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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잘한다는 것이란

by 아이작 유

나는 구라 치지 않는 우주 속에서 생각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을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과학 철학 서적을 탐독했다. 이 탐구의 종착지는 과학 철학자 칼 포퍼였다. 칼 포퍼의 책들을 읽으며 나는 과학이란 결국 인과법칙으로 이루어진 지식을 발견하는 철학이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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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법칙을 공식으로 표현하자면 ‘A (원인/조건) → B (결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므로 ‘A → B’라는 지식이 진짜 참인지 아니면 거짓인지를 확정 지을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참일 가능성이 높은 ‘A → B’라는 지식 후보 곧, ‘가설’을 던지고 그 가설을 실험이나 평가를 통해 검증해야만 한다. 이를 칼 포퍼는 ‘연역적 가설 탐구’라고 불렀고 연역적 가설 탐구를 하는 것을 바로 과학이라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난 또 궁금했다. 가설이란 ‘A이면 B일 것이다.’, ‘만약 A라면 어떨까? B가 되지 않을까?’라는 잠정적 지식 후보인데, 왜 칼 포퍼는 수많은 수식어들 중에서 ‘연역적’이란 수식어를 붙였을까? 가설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연역적이란 말은 논리적으로 전제 A가 참이면 반드시 결론 B가 참이어야만 한다. 당시 나는 ‘연역적’이란 말과 ‘가설’이란 말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이 ‘가설’을 ‘연역적’으로 보이게 만드는가에 대해 궁금했다. 그래서 난 ‘과학이란 무엇인가.’류의 책들을 계속 파헤쳤고 많은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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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가설을 설정하기 전에 ‘관찰’이라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상에 대한 정확한 관찰, 기존 이론/지식/논문/문헌에 대한 정확한 관찰이 선행될 때, 비로소 학자가 정말로 연역에 가까운 가설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은 1915년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휜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는데 앞쪽에 중력이 큰 무거운 별이 있다면 뒤쪽의 별빛이 앞쪽 별의 중력에 의해 휘어서 별의 위치가 다르게 보일 것이라는 가설을 던졌다. 당시 어느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는 가설이었다. 하지만 시공간에 대해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가설에 대해 사람들은 무시하거나 가볍게 보지 않았고 연역적으로 진짜일 거라 믿고 그의 가설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결국 천문학자들은 1919년 개기일식 때 그의 가설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선배 과학자들은 말한다.

“아무 가설이나 생각 없이 막 던지지 마라!”

“현재 알고 있는 이론과 현재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서 제대로 관찰한 뒤 연역적 가설을 던져보아라!”


선배 과학자들의 한 가지 당부는 바로 ‘관찰’이다. 관찰은 연역적 가설을 수립하는 데 돕고, 탐구하고자 하는 지식의 질과 수준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다. 다시 정리하자면, 칼 포퍼가 말한 대로 연역적 가설을 던지고 증명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며, 관찰을 기반으로 연역적 가설을 던질 줄 알고 이것을 구라 치지 않는 우주 속에서 증명해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생각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내가 박사 과정에서 배운 가장 값진 것이다.


깨달음 이후 나의 연구 활동은 질적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먼저 매일 읽는 논문들이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나는 논문의 핵심 가설 곧, 저자의 생각이 무엇이고 그것을 저자가 어떻게 검증을 했는지를 파악했다. 그리고 그 저자가 그 생각을 하기 위해 어떤 증명된 가설들을 근거로 사용했는지를 파악했다. 기존에는 내용 위주의 논문 읽기를 했다면 깨달음 이후에는 생각 위주의 논문 읽기를 했다. 그렇게 논문을 읽고 시간이 지나자 생각들이 구조화되기 시작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과학이란 증명된 가설 곧, 사실들을 가지고 지식의 체계를 구축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는데, 내가 읽은 논문의 가설들이 구조화되자 ‘파인만이 말한 과학을 지금 내가 하고 있구나.’라고느꼈다. 또한 아이작 뉴턴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했는데 내가 어떤 생각들 위에 서 있는지, 어떤 저자들의 위에 서 있는지 현재 나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나는 당시 내 인생 어느 때보다도 연역적인 가설들을 더 많이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라 치지 않는 우주 속에서 실험을 통해 그 가설들을 검증했다. 내 딴에는 아무리 연역적이라 생각했던 가설들이 실험을 하자 오류로 판명된 적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구라 치지 않는 우주가 있는 그대로 즉시 피드백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우주가 ‘내가 생각해 봐도 안 되는 것 같아!’ ‘다시 생각해 볼래?’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나는 실험 결과를 있는 그대로 세세하게 관찰해서 기록했고 그 관찰을 기초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수정했다. 나는 그 수정된 가설들을 들고 구라 치지 않는 우주에게 다시 다가갔고 우린 최고의 파트너십 속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가설들을 검증해 냈다. 이를 통해 나는 박사 과정 말미에 매 년 세 편 수준의 좋은 논문들을 쓸 수 있었고 무사히 박사 과정을 마무리했다. 한때 나는 ‘박사라는 옷이 내게 맞지 않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졸업할 때가 되니, 친구들로부터 “제법 박사답네.”라는 말을들었다.



우리의 과제는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보고 있는 것에 대해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The task is not so much to see what no one has yet seen, but to think what nobody has yet thought about that which everybody sees.

- 에르빈 슈뢰딩거(1933년, 노벨물리학)



아이작 유

<과학자의 사고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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