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사업 계획서를 갖추고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위기를 겪게 마련이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봉착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당초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도 한다. 한편, 높은 보상과 수익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단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그리고 당신의 가치와 목적을 이룰 일생일대의 기회를 만나 현재 자리에서 새로운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목적과 가치를 이루어가는 힘, 바로 의지력이다.
위대한 리더들은 의지력을 가지고 그들의 목적과 가치를 이뤄 사회를 변화시킨 사람들이다. 그런데 위대한 리더들에 대해 일반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타고난 천재성, 독창성, 의지력을 타고났기 때문에 남의 도움 없이 그들 본연의 힘으로 그 어려운 일들을 해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이 세상에서 타인의 영향 없이 자기 능력만으로 성공한 리더는 단언컨대 없다. 실제로 위대한 리더들은 공통적으로 다른 위대한 리더들의 성공과 지혜를 겸손하게 배웠다. 그들은 이를 기반으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더욱 위대한 가치와 목적을 꿈꾸면서 실천했다. 그들은 기존의 성공 사례들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Why Not 질문을 매 순간 던지며 과감히 도전했다.
파블로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그대로 베끼려 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치려 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서 위대한 예술가는 남의 훌륭한 예술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새롭거나 더 나은 예술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근대과학을 탄생시킨 뉴턴은 자신이 세상을 넓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위대한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같은 뉴턴의 선배 과학자들이 평생을 걸고 연구하여 그 결과를 세상에 내놓지 않았더라면 뉴턴의 운동 법칙 이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 물리학의 아이콘인 아인슈타인은 바로 뉴턴의 운동 법칙을 활용하여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이라는 20세기 최고의 물리 이론을 만들 수 있었다.
최고의 투자가 워런 버핏은 “새내기 기업가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그들이 이제껏 시도되거나 본 적 없는 멋진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많은 경우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쁜 징조이고 좋은 신호가 아닐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어쩌면 시장에서 그것에 대해 수요가 전혀 없기 때문일 수 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갑부들은 모두 기존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어 그것에 새로운 무엇을 입히고 개선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최초의 선발 주자들이 아닌, 후발 주자들이다. 그러나 선발 주자들보다 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페이스북 스토리
2004년 2월 4일, 당시 19세였던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대학교의 기숙사 ‘커클랜드 하우스’ 룸H33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더페이스북(thefacebook)’을 온라인에 올렸다. 첫날 하버드 대학생 650명이 가입했고, 3주 만에 전체 학생의 절반이 넘는 6천 명 이상이 가입했다. 그해 6월 페이팔의 공동 창립자인 피터 디엘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캘리포니아주의 팔로알토로 회사를 옮겼다. 그리고 회사의 이름을 ‘더페이스북’에서 간단하게 ‘페이스북’이라고 바꿨다.
2005년 3월, 페이스북은 스탠퍼드대학교, 컬럼비아대학교, 예일대학교에 서비스를 시작했고 아이비리그의 대학교를 거쳐 미국과 캐나다 대부분의 대학교와 고등학교에까지 진출했다. 2006년 9월, 페이스북은 전자우편 주소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했고 전 세계로 확장해 나아갔다. 현재 전 세계의 15억 인구가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의 가치는 30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무에서 유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모방함으로써 시작했다. 당시 미국에는 프렌드스터(Friendster), 마이스페이스(MySpace) 같은 소셜 네트워크가 있었다. 하버드대학교 내에도 이미 하버드 커넥션 (Harvard Connection)이라는 소셜 네트워크가 있었다. 2003년 11월 하버드 커넥션의 캐머론 윙클보스와 타일러 윙클보스 형제는 전 세계의 대학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를 구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띤 것은 다름 아닌 마크 저커버그였다.
당시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매시(Facemash) 사건11 때문에 학교 측으로부터 근신 처분을 받았고, 그만큼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윙클보스 형제는 하버드 커넥션의 프로그램 코드와 가치, 목적을 마크 저커버그에게 공개했다. 이후 마크 저커버그는 그들을 위해 프로그래밍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3개월 뒤 세상에 공개한 것은 하버드 커넥션이 아니라 더페이스북이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 커넥션이 요청하고 맡긴 일을 분명 수행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Why Not 질문을 스스로 던졌다.
‘나라고 왜 안 되겠는가? 내가 직접 최고의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마크 저커버그는 당시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프렌드스터와 마이스페이스 그리고 갖가지 블로그 사이트의 인기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쉽고 편안히 정보를 공유하며 신뢰할 만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곳은 없었다. 프렌드스터와 마이스페이스는 한국의 싸이월드처럼 개인 웹사이트 공간을 제공하여 사용자들이 자신의 공간을 취향에 맞게 꾸미고 프로필·글·사진·미디어를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다. 그것들은 화려한 개인 홈페이지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쉽게 사용자들끼리 서로 연결되고 정보 공유를 통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바로 이 점에 집중했다. 그는 개인 프로필 공간을 최대한 단순하고 통일성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지인, 친구 들을 바로 찾을 수 있게 하여 누구나 쉽게 큰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뉴스 피드 (News Feed)를 통해 실시간으로 글, 사진, 미디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그가 만든 페이스북이 다른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과 차별화되는 부분이자 성공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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