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존재하기 위한 선언

by 루니
"나는 더 이상 가족의 역할이 아니다. 나는 나로 존재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40년을 넘게 살면서 나는 '내 이름'으로 불린 적이 얼마나 될까?

어린 시절부터 나는 늘 '누나'이자 '장녀'였습니다.

학교에서도 "동생 생각하는 착한 누나", 집에서도 "믿음직한 큰딸"이었죠.

언제부턴가 나 자신도 그것이 내 정체성의 전부라고 여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싫은 소리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으면서, 미련하게 언젠가는 알아주길 바라기만 했습니다.

제대로 항의해 본 적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마음속에 적이 많을까요.

아마 착해야 한다는 학습과 그에 대한 반발심이 뒤섞인 결과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런 불완전한 내 모습이 참 싫습니다.


회사에 새로 입사했을 때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입사한 ○○○입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라며 평범한 소개를 했지만, 다른 입사 동기들은 자신의 관심사와 취미, 성격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듯 소개하는 모습을 보자 쓸쓸해졌습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막상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려니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불완전한 나를 외면하느라 온전히 나를 돌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를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밤, 조용히 물었습니다.

"○○야, 너는 누구야?"

하지만 물음에 대한 답은 내 안에 숨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말, 아침부터 전화벨이 너머로 보이는 이름 '엄마'.

"동생이 일이 너무 안 풀려서 기도하러 강화도에 가고 있는데 비가 엄청 온다."


통화 너머로 들리는 근황과 함께 걱정을 전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들으니 괜스레 미안해집니다.

지역이 달라 날씨가 다를 수 있다는 걸 아시면서도, 비가 오면 꼭 전화를 하시는 어머니에게 조용히 걱정을 되돌려 드리며

"비 오면 돌아가. 괜히 무리하지 말고."

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운을 바라는 부모님과 동생에게 나를 찾는다는 핑계로 부담을 드린 건 아닌가?'


직장에 다닐 땐 완벽한 역할을 해내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완벽한 역할을 통해 번 돈을 부모님과 아이를 위해 썼습니다.

아침에 잠깐 보는 '엄마'라는 역할을 '물질'로 채워주거나, 가족 중 그나마 '든든'한 '장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내'가 아닌 '가족'을 위해 돈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선 '나'는 없었고 누군가에게 부여받은 '역할'만 수행하다 보니, '역할'에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숨이 막혀 왔습니다.

특히 '리더'에 자리에 오른 이후 완벽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더 '감정'을 숨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를 털어놓기가 불편한 '일'만 하는 '대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회사를 쉬게 되면서 좋았던 점은

언젠가 성공한 사람들처럼 '나'만을 위한 '시간'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시간을 온전히 사용함으로써 '나'를 외면하는 것도, '나'를 돌보는 것도 선택할 수 있음이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제공했던 물질적인 요소가 사라지자 다른 의미로 '나'를 잃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잘났다!"

순간의 부끄러움에 조용히 도망쳤지만, 그 순간은 가슴속 얽힌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분을 담아 동생에게 '산' 영상과 '너도 소리 질러'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동생 문제와 가족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싶은 마음은 항상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운'에 모든 것을 맡기는 모습에 다시 내가 도울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아집니다. 가끔은 아버지가 동생에게 돈을 보냈다며 불안해하던 그때로 돌아가 바로 전화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막았더라도 언젠가 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나'도 '가족'도 여전히 홀로 서서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서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가족들에게 모든 것을 떠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설 기회를 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과거를 되풀이하면서 후회하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 '나'로 존재하기 위한 결심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나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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