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뱉은 침을 맞아줄 필요는 없다

평가는 내가 원할 때만 받아들이는 것

by 나경

비평이 들어오는 문을 열지 닫을지는 내가 결정한다.


멋진 창작물을 올려야 세상이 인정해 주고 알아주고 디자이너가 되는 건 줄 알았다. 직함이 명명백백히 쓰여있어야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세상에게 영감을 받아서 우러나온 마음을 시각적으로 번역하여 세상에게 다시 되돌려주는 게 곧 디자인이었다. 세상은 내게 반짝임을 제공했고 나는 그 빛 속에서 찰나를 잡아내서 나의 마음을 공유한 것이니까. 그리고 사랑을 받고 싶어서 시작했다기보다는, 그렇게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한 것이니까. 아리따운 정원을 잘 가꿔서 문을 열어둔 것뿐이다. 난 그렇게 이미 디자인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러니 결과물을 내보이는 자리란 오디션장이 아니라 내가 가꾼 정원의 창문이었다. 이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내가 초대한 게 아니라 우연히 꽃향기에 이끌려 들어온 손님이었다. 감사한 손님들이다. 그렇다고 정원에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과한 겸손이나 아양을 부릴 필요도 없다. 그냥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것뿐이니까.


디자인도, 학교도 내 정원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꽃 냄새 맡고 행복해하자고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세상이 알아줘야만 가치를 갖는 건 아니다. 돈과 인정이라는 가치를 창출해야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사랑받지 못해도 된다는 게 아니라 이미 내가 사랑하고 있으니까 괜찮다. 이미 내가 사랑스럽다고 판단해서 세상에 공유한 것이니까. 누가 봐주면 고맙고, 아무도 몰라도 여전히 향기롭다. 하지만 세상을 향해 계속 공유를 하다 보면 정원 유지비를 보조해 줄 회사도 들어올 것이고, 손님들도 올 것이라고 믿는다. 나도 먹고살아야 하잖나. 대신 누군가에게 나를 봐달라고 매달리는 게 아니라 내가 문을 열어두고 편지를 흩뿌려야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이다.


편지를 뿌려서 사람을 맞이했는데, 내가 생각한 것과 달리 호통을 맞거나 부정적인 말을 들을 때도 있다. 타인으로 인해 열받는 건, 열을 내가 받아들여서 내면화했기에 열을 말 그대로 받은 거다. 그러니 누가 따끈따끈한 의견을 들고 왔을 때 이걸 정원의 난로로 삼을지, 아니면 '그냥 밖에다 두고 가세요'라고 할지는 나의 결정에 달린 일이다. 좋은 마음으로 정원을 공유했는데 불도저를 들이밀려고 한다면 그건 그 불도저가 무례한 것이지, 내 정원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실력의 문제가 아닌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문제다. 내 마음은 내 허락 없이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명심하면 된다.


그러니 평가는 내가 부탁할 때만 온 마음을 다해 정성껏 들으면 된다. 굳이 한두 마디씩 얹는 핀잔이나 따가움을 맞아줄 필요는 없다. 우연히 들은 제삼자의 의견이 기존의 것보다 좋을 때도 많다. 그러니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정원의 문을 열지 말지 선택하면 된다. 내 말만 맞다고, 내 의도를 알아맞혀 보는 퀴즈쇼 하려고 디자인을 하는 건 아니니까, 정원을 가꾸고 사람들에게 선물한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그리고 겸손하게 살다 보면 돈이라거나 인정은 바라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아봐 줄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의 중심에 타인이 아닌 자신을 두면 자존하게 된다.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을 때가 더 많은 게 곧 디자이너라는 왕관의 무게다.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세상은 그런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고 해서 나보다 상급자인 교수라거나 직장 상사에게 핀잔이나 의견을 묵묵히 들으며 내면화할 필요는 없다. 정말로 내가 몰랐던 부분이라면 알아들으면 된다. 예술성이나 나의 가치에 대해 손가락질한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분명 상처받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정원사는 나다. 그런 사람은 그저 내 정원의 가치를 알고자 하지도 않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으며 되려 엽기적인 테러를 했을 뿐이다.


귀책사유가 있다면 테러를 한 자의 잘못이다.


하지만 인생은 합리적이지 않은 법. 귀책사유는 그쪽에 있어도 복구하는 책임은 내게 있다. 그쪽에서 아무리 배상금을 물어주고 반성문을 써도 소중한 꽃들이 어디에 어떻게 심어져 있었는지, 어느 구역에 어떤 것이 있었는지는 나만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정원을 어떻게 꾸려나가려 했는지에 대한 청사진도 내 손에 들려있으다. 따라서 아주 운 좋게 복구에 대한 도움을 타인에게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엔 내 손으로 마무리를 해야 정원 회복이 끝난다.


그런 정원 무단침입이 빈번한 패턴처럼 있던 게 나의 지난 삶이었다. 정원을 가꿔서 공유한다기보다는, 그저 정원에 찾아와 주는 사람들이 좋았고 그들이 옆에 있어서 풍요롭다고 착각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모든 풍요는 이미 내 정원 안에 있었기에 그들이 찾아와 준 것이다. 내가 특별히 더 예쁜 척을 한다고 해서 언제 누가 더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정찰병처럼 '대체 누가 정원에 오나.. 오면 문 열어줄까 말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 정원을 알아서 단단하게 꾸려나가면 된다. 벽도 새로 쌓고, 문도 재점검하면서 '아 이런 사람한테는 문 열어주면 안 되겠구나'를 생각해 보고.


그러면 자연히 풍요와 행복이 따라온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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