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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지식을 얻는 법

by 아이작 유

매일 아침 일어나 거실 창문을 열면 유난히 부산을 떨고 있는 까치들의 소리가 들린다. ‘꺅–꺅–꺅’ 하는 그들의 경쾌한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나 또한 하루를 활기차게 보내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층에서는 까치들의 둥지가 보이는데, 어떤 둥지는 매우 크고 대궐 같으며 어떤 둥지는 매우 작고 아담하다어떤 둥지는 나무의 맨 꼭대기에 있으며 어떤 둥지는 나무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 또 어떤 둥지는 타원형의 모습이며 또 어떤 둥지는 구형의 모습이다. 나는 이렇게 다채로운 까치 둥지를 보며 매우 신기해했다. 실제로 겨울이 되면 까치들은 부지런히 나뭇가지를 들고 다닌다. 바로 둥지를 짓기 위해서이다. 나는 까치들이 어떻게 둥지를 짓는지 정말 궁금했다. 유튜브를 검색하니 ‘KBS동물티비’ 채널의 한 영상이 나왔다. 이 영상에는 까치가 무려 2개월 동안 1600여 개의 가지를 활용하여 둥지를 짓는 과정과 원리가 나온다. 까치는 서로 다른 굵기의 나뭇가지를 얽히고설키게 끼워넣기를 하여 둥근 둥지의 틀을 만들었고 진흙을 활용하여 접착 및 마감처리를 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까치 둥지는 외부 둥지와 내부 둥지라는 복합 구조로 되어 있다. 외부 둥지는 비와 바람을 막아주며 내부 둥지는 가는 가지와 풀, 진흙으로 구성되어 새끼가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조류 중에서 까치가 지능이 매우 높고 주변 학습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영상을 통해 둥지를 건축하는 모습을 보니 까치가 정말 존경스럽게 여겨졌다.




이렇게 새가 둥지를 만드는 과정은 흔히 인간이 생각을 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비유로 사용되곤 한다. 새가 여러 가지 모양의 가지들을 물고 와서 견고한 둥지를 짓는 것과 같이, 서로 다른 지식들을 모으고 연결하여 지적인 건축물을 짓는 것이 바로 생각이라고 한다. 새가 물고 온 가지는 우리에게 지식이며, 새가 지은 둥지는 우리에게 생각의 집 곧, 콘셉트, 관념, 철학과 같다.


여기서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 우리는 어떻게 옳고, 의미 있는 가지를 얻을 것인가? 그리고 둘째, 우리는 어떻게 그 가지들을 가지고 둥지를 지을 것인가? 이 두 질문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 고리는 바로 모델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모델링은 생각의 집을 짓는 핵심 재료이자 오늘날 존재하는 거의 모든 학문을 구축한 생각의 건축법이다.




지식을 얻는 법

먼저 지식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보자. 우리가 흔히 지식을 얻는다고 말할 때 지식은 옳은 지식을 의미한다. 굳이 옳지 않은 지식을, 쌓으면 결국 무너지는 그런 지식을, 그리고 자신에게 해가 될 지식을 누가 얻으려고 개고생하겠는가?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옳은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옳은 것인지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류 역사 내내 인간은 옳은 지식을 확보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해 왔다. 사람들은 그 노력의 과정을 특별히 인식론이라 부른다. 철학 관련 학위가 없는 내가 인식론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정교하게 설명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내가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호기심 많고 동시에 의심 많은 인류가 지식을 축적한 방식인데 인간은 옳은 지식이 아닌 틀리지 않은 지식을 얻는 방식으로 지식을 축적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얼핏 비슷하게 들리는 것 같지만 엄연히 다르다. 언제나 절대적으로 옳은 진리인 ‘절대 진리’를 믿는 사람들, 자신이 절대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절대 진리라고 주장하는 온갖 종류의 이론들을 제시했다. 하지만 결국 그 절대 이론들은 사람들의 보통의 사고에 의해 부정되고 살아남지 못하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살아남았던 지식들은 절대 지식의 부류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개연성은 높아 보이지만 언제든 틀릴 수도 있는 완벽하지 않은 지식들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지식들을 반박하는 검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엄격한 검증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살아남은 지식들, 바로 그 지식들이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그리고 우리에게 전해진 지식들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식이란 추측적이고 이론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세심히 관찰한 ‘무엇’들을 기초로 개연성 높은 ‘추측’ 또는 ‘이론’을 던진다. 바로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모델링’이라고 대표해서 부르고 있는 것이다. 모델링은 ‘A → B’라는 공식으로 간단하게 나타낼 수 있다. 즉, 모델링은 무엇(A) 하니까 무엇(B) 할 것이라는 개연성 있는 추측으로 표현된다.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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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2년 천문학과 점성술의 경계가 모호했던 시절, 에드먼드라는 사람은 긴 꼬리를 하늘에 수놓으며 움직이는 혜성을 처음으로 직접 보았고 완전히 매료되었다. 에드먼드는 재앙의 징조라고 알려진 혜성에 대한 모든 역사적 자료들을 파헤쳤고 자신이 관측한 혜성의 궤도와 비슷한 천체들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1607년, 1531년, 1456년에 기록된 혜성의 궤도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5년 뒤 만유인력에 대해서 기술한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출간되자 만유인력을 활용해서 자신이 관측한 혜성의 궤도를 계산해 보았다. 그

