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을 되찾는 연습

by 루니
"감정을 말하는 건 나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세우는 일이었다."


"아! 어쩌라고!!"

별것 아닌 일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터져 나왔습니다.

나와 다른 사고를 내는 사람의 말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거나,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 예전에 '괜찮아'를 말하며 남을 위해 맞춰주던 모습과는 상반된 모습입니다.

오랫동안 '감정'을 배우지 못한 사람처럼 살아왔기에,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참 어렵고 불편합니다.



어린 시절,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남자'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여자'인 저에게 허락된 감정은 오직 '순종'뿐이었죠.

그래서 아버지에게 예쁨 받고 싶어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렸습니다.

'여성스러움'이라는 규정에 부합되지 않으면 매를 드는 어머니에게서 나를 보호해 줄 유일한 존재가 아버지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의 눈으로 아이를 봐서 일까요? 지금의 딸의 애교가 참 부담스럽습니다.

나처럼 생존을 위한 애교일까 생각하니, 애교로 상황을 무마하려 하지 말고 정면으로 헤쳐나가라고 말하게 됩니다.


쌓인 분노는 어느새 터져 나와 참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저의 감정은 '분노'와 '수긍'이 두 가지밖에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에서도 '거절'은 여전히 잘하지 못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맞춰야 한다는 것이 각인되어 '착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놓지 못하기 때문이죠.

참았던 감정은 마음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굳어져, 어느 순간 '참지도' '분노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무거워진 감정을 외면하다 보니 '눈물'을 흘리는 것이 쉽지 않아 졌습니다.


이런 내가 처음으로 감정에 솔직해진 순간은 사실 남편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철저히 계획적이고 계산적으로 삶을 설계하는 남편과 저는 상극이었지만, 처음 몇 년은 '남편에게 맞춰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내가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맞춰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감정은 육아휴직으로 인해 부족해진 생활비 때문에 터져 나왔고, 그때부터 이런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나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표현한 분노의 방식은 어머니와 똑같은 방식인 '가출'과 '신세 한탄'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패턴이 너무 자주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패턴에 익숙해진 남편은 어느 순간 반응하지 않게 되었고, 그 이후 '분노'라는 극단적인 감정으로 변질되게 버렸습니다.

아마도 '나를 무시한다'라는 생각이 나를 더 분노하게 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어머니와 똑같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 바꾼 방식이 '호소'라는 것이었지만, 솔직히 잘 먹히지도 않았고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특히 남편과 가장 안 맞는 부분은 나의 꿈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남편은 "직장인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고, 안 되면 네가 해결할 것이 아니라 위에 보고해야 한다"는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꿈을 위해 무언가를 배우거나 도전하는 것을 '돈 낭비'라 칭하곤 했죠.

회사 퇴근 후 강의를 하거나 다른 취미 생활을 하는 나를 '왜 사서 고생'하냐며 '괜히 이것저것 하지 말고 회사 일 오래 하는 것이 최고다'라며 조언하곤 했습니다.

물론 내가 고생하는 것처럼 보여서 '걱정'하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면에 '돈'에 대한 갈증이 담겨 있습니다. 남편도 결국 '어린아이' 였던 것이죠.


남편도 상처받은 '어린 시절'의 아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가치가 다르고, 나를 이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참 많이 '분노'라는 감정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참으면 '만만하게 보이고 만만하게 대한다고' 느낀 이후 더 자주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패턴은 처음에만 후련했지, 매번 앙금이 남았습니다. 불편했고, 아이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잘못된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생긴 패턴이 계속되자 나의 의도와 달리 행복하지 않은 가정이 들어왔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과 다른 모습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물질적으로 완벽한 가정을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부족한 '나'의 감정 때문에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쌓여만 갔습니다.


그래서 감정을 되찾는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그 연습 대상은 아들이었죠.

오랜 시간 '엄마'의 부재 때문인지, 아니면 사춘기라 그런지 별것 아닌 일에 울고, 자학하고, 분노하는 아들에게 분노하지 않고 대화하기 위해서 내 마음과 내 감정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아들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아들을 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아이를 위해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1차원적인 감정 그대로를 내뱉기보다는 3초의 생각을 통해 감정을 다듬는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남과 비교하는 어머니와의 통화에서도 예전이었다면 "그런 말 듣기 싫어. 그냥 전화 끊어요"였다면, "그런 말씀하시면 저는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요"라고 말을 순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낯설었지만, 이렇게 대화한 후 상대방의 격한 감정도, 나도 서로 누그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으로 상대방을 멀리 보내던 방식에서 '천천히' 가공된 감정으로 대화를 하니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요.

그리고 상대방의 감정을 살피느라 외면했던 제 감정을 제대로 바라봄으로써 '상대방의 반응'보다는 내 감정을 인정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습니다.

저의 변화에 부모님은 어색해하셨고, 여전히 부정적인 언어를 내뱉으시며 아직 익숙하지 않은 감정 컨트롤이 무너질 뻔한 적도 많았습니다.

남편에게도 아직 잘 통하지 않기도 하고요. 하지만 분노보다는 무반응 후 '화'가 풀린 시점에는 웃음과 장난으로 넘기니 아이들도 내 패턴이 나쁜 변화가 아닌 감정을 다스리는 시간으로 봐주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가족 간 오랜 시간 상처를 들쑤시는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제일 큰 변화는 상황이 저를 존중해 주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여전히 '참거나' '분노'하는 두 가지 감정이 제일 편할 때가 있지만, 이 감정을 다르게 순환함으로써 '분노'로 인한 즉각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나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덕분에 회피를 통해 불완전한 가족 상태를 그대로 유지했던 부모님과 동생과도 다투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내 삶의 주인이 될 자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감정은 단순히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필요할 때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감정에 반응하는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언제나 부모의 감정을 살피는 것 같습니다.

불완전한 내 감정이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 생각하니 항상 미안합니다. 하지만 나를 위해 내 기분을 살펴주는 유일한 존재인 아이에게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아이에게도 기쁨으로 남아 아이와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아직 내 감정을 되찾는 연습은 서툴고 느리지만, 이 연습을 통해 나는 드디어 '누구의 딸', '누구의 누나'가 아닌 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를 찾는 과정을 동생도, 어머니도 경험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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