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퍼런스 답습에서 디자인 창조로
어릴 적부터 게임을 할 때 퀘스트나 스토리텔링, 전투보다는 캐릭터가 사는 집을 아늑하고 어여쁘게 꾸미는 것을 더 즐겼다. 울타리를 꾸미기 용도로 사용하여 창의적으로 꾸민다던가, 공간을 분리한다던가 칠교놀이를 하듯 여러 가지로 꾸미는 시도 자체를 좋아했다. 심지어는 암암리에 쓰는 치트를 사용해서 게임 재화를 무한으로 늘리고 몇 시간 동안 집만 꾸민 적도 있다.
현실과 게임이 다른 점이 있다면 집을 꾸미는 데에는 실제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교 2학년, 자취를 시작하고 13평짜리 나의 집을 휙 둘러보면 공허함 그 자체였다. 텅텅 빈 공간에 그저 그런 디자인의 침대랑 수납장, 책상, 책꽂이는 숭덩숭덩 툭툭 던져놓듯 존재할 뿐이었다. 반면에 오늘의 집이나 구글에서 정성껏 스크랩해 둔 예쁜 방들에는 멋스러운 엔틱 수납장, 빈티지한 책상, 딱 봐도 값비싸 보이는 러그, 톤 매치가 너무나 잘 되어있는 무드,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예쁜 창들이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즐비해있었다.
그러나 나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는 갖춰지기도 전인 자취방 안에 간신히 존재하는 인간이었다. 돈도, 가구도, 멋스러운 소품들도 갖추기에는 돈과 삶이 갖춰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따스함을 갖추고자 했다. 다이소에 가서 조화도 사고, 작은 소품도 사봤다. 그렇게 방에 배치를 하니, 분명 뭔가 꾸민 듯 하지만, 사람 사는 느낌이라고는 들지 않았다. 공간 사이사이에 장식을 간헐적으로 배치했다 뿐이지, 무드는 느껴지지 않았다. 게임처럼 소품이나 장신구를 갖추면 예뻐질 줄 알았는데, 당황스러웠다.
단순히 많은 소품이나 장식품을 끼얹듯 집에 두는 게 아닌 내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집을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관점을 전환한 시점부터 집이 정돈됐다. 레퍼런스가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로 답습하다 보면 어느 것도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집은 곧 삶이자 나의 왕국이기에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구성해야 하는 전제조건이 갖춰졌을 때 진정한 미가 우러나왔다. 내가 가장 나다울 때 가장 아름다워진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인가 보다.
우선, 내 라이프 스타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해야 했다. 공간 디자인 수업에서 배웠던 조닝이나 동선정리 등을 적용해 봤다. 눈을 감고 내가 집에 들어와서 생활하는 것을 상상하며 필요한 존을 생성했다. '내가 집에서 쉴 때, 작업할 때, 영화 볼 때 어떻게 보는 게 기분이 좋을까?', '잠깐, 내가 집에서 쉰다는 건 어떤 활동을 하는 걸 의미하는 거지?' 그러다 보니 매우 기본적으로 집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가구들에 의심을 두기 시작했다. 과연 책상이 두 개인 이유는 뭔가, 의자가 좀 더 필요하지 않은가, 책꽂이를 꼭 책을 꽂는 용도로만 사용해야 할까, 침대가 꼭 저렇게 배치되어야 할까, 설거지할 때 발이 시린데 러그를 좀 깔아볼까 하며 타인에 대한 시선을 거두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여러 배치를 시도해 보고 이곳에 뒀다 저곳에 뒀다, 이 용도로 써보다가 저 용도로 써보다가 했다. 말 그대로 동선과 배치에 대한 문제를 계속해서 해결했다. 무언가를 새로 사기 위해 돈을 쓰기에는 어느 것 하나 정돈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놀랍게도, 내 집의 물건들 중에 내 삶에 필요는 없는데 '나중에 필요할 지도 몰라서' 강박적으로 갖고 있던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수납박스, 안 읽는 책, 망가졌지만 소품으로 활용하는 의자, 교자상, 요가매트, 오래된 러그, 낡은 쿠션 등이었다. 오히려 사야 할 건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서랍 속에 정리할 정리함이나 좁은 주방을 서포트할 수납장이었다.
디자인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늘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무언가를 멋있게 하기 위해 소스를 추가하는 건 쉽지만 오히려 본질을 위해 덜어내는 건 몇 배로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덜어내는 까닭이다. 나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나를 몰랐기에 남을 답습하고 그저 예쁠 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잡동사니를 추가해 왔는데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고 나니 필요 없는 것이 이리도 많았다. 오히려 그렇게 비우고 나니, 생각이 한결 맑아지고 삶이 정돈됐다. 아기자기하거나 남들이 예쁘다고 칭찬하지 않아도 마음에 쏙 들었다.
삶을 정리하고 매일 블로그에 일기를 쓰며 휴대폰 속 사진을 종종 첨부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내 사진첩을 죽 둘러보았다. 대부분 여행이나 놀 때 찍은 풍경과 인테리어, 소품 사진들이었다. 일기를 쓸 때마다 사진들을 되돌아보니 나는 어떤 무드에서 기분이 좋다고 느끼고 사진을 찍게 되는 사람인 지가 보였다. 이전에 저장해 둔 레퍼런스 사진들도 봤다. 이전 같았으면 '와 예쁘다 이거 그대로 방에 구현하고 싶어' 했을 생각이, '나는 이런 무드를 보고 영감을 받는 사람이구나. 이런 감각을 내가 원하는 방향성에 맞게 재구성해야겠다'로 바뀌었다.
이건 디자인 전공자로서의 삶을 완전히 바꿔준 큰 전진이었다. 수동적인 학습자에서 능동적인 창조자로의 전환이 초단위로 느껴졌다. 아 이게 예술에서의 영감이라는 거구나 하며 말이다. 아마 디자인 종사와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면 레퍼런스 참고의 방향성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더 잘 알 것이다. 타인의 생산품을 통해 내 생산품을 만듦에서 온전한 내 것을 만듦으로의 (답습에서 창조로의)전환 말이다.
순백의 무의 공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창조하는 게 곧 집 꾸미기의 정수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표면적으로 보면 집 꾸미기는 미적 감각이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러한 예술적인 감각은 본인의 삶을 앎에서부터 시작한다. 단순히 타인의 것을 참고하고 따라 하는 게 아닌, 진정으로 사람과 삶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피어나는 게 곧 집을 꾸민다의 영역인 셈이다.
디자이너나 예술가의 방을 보며 경탄하던 어린 나는, 주체적으로 방과 삶을 꾸려가는 인간으로 성장했다. 아무쪼록 어떤 길로 걸어가든 돌고 돌아 결국 본인에게 돌아오는 듯하다. 이정표에 맞게 걸어가는 fm만이 정답이 아니다. 타인의 삶도 참고해 보고, 에어비앤비도 가보고, 호텔도 가보고 여러 삶의 모습을 봐야 결국 타인이라는 거울 속에서 본인이 보인다. 타인의 삶을 동경하는 것은 본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다. 그 모든 과정이 미적 감각과 삶의 감각 향상을 견인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