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누군가를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었다. 사랑은 내가 나를 지키면서, 함께 존재하는 것이었다."
"누나니까 양보해야지."
어린 시절부터 내 가슴을 관통해 온 이 말은 주문처럼 내 안에 새겨졌습니다.
동생이 내 장난감을 부러뜨려도, 과자를 몰래 다 먹어버려도, 심지어 나를 때려도 나는 참아야 했습니다.
장녀니까, 누나니까, 그리고 여자이니까.
전단지를 돌리고 용돈을 모아 몇 달 만에 산 게임기를 동생이 잃어버렸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속은 뒤틀렸지만 차마 추궁할 수 없었죠.
"남자 기를 죽이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 앞에서 나는 늘 할 말을 잃었습니다.
동생이 항상 보호받고 걱정받으며 따뜻한 온실에서 살아갈 동안, 나는 그 차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라왔고, 그렇게 배워왔으니까요.
취업 후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 역할에 더욱 충실해졌습니다. 부모님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동생의 운전면허 학원비를 대주고, 인센티브가 나오면 부모님 선물부터 샀습니다. 그분들의 미소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자주 진로를 바꾸고, 당일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는 동생을 볼 때마다 '나라도 잘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은 언제나 동생이 사고를 쳐도 내가 수습해 줄 거라 믿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싫은 소리를 할 수 없었죠. 그러면 어머니가 쌓인 감정을 모두 나에게 쏟아내실 게 뻔했으니까.
"너라도 철이 들어서 다행이야"라는 말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내 믿음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나 하나 성장하기도 버거운 현실에서 집안 문제까지 떠안고 있자니, 더 독하게 나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를 깎아내리려는 사람들 말대로 살기 싫다는 오기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각이 바뀌자 동생의 무기력함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내가 부모님을 기쁘게 하려고 했던 모든 희생이 사실은 나와 가족 모두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하지만 처음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두려움에 이 집에서 도망가고 싶어 졌습니다.
변화는 예상보다 크게 다가왔습니다. 결혼을 위해 집에서 합법적으로 도망가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결혼 전부터 도망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지금 집에 너무 낡았다는 이유로 이사를 가기 위해 빌려달라던 결혼 자금은 결국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돈을 갚으면 노후자금이 없다며 외면하셨던 부모님은, 현재 동생이 속은 보이스 피싱 사기에 돈 5600만 원을 빌려주셨으니 참 아이러니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 놀리는 재미로 자주 써먹고 있습니다)
그때는 주변 친척들까지 "딸이 되어서 주지도 못하냐"며 한소리 하셔서 더 달라는 말을 못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결혼자금은 부모님 집과 부모님 살림에 보탠 후 무일품으로 결혼해야 했습니다.
지금이야 덤덤히 이야기하지만, 오랜 기간 서럽고 원망스러운 감정을 노후와 동생의 걱정을 하는 부모님을 향해 내보이기엔 죄책감이 너무 컸습니다.
오랜 시간 학습된 가치관은 부당한 상황을 항의할 힘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나와 정 반대인 남편 덕분에 부당하게 끌려가는 상황을 대신 차단해 주어, 조금 더 쉽게 거리를 넓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리가 생기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울면서 어린 시절 아픔을 터뜨릴 때 외면하시던 부모님에게도 아픔이 있었다는 것을요. 자신들도 자식들에게 받았으면 했던 사랑을 되돌려 받고 싶으셨던 것이었죠. 그 모든 순환이 사랑이라고 믿으면서.
이제는 압니다.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대신 짊어진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각자의 몫은 각자가 져야 자신도 주변도 모두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요.
어머니가 힘든 감정을 나에게 쏟아내실 때, 이제는 짜증 내고 화내지 않습니다. 덤덤히 들어줍니다. 내가 부모님의 역할과 책임을 대신 지지는 않지만, 감정을 풀 수 있는 공간 정도는 되어 드리자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후,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합니다.
"전화받느라 고생했어.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난 알아, 넌 잘될 거야."
누군가의 위로는 때로 부담이 되지만, 내가 나에게 하는 위로는 언제나 힘이 됩니다. 진짜 사랑이란 상대를 믿고, 그의 몫을 온전히 그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사람도 성장하고 자신을 제대로 알아갈 테니까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지지하되, 대신 해결해 주거나 살아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실수합니다. 가끔 예전 습관대로 나서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경계를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과정에서 미안함이 스며 나오기도 하지만, 가장 소중한 건 나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나를 먼저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사랑의 모양을 다시 쓰는 일은 평생에 걸친 작업입니다. 하지만 그 여정 자체가 나를 더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