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펜하이머가 환호한 이유!

by 아이작 유




영화 이야기로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았는가? 안 보았다면 걱정하지 마시라. 절대로 주요 내용을 스포하지 않겠다. 영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이 나치 독일보다 먼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진행했던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임자인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당대 물리학계의 최고 과학자들은 뉴멕시코주의 로스앨러모스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철저한 통제하에 핵무기를 개발했는데 그 기간 중, 오펜하이머의 은사인 닐스 보어 교수가 나치 독일이 점령했던 덴마

크에서 탈출해 미국에 입국했다. 닐스 보어 교수는 오펜하이머 그리고 그의 동료들과 이런 말들을 주고받았다.


스크린샷 2025-06-23 오후 10.32.30.png


“하이젠베르크가 코펜하겐에서 날 찾았었네. 이 옛 제자는 나치를 위해서 일하고 있었어. 그는 우라늄의 지속적인 핵분열 이야기도 했지. 그는 중수에 집중하는 것 같았어.”


“감속재로요?”


“응, 흑연 대신에 말이야.”


그러자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료들은 이 소식에 환호성을 질렀다. 이 반응에 의아해한 닐스 보어 교수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답을 했다.


“그가 길을 잘못 든 것 같네요.”



감속재란 핵연료인 우라늄(정확히는 우라늄-235)이 핵분열할 때 생성되는 고속 중성자의 속도를 줄여 중성자가 이탈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우라늄과 충돌을 해서 연쇄적으로 핵분열을 일으키는 매우 중요한 물질이다. 고속 중성자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가벼운 물질을 써야 하는데 그 후보가 ‘중수’ 또는 ‘흑연’이었다. 여기서 나치 독일은 중수를 택했고 그 정보를 닐스 보어를 통해 오펜하이머 쪽이 알게 되었던 것이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흑연을 택한 오펜하이머 쪽은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데 시간 꽤나 걸릴 중수를 선택한 나치 독일이 원자 폭탄을 개발하는 데 애를 먹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환호를 지른 것이었다. 여기서 이 환호를 ‘오펜하이머의 환호’라고 불러보자.



20210914162412367822.jpg



‘오펜하이머의 환호’는 사실 오늘날의 과학 기술 경쟁 속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나는 디램이라는 반도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당대 최신 개발 제품인 12 나노 디램과 그 이전 세대 제품들의 개발과 양산에 직접적으로 참여를 했다. 세계적으로 디램을 잘 만드는 회사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마이크론이 있다. 나는 여기서 삼성 쪽에서 일한다. 이 세 회사들은 마치 전쟁을 하는 것처럼 정말 치열하게 개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면서 직간접적으로 경쟁 회사들의 개발 동향에 대해서기민하게 센싱을 하는데, 리버스 엔지니어링 분석팀을 직접 운영하거나 전문 칩 분석 업체의 도움을 받거나 인력 영입을 통하거나 기술 관련 회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얻는 등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사의 기술 동향을 파악한다. 각 회사의 개발 쪽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오가며 오펜하이머의 환호를 지른다.


“어라, 저쪽은 유전 물질로 이것을 쓰고 있네. 우리도 이미 수차례 평가를 했지만 특성적인 이득보다 불량률과 원가 관점에서 손해가 클 텐데.”


“저쪽은 게이트 두께가 우리보다 많이 두껍게 디자인했네? 당장 수율적으로 문제가 없겠지만 나중에 고성능 수요처에서는 동작 속도가 많이 뒤처질 텐데.”“저쪽은 특정 모듈 구조의 산포가 많이 좋지 않구나. 아마도 설비 능력 부족성이 아닐까?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정 개수도 더 많을 것 같은데, 수율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향후 원가 경쟁력 관점에서 몇 개월은 뒤처지겠구나.”


물론 경쟁사가 앞서 있는 경우에는 환호가 아닌 두려움이 엄습해 올 수 있다.


“우리가 해결 못 하고 있는 수직 구조 산포 이슈를 저쪽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마스크 레이어의 문제일까? 식각 공정 능력의 문제일까? 빨리 캐치업하지 못한다면 여기서 수율 격차는 더 벌어질 텐데....”



오펜하이머가 환호한 이유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오펜하이머의 환호’를 할 수 있는 배경은 뭘까? 나는 자신 있게 그 이유를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사는 우주가 구라 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우주에는 ‘인과법칙’이라는 보편의 법칙이 작동한다. 인과법칙은 미국에서만 작동하고 한국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등 불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인과법칙은 정확하게 작동할 뿐이다. 만약 원인과 조건이 동일하다면 이 보편 법칙에 의해 똑같은 결과를 얻게 되고, 반대로 만약 원인과 조건이 동일하지 않다면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순 없다. 오펜하이머의 환호는 원인과 조건에 대한 현상을 근거로 인과적인 결과를 예측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방금 전 나는 “우리가 사는 우주는 구라 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대 시절 인과법칙에 대해 내가 나의 언어로 인식한 말이었다. 이 문장은 이 책의 주제인 ‘생각하는 법’에 있어 핵심적인 메시지 중 하나다. 당시 나는 카이스트에서 박사 연구를 하고 있었다. 박사 과정 초기에 다른 친구들 대비 나의 연구 실적은 매우 좋지 못했다.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험을 해보았지만 늘 예상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남과 비교되는 현실에 난 좌절했다. 슬럼프에 빠진 나에게 지도 교수님이 찾아왔고 연구동 주위를 걸으며 우리는 대화를 했다. 그때 지도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사람이 생각해서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 다르게 말한다면 문제를 풀 수 없다면 그것은 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 거야. 생각하면 반드시 길을 찾게 될 거야.”


확신에 찬 교수님의 조언은 당시 내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교수님에 따르면 좋은 연구 논문을 쓴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나와 동일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좋은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좋은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교수님의 말을 계속 곱씹었고 그의 말을 ‘인과법칙’과 연결 지어 생각했다. 그리고 난 각성했다. 그리고 외쳤다.


“우주는 구라 치지 않는다.”



아이작 유

<과학자의 사고법> 중에서

읽으시면서 떠오른 생각이나 다른 관점이 있다면, 댓글로 살짝 나눠주세요.
누군가의 한마디에서 또 다른 생각이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이 브런치 공간이 생각이 오가고, 서로의 시선이 스치는 장이 되길 바래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새로운 지식을 얻는 특별한 방법으로서의 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