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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작 유 Aug 23. 2020

나는 손으로 책을 읽는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난독증으로 고생을 했다. 당시 나는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축구부 합숙 생활을 하면서 공부와 책읽기를 소홀히 했다. 바보 같이 난 축구만 잘하면 되니까 공부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믿기 힘들겠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바보 같이 단 한 권의 책도 끝까지 읽지 않았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나는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어린이가 되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나보고 교과서를 읽어보라고 했을 때, 나는 한 문장을 읽고 그 다음 문장이 무엇인지 헷갈려했다. 바보 같아 보이는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웃기라도 하면 내 눈에 세 네 개의 문장들이 겹쳐 보일 정도로 나는 당황하곤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갑자기 큰 부상을 당했고 축구를 오랫 동안 하지 못했다. 이 때 아버지의 반대로 나는 축구 선수 생활을 완전히 접었다. 운동이 전부인 삶을 살아가다 운동을 하지 않으니 나는 뭔가 큰 허전함을 느꼈고 나는 운동을 대체할 만한 것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찾은 것이 바로 공부였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책 읽기라는 내게 커다란 첫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나는 문장을 건너 뛰어 읽는 실수를 극복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문장을 가리키며 책을 읽는 버릇이 형성되었다. 나는 지금도 손가락으로 문장 또는 문단을 가리키며 책을 읽는다. 이 때문인지 나는 e북 보다는 직접 단행본 책을 만지며 읽어야 독서가 잘된다. 경험적으로 손가락으로 문장을 가리키며 책을 읽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들이 정말로 많았다. 몇 가지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손가락으로 책을 읽는 유익 

첫째, 글의 한 줄에서 다음 한 줄을 정확하게 찾을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내가 읽는 글에 내 시선을 온전히 집중시킴으로써 독서의 집중력이 높아졌다. 둘째, 더 많은 신체 부위를 활용해서 책을 읽게 되기 때문에 책과 더 가까워 지는 것 같고 독서의 과정이 더 즐거워졌다. 특히 책의 종이 표면 그리고 그 위에 인쇄된 글자에서 느껴지는 거칠기를 두번째 또는 세번째 손가락으로 느끼며 글을 읽는 것이 내겐 매우 재미있다. 셋째, 책 읽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빨라졌다. 우리는 시선은 자연스럽게 물체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따라가려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문장을 가이드하면서 책을 읽게 되면 나는 손가락이 이끄는 일정한 속도 대로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더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도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나는 소설 한 권을 두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다. 비유하자면 내게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영화 한편을 시청하는 것과 같을 정도다. 


책을 가까이에 두기

손과 독서와 관련해서 내게 한 가지 중요한 원칙 (버릇?)이 있다. 이를 공개하기 전에 먼저 그 배경을 이야기 해야겠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내게 붙여준 별명이 세 가지 있었는데 ‘하회탈’은 내가 웃을 때 하회탈이 되기 때문이었고, ‘초인’은 체력이 매우 좋아 좀처럼 지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마지막으로 (지금 하려는 이야기과 관련된) ‘ADHD’는 내가 매우 주위산만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더 흥미로운 것들이 생각나거나 나타나면 나는 바로 책을 덮어버렸다. 이것 하다 저것 하다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지 잊어버릴 때가 정말로 많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거의 모든 담임선생님은 나를 ‘매우 명랑하나 주위가 산만함’이라고 평가해주셨다. 중학교 1학년 때는 내가 집중력도 떨어지고 공부도 썩 잘하지도 않고 해서 내 머리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학년 때 우리 반에서 IQ테스트를 했고 내 IQ가 상위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집중력과 지능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어쩌면 내가 집중력이 좀 떨어지고 주위 산만해 보이는 것은 나의 단점이 아니라 뭔가에 대해서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집중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무튼 중학생 시절 이런 저런 스스로에 대한 정당화의 시간을 보내다 문뜩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집중력이 떨어지니 읽고 싶은 책을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두면 어떨까? 책을 읽다가 다른 것에 주의를 빼앗겨도 책이 늘 가까이에 있다보니 주의를 빼앗은 것에서 다시 책으로 또 주의를 빼앗기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내가 책을 더 많이 읽게 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내가 책을 읽는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때의 버릇은 지금도 유효하다. 내가 화장실에 있든, 회사에 있든, 카페에 있든, 거실에 있든, 어디에 있든지 간에, 나는 단 한 권의 책이라도 가능한 내 곁에 두려고 한다. 사소한 습관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경험상 책에 많이 노출이 되며 그 결과 책을 많이 읽게 된다. 


책과 낙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것은 책과 낙서에 관한 것이다. 내가 읽은 책은 언제나 나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누가 봐도 이 책은 내가 읽은 책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내 책이 낙서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내 뇌리를 스치는 모든 생각들을 (그것이 책의 내용과 관련있든 관련이 없든지 간에) 책을 아끼지 않고 여백에 바로 바로 적는다. 책을 읽다가 줄치고 싶으면 줄치고, 책 커버 안쪽 여백 용지에 궁금한 것이나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는다. 또한 책 내용 주위의 여백에 저자의 말에 대해서 동의하면 동의하는 이유, 동의하지 않으면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쓴다. 또한 간단한 그림을 그리거나 단순 낙서를 남기기도 한다. 내가 추구하는 독서는 책을 쓴 저자와 대화하듯 책을 읽는 것인데 책의 여백에 낙서를 하면서 독서를 하면 먼가 저자와 교류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내 책을 볼 때 왜 이리 지저분하냐고 지적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내 돈 주고 책을 샀는데 책에 낙서를 하건 그림을 그리건 코멘트를 남기건 내 자유다.” 왜 출판사는 책을 출판할까? 좋은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서? 물론 맞다. 그런데 그들이 돈을 벌 수 없다면 책을 출판하지 않았을 것이다. 출판사는 돈을 벌기 위해 만원/ 이 만원이란 비싼 돈을 책 뒷페이지에 표시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비싼 돈을 기꺼이 지불해서 책을 소유한다. 책에 낙서를 하건 저자의 생각을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그것은 책을 소유한 우리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아이작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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