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semite
죽음에 대한 글을 써둔 게 있었지만
워낙 설명하기 힘든 분야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또, 최근 시작한 일 때문에 이곳에 깊이 내용을 담을 수는 없어서 어디까지 담아야 할지 고민을 했다.
그래서 이제는 깊이 담아내는 것보다 떠오르는 것들을 바탕으로 가볍게 얘기하는 게 어떨까 싶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무엇인가에 대해 가장 답을 명확히 드러낼 수 없는
주제 중 하나가 죽음이다. 누구도 겪은 적 없으니.
표준국어대사전에서의 죽음이란,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
生物の生命が無くなってしまう現象
공통되는 단어를 뜯어보면 참 재밌다고 생각한다
生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단어
物 물질을 나타내는 단어와
命 목숨을 나타내는 단어를 합쳐서
(살아있는 물질) 생물의 목숨이 없어진 현상
(회화에 익숙한 나는 죽는다는 표현 때문에 亡くなって라고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는데, 여기선 無くなって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물질이라는 게 물체를 뜻하고,
물체는 형태가 있지만 사고를 할 수 없는,
의식과 이성조차 없는 상태를 뜻하다 보니
앞에 살아 있음을 붙여 생물이라 정한 건데,
죽음의 과정은 生物의 生과 命을 앗아가서 物가 되는
살아 있음을 붙이기 전의 상태,
즉 물질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도 똑같이 생명이 없으면 물질이 된다.
무서운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우리에게 찾아올 미래다.
나는 죽음이・・・
한 생명체의 순환이 끝이 났음을 알리는
신비로움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생명의 탄생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듯
죽음도 대개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죽음 이후의 장면은 상상할 수 없기에
당혹스럽고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라는 건 이해하나,
생명체라면 죽음은 무조건 겪는 과정 중 하나이면서,
필연적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우리에게 정해진 시간을 준다.
나는 그게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쥐어주는 타이머라고 생각한다.
늘어지지 않는 삶을 지향하도록
죽음이 가이드라인을 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삶의 과정 중 죽음이라는 최종 목적지가 있고,
그 터널의 끝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성실히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번아웃이 오거나 삶에 지친 이들은 제외)
죽음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원시인들이랑 대화하고 있을까?
세종대왕이랑 대화를 하고 있을지도.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지도 만들었는데 이제 와서 왜 우기고 있냐 재잘재잘 거릴지도.
생명체는 노화를 겪는다. 노화가 이어지면 재생이 한계에 다다른다. 세포의 생성이 더디다. 그렇게 재생이 되지 않은 생명체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위에 언급한 원시인 같은 수세기도 더 된 이들이 곁에 있다고 상상해 보면・・・ 께름칙하지만 그전에 지구에 발 디딜 틈도 없을 것 같다.
삶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하는 순간들은
즐거움이나 행복 같은 감정 따위가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하는 착각일 뿐
삶 자체가 진심으로 오래 이어졌으면 하고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우리 곁에 늘 붙어 있다.
자살을 배제하고 볼 때 죽음은 직접 선택할 수 없다.
죽음은 필연적으로 선택권 없이 다가온다.
그래도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음은 순환의 씨앗이니까.
무한하지 않기에 더 즐길 수 있다는 걸 되새기면서.
즐거워야 한다.
우리는 죽으니까.
La liberté d'expression | Yyeon |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