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다른 이름, 취향.

낭만적 감각의 출처

by 나경

어릴 적부터 상상과 공상은 하늘의 별처럼 항상 내 곁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소공녀의 세라가 된 것처럼 어떤 공간에서든 '이곳은 이렇게 꾸미면 정말 좋을 거야', '나중에 내 집은 이러면 참 좋겠다'라는 상상을 끝없이 했다. 포근한 침대 속 이불 안에서 공책, 연필과 함께 세상을 만들어내던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내 디자인 감각의 근원이다. 현실이 제한돼도 머릿속에선 모든 질감과 빛과 온도가 가능한 까닭이다. 현실을 따뜻하게 번역하는 상상력이 곧 내 디자인적 발걸음의 시작이었다.


돈이 있건 없건 세상 어디에 있건, 상상하는 건 무제한으로 주어진 자유이기에 머릿속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정말이지 따뜻한 나경-커스터마이징이 되어있다. 마치 눈에 필터를 씌운 것처럼 말이다.


이건 이렇게 하면 예쁘겠다, 저렇게 하면 좋겠다 하는 사고방식이 어디서 왔는가를 반추해 보면 대부분 세월 속 행복한 기억들에 기인하는 듯하다. 무엇이 왜 좋은 지를 설명하거나 납득시키기는 어렵지만 '이게 좋다'는 감각은 분명히 있다.



감각의 출처 1, 취향 반복


어릴 적부터 동화책 읽기나 영화 보기를 아주 즐겼다. 다만 나는 하나에 꽂히면 그걸 몇백 번이고 반복해서 봤다. 그중에 하나는 영화 슈렉이다. 엄마는 내게 질리지도 않느냐면서 혀를 내둘렀다. 어린 시절 엄마는 내게 영화를 보여주되 항상 영어 원문 그대로의 콘텐츠 그대로를 시청하게 했기 때문에, 영어판 슈렉을 자막도 없이 몇백 번이고 돌려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 영화 도입부터 끝까지 모든 영어 대사를 따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가 6살이었는데 뭔 뜻인지도 모르고 뉘앙스부터 악센트까지 모든 걸 들은 대로 뱉었다. 그땐 그게 영어인 줄도 몰랐다. 그냥 좋아서 계속 봤고, 본 대로 뱉었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한글도 비슷하게 그런 식으로 입을 뗐던 것 같다. <무지개 물고기>라는 동화책을 정말 사랑했는데, 엄마에게 하루에 5번 이상씩 그 동화를 읽어달라고 책을 들고 찾아갔다. 엄마는 또 이 책을 들고 왔느냐며 이게 이렇게 좋으냐고 물으면서 마치 처음 읽어주는 것처럼 매번 무지개 물고기 이야기를 읽어주었다. 한글까막눈이던 아기는 당연히 책의 글씨나 의미를 다 알 수 없었다. 엄마가 이후에 말해주길 어느 토요일 아침, 소파에 앉아 무지개 물고기 책을 펼치고는 하늘천 따지를 외우듯 술술 책을 읽었다고 한다. 내가 볼 땐 그건 정말로 그 이야기나 텍스트를 이해해서 읽었다기보다는 무지개 물고기에 대한 무한한 팬심으로 엄마를 통해 들은 한국어 텍스트를 들은 그대로 뱉은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앞에 있어서는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슈렉과 무지개 물고기뿐만 아니라 노래 역시 좋아하는 부분을 구간반복으로 하루에 몇백 번씩 부르는 경향이 있다. 그 바람에 엄마아빠는 김종국의 '사랑스러워'라는 노래에 대한 심각한 노이로제가 있다. TV에 가끔 bgm으로 사용되는 '오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만 들어도 조건반사처럼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그때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라며 오두방정을 떤다. 여전히 그 경향은 존재해서 꽂히는 노래를 발견하면 아주 소중하게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고는 몇 시간 동안 틀어놓는다. 좋은 감정을 반복해서 접하면 그 안에서 마음과 머리가 안정된다. 심신이 편안해지고 감각의 고향에 찾아온 기분이 드는 까닭에 여전히 반복이라는 경향 띄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만의 삶을 살다가 우연히 과거에 들었던 편안하고 좋은 감정이 올라오는 감각을 포착한다. 마치 '좋아하는 것 낚시하기'를 하듯이 말이다. '어 이거 보니까 옛날에 그거 보면서 들었던 좋은 기분이 나네. 미소가 지어지네' 하면 꼭 사진을 찍는다. 물론 의식적으로 이렇게 모든 생각의 절차를 밟진 않지만, 내가 휴대폰을 꺼내어 카메라를 들게 되는 순간은 곧 이 행복을 저장하고 싶어 하는 순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그 감정이 들던 순간은 머릿속에 동영상으로 고스란히 저장한다. 저장을 한다기보다는 자동으로 저장이 된다. 단순 지식 암기에는 젬병인데 이렇게 좋아했던 감정의 모든 질감, 그때 내가 바라본 순간들은 짤막한 비디오로 뇌의 하드웨어에 초장기 기억으로 전환된다. 아마 내 뇌가 '나중에 이 좋아하는 걸 또 반복하고 싶어 질지도 몰라, 그러니까 초장기기억으로 즉시 보내버려!'라고 하는 게 아닐까 유추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겐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좋았던 기억들이 무수한 꽃갈피처럼 많이 저장되어 있다. 그 좋음과 행복의 기억을 통해 살아가고, 삶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며, 또 이렇게 느낀 감정을 공유하기 위해 세상을 향해 창조한다.