러자 자신이 관측한 혜성이 75~76년의 공전 주기를 가지는 동일한 현상이라고 판단했다(A). 그리고 에드먼드는 이 천체가 정확히 1759년 3월 지구로 다시 귀환할 것이라고 모델링을 했다(B). 사람들 중에는 에드먼드의 예측을 ‘헛소리’라고 치부하는 자들이 많았다. 에드먼드는 자신의 모델링을 확인하지 못하고 1742년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17년이 지나 1759년 3월이 되었다. 그 혜성은 다시 지구로 찾아와 지구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유영하며 지나갔다. 에드먼드의 모델링이 검증된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그 혜성의 이름을 ‘핼리 혜

성’이라고 불러주었다. 그렇다. 그가 바로 에드먼드 핼리였다.




모델링은 검증되기 전까지는 절대적이지 않은 지식 후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델링은 자기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검증이란 관문을 거쳐야만 한다. 만약 검증에서 살아남는다면, 모델링은 그래도 아직 절대 지식은 아니지만 절대 지식에 더 가까워진 매우 유용한 지식으로 재탄생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검증할수록, 검증 조건이 더욱더 가혹할수록, 살아남은 모델링은 매우 견고하고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흔들리지 않는 지식이 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우리는 모델링을 제시하고 이것을 검증함으로써 틀리지 않는 지식을 얻는다.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포인트는 검증된 모델링이 지식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단순히 모델링만 제시한다고 그것이 지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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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험담을 말하자면, 직장에서 나는 디램이라는 반도체 제품의 수율 또는 품질을 개선하는 일을 했다. 필연적으로 나는 정말 많은 불량들을 상대해야 했다. 문제는 기업 간에 치열하게 경쟁하는 반도체 제품의 특성상, 불량들을 개선할 시간이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원래는 불량에 대해서 모델링(무엇 무엇 때문에 불량이 이렇게 발생했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여 불량에 대해 체계적인 지식을 확보한 뒤 그 지식을 바탕으로 개선을 해야하건만, 바쁘다보니 일단 빠르게 설비 또는 공정을 조치하고, 그동안 약효가 있다는 좋은 개선안들을 마치 샷건을 쏘듯 마구 적용하여 일단 급한 불을 끄는 식으로 일을 한 적이 많았다. 현업에서는 이런 식의 일하기를 ‘퀵픽스(Quick Fix)’라고 불렀다. 물론 퀵 픽스가 잘 통해서 빠르게 수율 품질을 개선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퀵 픽스는 초기에만 효과가 있다가 결국 불량이 재발했고 그 결과 최종 개선까지 많은 시간 자원이 소모되었다. 나중에 차분히 복기해 보니 나는 퀵 픽스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것은 퀵 픽스로 성과를 냈건 내지 않았건 간에 퀵 픽스를 통해 내가 확보한 지식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식이란 값싸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아무리 귀찮아도, 모델링을 검증해야만 비로소 우리는 지식이라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모델링을 검증하지 않으면 그 모델링은 더 이상 힘 있는 지식이 아니라 그저 언젠가 잊혀지게 될 썰일 뿐이다.


아이작 유

<과학자의 사고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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