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서, 여행

비일상이든 일상이든 그걸로 됐다

by 나경

여행을 가기 전의 설렘은 터지기 전의 풍선처럼 부푼다. 마치 이 여행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어 방점이 되어주지 않을까, 어떤 일들이 생길까 하는 막연한 기대들이 솟는다. 여행이라는 것을 일상의 에너지와 재원 축적을 통해 달성하는 매우 비일상적 하루들의 집합이라고 설정한 까닭에 기대는 더 커졌다. 그러한 특별함을 달성해야만 여행이라는 기회비용을 상쇄해 줄 것 같았다. 365일 중에 파티와 같은 특별한 며칠을 위해 나머지 일상들이 이 여행에서 느낀 행복보다는 좀 적어야 납득이 될 것 같은 기분 말이다. 그래서 여행에 다양한 가치를 부여하여 예쁜 포장지에 담긴 선물처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여행이라는 속성은 일상을 벗어난 일종의 체험이다. 다만 그 특별함을 달성하기 위해 일상이 잉여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 뿐이다.



여행은 '좋은가'?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갈 때의 내 모습은 딱 그러했다. 대학생, 20대 초반, 여행, 유럽, 스페인, 경험 등, 다양한 키워드들이 내 여행을 멋들어지게 표현해 줬다. 꿈에 날개를 단 것처럼 이 스페인 여행은 내게 즐겁고 커다란 의미를 남기면 참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각종 매체에서 여행의 가치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걸 봐서 그런지, 이 기회에 '여행은 얼마나 좋은 건지 증명하리라'는 마음도 있었다.


막상 스페인에 도착하자 힘이 들어간 어깨와 눈, 소매치기를 걱정하는 불안한 손은 기대에 가득 찬 마음을 먹구름이 해를 가리듯 가렸다.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거리의 풍경들과 사람들의 생김새와 스페인어, 초단위로 느껴지는 문화의 차이. 난 분명 이 여행과 스페인이 좋기로 마음을 먹고 온 사람인데 막상 며칠을 있다 보니 가타부타 좋고 나쁨을 가리는 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한국에서 20년을 산 나는 한국이 좋아서 사는 게 아니라 한국이라서 살뿐이고, 외국 사람이라고 해서 그게 크게 다를 것 같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때부터는 노트에 적어둔 그 도시에 가서 꼭 해야 하는 버킷리스트들을 전부 삭제했다. 책방이나 디자인 전시, 문구류, 건축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맞게 여행을 커스터마이징 하기 시작하자 좋고 싫음이 아닌 그저 그 순간을 즐기게 됐다. 여행은 여행이었다. 좋고 나쁜 여행이 있는 게 아니고 그냥 여행이라는 행위 그 자체였다. 추후에 여행의 기억에 내게 좋게 작용한/나쁘게 작용한 이라는 딱지를 얹을 수 있을 뿐이었다. 결국 사람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더니, 문제를 문제로 보면 문제가 되고 문제를 그저 그러한 것으로 보면 그러한 것이 되나 보다.



다름에서 발견하는 나

다름에서 오는 즐거움과 좋은 마음은 계속 함께했다. 난 그 다름을 즐기고 도전하는 쪽이라서 그런지 다양한 나라로의 여행은 내게 늘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다줬다. 나라마다 다른 미학, 거리의 풍경, 문화의 차이들이 디자인으로 대변되는 경우가 많았던 까닭이다. 나라나 도시마다의 아이덴티티가 dna처럼 박혀있는 듯했다. 가령 스페인의 경우에는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도시일수록 패턴들이 화려해졌다. 그들에겐 모던보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르누보적이고 고전적으로 표현하는 게 많았다. 시드니의 경우에는 유럽과는 확연히 다르게 매우 도시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지님과 동시에 고전적인 건축들이 간헐적으로 존재한다. 그러한 헤리티지를 본받듯 포스터나 문구류, 패키지 역시 모던하면서도 다양한 색감의 일러스트들이 즐비해있었다.


그렇게 다름을 발견하고 '오 이거 참 좋다'라고 느끼면서 내 나라 한국의 디자인을 자연히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어떤 디자인을 참고했으며 그 레퍼런스가 나온 뿌리는 자연이랄지 문화에서 비롯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1차원의 한국이라는 세계에서 점으로 존재했던 나의 인습과 인식들이 2차원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점의 상태에서는 그저 아이가 양육되듯 좋다고 하는 모든 것들을 좋은 건가 보다 하면서 수동적으로 받아먹었다. 레퍼런스도, 글도, 지식도 별다른 분별없이 막 집어먹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문화라는 다른 점들을 발견하고, 내 점으로부터 그 점으로까지 발걸음을 옮겨보니 그제야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여행이란 과거의 나의 인식으로부터 독립을 하는 연습의 장이다. 다른 문화의 체험이라던지 각종 영감을 받는 장이 될 것이라고 한껏 기대하고 갔지만, 결국 얻게 된 건 더 선명히 보이는 나의 모습이었다. 타 문화 속의 디자인 답습이나 참고는 잠시 멈추고 한국과의 대비/대조를 해보니 누가 더 좋고 나쁨이 없다는 것이 보였다.



존재함. 그걸로 끝

모두들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동해서 각 나라에 포스터로, 명함으로, 서적으로, 디자이너로 존재할 뿐이었다. 난 내 디자인적인 감각이나 삶의 각각이 수직적으로 높아질 것을 기대했지만 결국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죽 넓어졌다. 그게 발전이라면 발전일 것이다. 여행이라는 삶의 도구가 이렇게 작용할 줄은 몰랐다. 난 그저 여행을 통해 즐겁고 행복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감사하게도 한국에서 존재하는 오늘 하루의 가치를 일깨워줬다. 한국에서 보내는 무료한 하루 역시 빛날 가치가 충분하다는 걸 알았다.


디자인의 기초원리는 점, 선, 면이라는 개념을 통해 시작한다. 여행이라는 고마운 수단을 통해서 1차원에 있던 과거의 점같은 나를 인식하게 되었고, 그 과거의 인습으로부터 독립할 유도선을 주었으며, 다른 점들은 좋고 나쁜 게 아닌 그저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다음 삶의 여정에서는 3차원의 면 속의 나를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반드시 등장할 것이다. 그게 어떤 수단일지는 모르겠다. 삶은 이렇게 우연히 내게 깨달음을 가져다주니 말이다. 다만 지금의 마음가짐처럼 겸손하게 타인과 나와 세계를 분별없이, 감사하게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오늘 당장 마법 같은 일이 없을지라도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걸 알게 해 준 삶에 감사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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