, 저는 이것을 자책하기보다는 의식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이 되물림을 끊을 수 있는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자학하고 괴롭히던 아이는 제가 바뀌니 조금은 자신을 위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아이로 변해갔습니다. 물론 부작용으로 '말대꾸한다'는 말에 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 되물림을 끊을 수 있다는 희망이 아이와 나에게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참기보다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윗분에게 찍히더라도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나만의 성공'을 꿈꿉니다. 그리고 이런 제 모습이 훗날 아이에게 희망을 주리라 생각해요. 세상은 예측 불가하지만, 저는 저와 아이를 위해 제 몫을 지키고, 감정을 인정하며, 다음 세대가 이 굴레를 물려받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세대를 거쳐 내려온 무거운 짐을 제 손에서 멈출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배웠습니다.

참는 것이 사랑이라고, 희생이 미덕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배려의 시작이며, 건강한 경계가 더 깊은 관계를 만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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