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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블록 쌓듯 생각의 집을 짓는 법

by 아이작 유

사상누각이라는 말이 있다. ‘모래 위에 쌓은 누각’이라는 뜻으로,겉으로는 화려하고 멀쩡해 보이지만 기초가 부실하여 무너질 위험이 있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 반대말은 ‘반석 위에 지은 집’으로, 튼튼한 기반 위에 집을 지어 어떤 외부 충격이 와도 흔들리지 않음을 비유한다. 사상누각과 관련하여 사람들 중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럼 모래 위에 피라미드는 뭔가요? 그 무겁고 커다란 건축물이 수천 년을 모래 위에서 버틴 것 같은데요?”



사실을 말하자면 피라미드는 겉보기와는 달리 모래가 아닌 기반암 위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그저 모래는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쌓인 거라 한다.


자 이제, 생각의 집을 짓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우리가 지어야 할 집은 사상누각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조그마한 비판에도 금세 균열이 일어나 버리는 그런 집이 아니다. 또한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결국 실속이 하나도 없는 그런 집도 아니다. 우리가 지어야 할 집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이다. 우리는 단단한 기반 위에 튼튼한 기둥을 세울 것이고 그 기둥 위에 벽과 지붕을 입혀 원하는 목적에 꼭 맞는 집을 만들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르지 않고 단단하며, 외부의 충격에도 잘 견디는 기반 재료이다. 우리는 이미 그 기반 재료 두 가지를 알고 있다. 관찰된 지식(관찰을 통해서 알게 된 지식)과 검증된 지식(= 검증된 모델링)이다.


자 매우 간단한 건축을 해보자. 이것은 마치 블록 쌓기 탑에 가깝다. 관찰된 지식 위에 검증된 모델링을 쌓고 그 위에 새로운 모델링을 쌓은 3단 블록 형태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인공혈관을 만드는 아이작은 해안가에서 휴가를 보내다 정박해 있는 선박 하나를 발견했다. 아이작은 선박 바닥에 수많은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관찰했고 이를 통해 ‘따개비는 물속에서도 강력하게 접착할 수 있는 접착 물질을 가지고 있다.’는 관찰된 지식을 얻었다(관찰된 지식). 이후 집에 돌아간 아이작은 구글링을 통해서 따개비의 접착 물질에 대해서 검색했고 ‘따개비의 족사에 카테콜아민이 풍부한 단백질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에 접착성이 강하다.’는 검증된 지식을 얻었다(검증된 모델링). 회사에 복귀한 뒤 관찰된 지식과 검증된 지식을 바탕으로 다음 새로운 모델링을 세웠다. ‘만약 접착성 있는 카테콜아민 물질과 피가 응고되지 못하게 막는 헤파린이라는 물질을 합성해서 인공혈관을 코팅할 수 있다면 인공혈관의 수명은 비약적으로 증가될 것이다(새로운 모델링).



정책 연구원 K는 자살 예방에 대한 전략을 수립 중이다. 그가 수행한 통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령대별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한 사람 수)은 1위 80대 61명, 2위 70대 38명으로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확인되었다(관찰된 지식). K는 자살 예방에 성공했던 선진국의 검증된 정책들을 조사했고 핀란드의 심리적 부검이라는 사례를 찾게 되었다. 심리적 부검이란 정신과 전문가들이 자살자의 가족, 고인의 유서, 일기 등 관련 개인적 기록과 병원 진료 기록 등을 분석하여자살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이다. 핀란드는 1986년 심

리적 부검제도를 처음 도입했는데 당시 핀란드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30.3명으로 전 세계 최상위였다. 핀란드는 전문가 6만 명을 동원하여 5년간 자살 사망자 전수 조사를 시행했고 그 결과 93%가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었고, 그중 80%는 우울증을 앓았지만 단 15%만이 치료를 받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에 정신 질환 조기 발견 및 치료를 골자로 한 예상 정책을 실행한 결과 2005년은 자살률 20명으로, 2015년에는 16명으로 줄어들었다(검증된 모델링). 이에, K는 대한민국 노인 자살자를 전수 심리적 부검을 하여 자살 원인을 진단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면 노인 자살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새로운 모델링).



이제는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한 생각의 집 한 채를 지어보자. 이 집은 커다란 기반 지식(관찰된 지식) 위에 3개의 기둥 지식(검증된 모델링)이 세워져 있고, 그 기둥 지식에 바닥과 지붕 역할을 하는 새로운 모델링 4개를 연결된 3층짜리의 미니빌딩 형태이다.


미시간대학교 연구실에서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미시간의 겨울은 매우 혹독했다. 기온이 -40도까지 떨어지기도 했고 허리까지 눈이 내리는 적도 많았다. 연구실에 케빈이란 박사 과정생이 있었다. 여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케빈은 우연히 고무로 된 물체 위에 단단해 보였던 얼음이 쉽게 똑 떨어져 나간 것을 보게 되었다. ‘이게 뭔가?’ 했던 케빈은 그 고무를 냉장고에 넣어 얼려보았다. 역시나 얼음은 쉽게 떨어졌다(관찰된 지식). ‘이건 진짜임’을 알게 된 케빈은 광범위한 연구 문헌들을 조사했다.


그러자 세 가지 검증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부드러운 고무가 얼게 되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미세하게 쭈글쭈글해지게 되고 그 결과 얼음이 쭈글쭈글해진 고무 표면에 제대로 달라붙지 않는다.’는 것이다(검증된 모델링 1).


둘째, ‘얼음은 물이 잘 달라붙지 않은 소수성을 띤 표면에서 더 적은 힘을 가지고 뗄 수 있다.’는 것이다(검증된 모델링 2).


셋째, ‘고분자를 합성할 때 소수성을 띤 기름을 첨가하면, 합성된 고분자의 표면이 더 물을 싫어하게 된다.’는 것이다(검증된 모델링 3).



이러한 검증된 지식들을 확보하자 케빈은 다음과 같은 모델링의 날개를 펼쳤다. 기름이 첨가된 고무를 합성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얼음이 얼지 않고 떨어지는 표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새로운 모델링 1). 고무가 더 부드러울수록 얼음이 더 쉽게 떨어질 것이다(새로운 모델링 2). 고무 재질과 기름의 궁합이 좋을수록 얼음이 더 쉽게 떨어질 것이다(새로운 모델링 3). 모델링 2와 모델링 3을 잘 검증하고 조절할 수 있다면, 내구성이 뛰어나면서 동시에 최고의 얼음 발수 특성을 띠는 표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새로운 모델링 4). 그리고 케빈은 이 모든 것을 검증해 냈고 얼음 발수 표면 부분 세계 최고의 권위자가 되었다.



아이작 유

<과학자의 사고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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