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와 사장, 그 어디쯤에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회사에 다닐 때는 잘 몰랐다.
명함 속 작은 글자 하나가 그렇게 큰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어떤 날은 “사장님”이라 불리고, 또 어떤 날은 “대표님”이라 불리던 사람들.
나는 그저 같은 뜻이라고만 생각했다.
퇴사 후 창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그 단어들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새로 만든 명함에 어떤 직함을 적어야 할까 망설이던 순간, “대표”와 “사장” 사이에는 분명한 간격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표는 법적으로 회사를 책임지는 자리였고, 사장은 실질적으로 회사를 굴려가는 호칭이었다.
책임과 운영, 법과 삶. 그 두 단어 사이에서 나는 한참을 머물렀다.
아무도 없는 작은 방에서 홀로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직원도, 매출도, 사무실도 없는 내가 과연 ‘대표’라 불릴 수 있을까. 혹은 ‘사장’이라는 호칭이 어울릴까.
하지만 곧 깨달았다.
직함은 현실보다 조금 앞서가는 약속 같은 것이라는 걸.
내가 “대표”라고 쓰는 순간, 그 무게만큼 책임을 지겠다고 다짐하는 것이고,
“사장”이라고 쓰는 순간, 내 삶을 스스로 운영하겠다는 각오를 하는 것이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에서 이미 대표이자 사장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법적 책임처럼 선택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고, 회사 운영처럼 하루하루의 자원을 꾸려가야 하니까.
명함 속 네 글자는 결국 우리 삶의 은유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완벽한 대표가 되지 못해도,
훌륭한 사장이 되지 못해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끝까지 버티며 스스로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직함이 있든 없든,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대표이자 사장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직함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도 안다.
대표라는 이름은 책임을, 사장이라는 이름은 운영을 요구한다.
결국 그것은 누군가가 불러주는 호칭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오늘도 나는 묻는다.
내 인생의 대표로서, 나는 어떤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가.
내 삶의 사장으로서, 나는 하루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
명함 속 ‘대표이사 사장’이라는 긴 직함은 허울이 아니라 다짐이자 경고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여전히 답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