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우던 희생의 굴레를 끊어내고,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한다"
그날은, 왠지 모르게 불안했습니다.
아침부터 동생이 돈을 빌려달라고 말에 돈을 빌려줬다는 아버지의 전화 때문이었죠.
애써 '설마'하며 외면했지만 하루 종일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조급하면서도 "내일이면 해결될 것"이라는 그의 말에,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 더는 추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후에 다시 울리는 전화벨.
역시 동생이었습니다.
"누나,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내일 갚을 수 있어."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저희 집 남자들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은 뭐든 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년에 절반은 여행과 취미 생활에 쓰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자존감을 높여야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런 삶을 이해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다 외삼촌이 사업 실패로 외가 집 재산을 모두 날리자, 어머니는 외갓집 식구가 새로 살 집과 생활비를 지원하기 위해 아버지돈을 외가 집에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부모님의 부부 싸움이 잦아졌고, 갈 곳이 없어 친구 집으로 가출 후 우시던 어머니를 자주 보았습니다.
마음 놓고 울 곳도 없던 어머니는 그때부터 나가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을 외가에 모두 보내기 시작하셨죠.
결국 희생의 한계는 울분이 되어 터져나왔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면 우리 인연! 끊는 거야"
두 분의 희생을 보며 나는 그들이 안쓰러웠습니다.
3년의 구애 끝에 결혼한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는 월급의 절반 이상을 '외가'라는 깨진 항아리에 계속 채워 넣으셨지만, 외가 사촌들은 그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며,
"우리 대학도 너희가 보내주는 거 아니야?"
라며 당연하 듯 말하던 사촌들을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런 외가 식구들과의 인연은 어머니의 공언대로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끊어지면 좋았겠지만... 가끔 외삼촌과 이모의 신세 한탄 섞인 전화와 함께 돈을 요구하는 정도의 인연으로 얇아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명확한 경계가 없는 도움은 누군가의 억지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는 것을요.
그래서 어머니가 동생이 안쓰럽다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면, 저는 외삼촌의 이야기를 상기시킵니다.
누군가의 거절을 외면하지 못해 승낙한다면, 결국 나 자신을 외면하는 것이라 항상 마음에 세기고, 우선 나를 우선시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죠.
생각해 보니 우리는 오랫동안 힘들어도 도움을 거절하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 배워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절을 하기가 참 눈치 보이고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거절 또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것임을 이제는 압니다.
빚보증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보증을 섰지만 도망간 지인 때문에 그 빚을 대신 갚아야 했던 아버지와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외가에 꾸준히 도움을 주고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거절'하지 않는 삶은 결국 자신의 가치를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희생을 고마워하지 않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만, 내가 줄 수 있는 만큼만, 내가 기꺼이 하고 싶을 때만 주고 싶습니다. 내가 선택한 요소를 '남'에게 받지 않음으로써, 누군가의 '을'이 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삶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