감각의 출처 2, 놀이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함께 캠핑이나 여행을 많이 갔다. 국내 위주로 많이 갔다. 꼭 거창한 곳을 가야 여행인 건 아니다. 엄마와 함께 간 전시회, 경복궁, 뮤지엄, 식물원, 발레극, 친구와 함께 눈밭에서 뒹굴기 등 사소해 보이는 놀이 역시 내겐 전부 크고 작은 여행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생 때, 심지어 중학생 때 까지도 나는 공부를 치열하게 해 본 경험보다 열심히 논 기억이 더 많다. 학원보다는 영화를 보거나 밖에 나가서 흙장난을 하며 소꿉놀이 하기를 더 좋아했다.


엄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교육자였던 엄마는 아이러니하게도 지식을 채워 넣는 교육보다 놀이의 경험을 더 많이 선사해 주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학원을 가기 시작한 것도 중학교 때였다. 그것도 '아 내가 대학이라는 곳에 진학을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학원에 가는 게 좋겠다'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부모님께 운을 뗀 것이었다. 그전까지는 학원에 몇 군데 가긴 했지만 말 그대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앉아있다 오기만 한 것뿐이었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인생에서 별로 무언가에 대해 간절해해 본 기억이 없다. 심지어는 뛰어나게 잘하고 싶던 적도 딱히 없다. 오직 내가 원하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에 자격증 시험처럼 공부를 했을 뿐이지, 그걸로 일말의 우월함이라거나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대학이라는 곳을 진학하고 싶던 것도 일반적인 통념과 아주 다르다. 20대 초반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가득 채워서 '잔소리를 좀 덜 듣고' 4년 동안 놀고 싶었다.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고 책임을 다해야 하는 순간을 유예하고 싶어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대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꼭 인서울 학교가 아니면 안 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이유 역시 서울 안에는 문화적인 인프라가 너무나 잘 갖추어져 있고 교통망도 너무 잘 되어있어서 20대를 보내기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 서울 안에 있는 4년제 대학교의 디자인과에 들어갔다. 그리고 학점을 잘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냈다.


그러니 내게 놀이가 주는 행복감과 즐거움이란 동기부여이고 삶이며 내 모든 원천이다. 엄마는 수많은 초등학생과 아이들을 만나봤지만 정말 내가 유별나다는 소리를 한다. 내가 봐도 그렇긴 하다. 내 남동생 역시 나와 비슷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엄마 말에 따르면 동생은 그저 그런 평범한 대학생일 뿐인데 나는 감각이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고 늘 이야기한다.



감각의 출처 3, 즐거움


앞서 말했듯, 난 무언가에 대해 특별히 간절해해 본 기억은 없다. 오히려 '그러는 편이 더 즐거울 것 같아서'했던 것들이었다. 즐거움을 위한 목표가 생기면 그제야 전략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내달릴 불씨가 지펴진다.


그럼 나는 어떻게 놀 때 즐거움을 느끼나를 생각해 보자. 나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상상을 하며 세계관을 구성해 나가는 걸 몹시 즐긴다. 요즘에는 방을 꾸미기 위한 사진을 찾아보고 있다. 어릴 적부터 타샤튜더의 동화책이나 빈티지한 그림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했는데, 그게 내 방 안에 구현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재정적인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상상은 자유니까. 실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내 방식대로 개편하는 것이다. 오늘의 집에서 스크랩을 하거나 빈 방을 바라보면서 손이 가는 대로 스케치를 한다.


그러다가 갑갑해지면 밖에 나가서 성북천을 따라 산책을 하고 물길을 바라본다. 왜가리가 피라미를 잡기 위해 물길을 예의주시한다. 아, 저런 실패한 모양이다. 시선을 돌리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러닝을 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행인의 말소리가 들린다. 벤치에 앉은 커플은 아리따운 사랑의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얼굴들이 어여쁜 체리 한 쌍처럼 새초롬하다. 나도 아리송한 사랑의 여운을 느끼고 싶던 탓인지 벤치에 앉아 가만히 물길과 나무, 풀을 바라본다. 시원하고 달큼한 바람을 따라 한껏 풀들이 눕는다. 가끔씩 그 사이사이에 진주같이 반짝이는 꽃들이 보인다. 물길을 보니 든 생각인데, 내가 즐겨 읽던 타샤튜더의 열두 달 이야기 동화책의 마지막 12월 대미를 장식하는 동화책 장면이 생각난다. 크리스마스 당일, 밤의 어두운 강을 가르고 등장하는 할머니가 정성껏 구운 근사하고 화려한 케이크. 음 그 오일파스텔로 그린 삽화의 따스함이 그리워진다. 케이크뿐만 아니라 할머니와 가족들도 등장한다. 당연히 강아지와 고양이, 아르누보 장식들과 귀여운 디테일도 빠질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즐거움은 내 머릿속을 한 바퀴 빙 훑고 간다. 그 어떤 제한적인 공간에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느낀 따스함과 즐거움을 고이 저장해 두었다가 이렇게 꺼내보고, 실제로 만들어보는 게 곧 디자인인 셈이다. 디자인이라서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즐거움을 느꼈다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즐거움을 통해 느낀 즐거움 역시 연쇄적으로 머릿속에 '행복 기억'으로 저장되어서 나중에 또 생각나기 마련이다. 그런 여러 가지 재료들이 합쳐져서 나를 구성하고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듯하다. 그러니 감각이란 특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뿅 하고 나온다기보다는 취향 속에서 꽃 피워지는 것 같다.


따라서 디자인은 나에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
세상을 다시 상상하는 즐거운 시절의 연장이다.

누군가의 창작물을 보고 취향을 생성했듯,
나 또한 누군가의 취향이 된다는 건 아주 행복한 일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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