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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것도 해봐야 중간을 안다

인생은 결국 유아론적인 흑백논리에서 중간값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닐까.

by 나경 이사벨라


경제적 압박이 줬던 소비제한


자취를 시작하고 나를 책임지는 삶을 살며, 초반에는 소비를 극단적으로 절제했다. 유독 나에게만 극단적으로 아끼고, 나중에 있을 여행이나 보상을 생각하며 버티듯이 살아온 것 같다. 취향과 지갑 사정을 고려해서 그 애매한 극단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 번 돈을 쓰기 시작하면 계속 쓰게 될지도 몰라'라는 두려움 안에 소비를 제한해 둔 것 같다. 이렇듯 과한 걱정은 내가 누구인지를 잊게 했다. 저 정도 걱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저 멀리 극단적인 쾌락을 추구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무엇을 경계해 온 걸까.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웠던 이유는

: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정체되어 있던 것뿐


치열함을 위한 치열함이 아니었을까. 비전이나 동기부여가 지금처럼 안정적이지 않았다 보니 맹목적으로 열심히 산 것이다. 찬란한 미래를 꿈꾸면서. 이제는 그 미래를 내가 한 발짝씩 만들고 걸어 나가야 한다는 현실을 안다.



소비제한이 준 돈관리 노하우


그나마 대견스러운 건 소비 규칙을 정해놓고 선을 넘어가지 않는 법을 깨우친 것이다. 돈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았고, 이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아가는 단계 같다. 어떻게 나를 가꾸고 투자하고 예뻐져야 하는지를 말이다.



외면, 내면 모두가 건강한 삶

: 돈의 압박보다는 스스로를 먼저 가꾸기


내면의 강력한 동기와 정신적 강력함도 좋지만, 그에 상응하는 외면적인 굳건함 역시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단순히 예쁘고 멋지고를 떠나서 외적인 매력 도와 내적인 단단함은 상호작용하며 내가 잘 버틸 수 있게끔 도와준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건강관리, 집을 내 취향대로 고치 기이다. 그동안은 되게 스파르타처럼 훈련하듯 살았다면 이제는 좀 그런 걸 내려놓았다. 진짜로 내가 편안해하고 좋아하는 환경을 가꾸어나가는 기쁨을 알게 됐다.


스스로 '나는 오만함을 경계해야 해'라는 압박을 너무 많이 줬던 것 같다. 단어의 정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구속한 과거의 나를 용서한다.


이렇게 내가 나 좋자고 꾸미고 돈도 투자하고 사는 건 오만함이 아니라 그냥 이게 좋은 건데. 좋은 거에 과도한 이유를 갖다 붙인 것 같다. 뭐라고 해야 하나, 공격받으면 자판기처럼 이유를 나불나불 대며 나를 지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소한 이유들이 날 지켜주는 방패가 될 수는 없는데 말이지. 그냥 내가 나 자체일 수 있는 용기가 살짝 부족했나 보다. 귀여운 과거로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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