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용 디자인

by 나경

마치 하나의 새로운 분야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실무 디자인은 말이죠..', '디자인의 실무에서는..', '취업하려면 이런 느낌으로..'


그 말 자체가 이미 '내가 만든 건 아직 진짜가 아니야'라는 무의식적 선언처럼 들린다. 동시에 취업을 위해, 비즈니스를 위해 만들어야 돈이 생산되어야 가치가 있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무얼 위해 디자인을 하는가를 위해 묻고 싶어지곤 한다. 영원히 다루지 못할 이상은 남긴 채 타협하며 살아가는 비운의 여주인공을 자처하며 연민을 품고 살아가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을 봐, 실무는 달라'라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 말이 본인의 불안을 투사한 체념의 말로 들린다. "난 내가 원하는 걸 시도했다가 비난받을까 두려워 시도 못하겠어. 너도 내 뜻에 동참해서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고 말해줘."


이상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이상을 추구하다가 실패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들이 말하는 현실이라는 구조 안에서는 안전을 선택한 대신 자유를 잃어야 한다. 그래서 실무형 디자인, 시장 논리, 트렌드에 맞게 만들어야지 같은 말이 일종의 생존규칙처럼 작용한다.


미안하지만 난 그런 말에 다 따라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이 만든 두려움이야말로 현실에 없는 허상이다. 이상이라는 건 현실의 반대가 아니라, 현실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래의 씨앗이다. 진짜 현실을 보라고 주창해야 할 사람은 내게 현실을 보라고 꾸짖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해야 할 말이다. 내가 불안을 투사하기를 거부한다.


난 창조하고 예술을 하는 디자이너다.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그 안의 반짝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다. 그게 내가 바라는 디자인이다. 감정과 시야를 디자인을 통해 번역하는 번역가. 더 이상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따라가서 나의 개성을 거세하기 싫다. 정작 디자인을 소비하는 대중들은 디자이너에게 핀잔을 줄 생각이 없는데, 왜 이렇게 불안을 투사하지 못해 난리들인가. 그러니 그런 소모적인 처세에 대해 거리를 둬야겠다.


어째서 실무에는 예술성이 거세되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할까.

내가 생각하는 바는 이렇다. 일단 디자인과 대학생이라면, 입시를 거쳐 학교에 들어오게 된다. 그 안에서 또 학점이라는 인정요소가 수능 점수인 냥 절대기준치인 것처럼 작용한다. 그러니 대부분 '측정 가능한 것이 안전하다'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예술성은 측정되지 않는다.


그러니 교수가 잘했다고 하는 것, 어느 회사에 들어간 모 선배의 포트폴리오 등을 답습하는 건 곧, 측정되지 않는 예술의 세계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교육 시스템의 허점이다. 실무용/개인용 디자인이라는 경계가 있는 것처럼 허상을 자아낸다. 학교에서는 창의력 훈련을, 현장에서는 문제해결력을 기르게 된다. 이 둘은 본래 하나의 나선처럼 연결되어 있다. 즉 진짜 강한 디자이너는 이 둘을 통합하는 사람이다. 시장 안에서도 감정을 다루는 기술자가 되어야 하는 게 진짜 과제다.


실무 디자인의 핵심은 결국 사람의 감정을 움직여서 행동하게 하는 일이다. 감정 번역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는 일일 뿐이지, 감정이나 예술성을 거세하는 일이 아니다.




현실을 본다는 건 세상의 벽을 보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 벽을 인식한 채로 문을 새로 설계하는 일이다. 그게 바로 디자이너의 현실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말하는 '현실'은 생존의 언어고, 내가 말하는 '현실'은 창조의 언어다.


보고 느낀 것을 디자인이라는 언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선물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 그러니까 디자인에는 잘하고 못하고라는 잣대보다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냐는 관점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그걸 조율하고 이야기하고 타인의 세계를 들어보고자 하는 게 실무이며 삶 아닐까? 오히려 그게 '진짜 현실'같다.


나의 행복은 공유라는 보람에서 나온다. 비웃음치고 손가락질해도 이 행복을 포기하긴 싫다. 내가 구축한 세계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고집쟁이에서 벗어나 비로소 공유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이상적인 세계의 복잡성을 이해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서 보고 느낀 걸 있는 그대로 공유하고 나누고 살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즐겁게 표현하며 사는 게 더 재밌고 사람들은 오히려 그렇게 했을 때 더 사랑해 주더라.


난 그런 단단한 정원을 꾸려가며 세상에게 나의 정원을 공유하고,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차 한잔도 하는 편이 즐겁고 행복한 삶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실무용이든 개인 창작물이든 내게 그런 잣대는 중요하지 않다. 원하는 모든 걸 구축해서 모든 걸 인정받아야만 진짜인 게 아니고, 나를 공유한다는 그 자체가 삶이고 진짜였다.


내가 나여도 되는 세계.

그게 내가 디자인을 하는 이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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