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존재하기

by 루니
"나는 누나도, 딸도, 조율자도 아니다. 이제야 처음으로, 나로 존재한다."


자기계발 영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주제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목표와 목적을 잃고 주변 상황을 핑계 삼아 계속 도망만 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친구가 던졌던 질문이 떠오릅니다.

"너 뭘 좋아해?"

이 질문에 나는 한참을 멈칫했습니다. 머리가 하얘졌다고 할까요? 한참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에서 나온 대답은 "글쎄… 영화 보는 것? 아니면 책 읽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정작 영화를 볼 때면 어느 순간 지루해하곤 합니다. 무서운 영화를 싫어하면서도 그와 관련된 예고편을 찾아보기도 하죠.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시간을 때우려고 하는 느낌이 더 강하니까요.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가족의 일부로만 존재해왔기에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역할만 남고 사람은 사라진

동생을 감싸는 누나, 부모님을 안심시키는 딸, 갈등을 중재하는 조율자. 이 모든 이름이 나를 설명했지만, 정작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내 하루는 온통 '누군가를 위한' 시간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아침엔 아이를 챙기고, 출근 후에는 프로젝트 기획과 멘토 역할에 매달렸습니다.

늦은 저녁 귀가해 잠든 아이들 얼굴을 보며 미안해하거나, 남편 눈치를 봐야 했죠.

퇴근길에는 습관처럼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쉬는 것이 참 불편했습니다.

쉬기 위해 화장실에 앉아 휴대폰을 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이 아닌, 남이 뭘 원하는지를 찾고 그것에 맞추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생이 뭘 원하는지, 부모님이 어떤 것을 바라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인센티브를 받았던 날, 처음으로 비싼 화장품을 샀지만 결국 부모님께 드리고 말았던 것도, 저렴한 화장품이 마음 편하다는 자기합리화 속에 숨은 진짜 나를 외면했던 것입니다.


고생·불편의 법칙과 성장

이런 나에게 변화의 계기는 작은 거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명절 용돈을 줄였고, 그 다음에는 부모님께 드리는 전화 횟수를 줄였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인정받기 위해 동생의 사고를 수습하던 행동을 스스로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동생의 문제를 수습하지 않자, 어머니께서 직접 동생을 코칭하고 계시더군요. 저는 어머니께 그만두시라 말씀드렸습니다.

압니다.

부모님들은 자식이 고생하지 않고 자라길 바라시죠. 하지만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저는 '고생·불편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생하지 않고 평탄하게 살아온 만큼, 어느 순간 그 고생이 몰아서 온다는 법칙이죠.

성장에는 고난이 필수이고, 자식을 독립시키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 자식을 놓아주고 스스로 성장하도록 바라봐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행동을 하지 않으면 자식은 평생 성장하지 못하고 부모의 이기적인 만족감에 갇혀 살게 되는 것 같거든요. 이 법칙을 깨달은 후부터는 저도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을 조금씩 넓혀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라고 합리화하며 부모님과 똑같이 아이들을 케어했지만, 그것이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거든요.


내 몫을 찾아서

아이에게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주며 마음 아파하기도 했지만, 아이는 내 예상과 다르게 더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의 어린 시절 아픔이 치유된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 느낌입니다.

저희 가족은 이 과정을 겪을 순간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동생의 진로를 대신 정해주고 계시죠. 빚 때문에 힘들어하는 동생에게, "힘들면 관두고 쉬라"고 하시는 분들이니까요. 부모님의 만족감으로 인해 불완전하게 자리 잡은 역할들은 여전히 흔들리고, 갈등은 반복됩니다.

그리고 그 실패를 보면서, 내 마음 편하자고 아이가 겪을 경험을 부모가 가로채는 것이 얼마나 큰 부메랑으로 돌아오는지 깨달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가족의 문제를 내 문제로 동일시하지 않고, 외면했던 나의 진로를 위해 나를 더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감정에 집중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방향, 그리고 하기 싫은 것, 용납할 수 없는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성장할 수 있는 선택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로 존재하기'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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