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싱크홀에 던져졌다

21살, 자취와 독립 시작

by 나경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는 나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부모님은 8살 때 내게 갑자기

"나경아 너는 성인이 되면 엄마 아빠가 당연하게 주는 혜택들을 갑자기 받지 못할 거야. 용돈도 안 줄 생각이야."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학교 끝나고 집 앞 분수대에서 친구들이랑 뛰어놀고 와서 오늘 있던 일을 얘기하다가 저런 얘기를 갑자기 듣다니. 그때부턴가 나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 것 같다. 오 세상에 고등학교 때까지 돈을 다 모아라 이건가? 이러면서 말이다. 서운하기도 했다.



자유 속 책임

부모님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모두 내가 선택하게 했다. 의사결정에 도움이나 조언은 주었지만 모두 나의 선택이었다. 주변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도 우리 집은 다른 집과 달랐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아시아 부모의 교육열' 이것도 나에게는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렸으니까. 성적표를 봐도 "공부는 너 자신을 위해 하는 거야. 네가 만족했다면 상관없어. 다만 절대로 절대로 엄마 아빠를 위해서 공부하지만 마. 그건 최악이야."라고 했다.


엄마 아빠는 단순히 학업성적을 위해 나를 학원에 보낸 적이 없다. 전부 다 내가 필요로 하다고 느껴서 요청을 해야만이 학원 수강을 얻어낼 수 있었다. 오히려 학원에 내가 가고 싶다고 조르고,

“아니야, 공부는 그렇게 수동적으로 하는 게 아니야” 라며 공부하는 것의 본질을 알려주었다. 선택과 책임이라는 가치 안에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것을 원하며 왜 원하는지를 끝없이 숙고하게 했다. 아주 부드러운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 숙고 안에서 나의 호기심이 파생되고 취향과 자아가 피어났다. 그리고 선택에 있어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독립적으로 해결하게 독려했다.


이렇듯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이 풀어놓고 자란 결과가 바른 아이가 된다는 것도 참 신기하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에게 친절하되, 나의 주관은 확실하게 가진 사람이 된 것 같다. 친절하게 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사람. 뭐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넘을 때도 있지만. 하하



오지 않은 미래마저 사랑해

특히 엄마 아빠는 어린 시절부터 동생과 나를 데리고 주말마다 박물관과 미술관, 식물원, 캠페인, 캠핑, 발레, 뮤지컬, 도서관, 영화, 음악회 등을 쏘아 다녔다. 엄마는 “우리 같이 여기 가자!”라고 항상 말했고 나는 거기에 응했기에 친구처럼 놀러 다녔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합쳐져서 나의 취향이 점점 생긴 것 같다. 그럼에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되면 이런 것들이 다 없어지는 거 아니야? 너무 싫은데.’라며 말이다.


그렇게 심판의 날은 다가오고, 결국 성인이 되었다. 내가 그때 되어야 안 사실인데 ’모든 지원을 끊을 생각이야‘라는 말은 진짜로 칼같이 끊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어떻게 나아갈지를 숙고하길 바라는 차원에서 했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단편적인 하루하루 커가는 나의 현재를 사랑하기도 했지만, 지금 보이는 모든 것을 넘어 이미 오지 않은 미래까지 날 사랑한다. 가족이니까. 영원히, 든든하고 영원한 나의 편이니까. 그렇게 정서적으로 독립을 시켜온 것이다. 사랑을 주고받기에 충분한 사람으로.


그리고 2022년 말에 집에서 나가서 혼자 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인진 몰라도 그때는 서운하면서도 싱크홀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운이 좋게 이런 풍요로운 두 사람 밑에서 태어난 내가 천수를 누리다가 갑자기 완전히 다른 미지의 싱크홀로 떨어진 느낌. 내가 누렸던 가족과의 즐거운 시간들은 이제 나 혼자만의 시간에서 감당해야 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고독해졌다.




난 혼자가 아니야

그렇게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뭐랄까 그때의 나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였는지, 물리적으로 다른 집에서 산다는 이유만으로 정서적으로 완전히 차단되는 느낌을 받았다. 하여튼 그건 찰나의 생각에 불과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 혼자만의 집. 반대로 생각하면 완전히 나만의 세상인 것이다. 취향과 생각이 더 단단해지고 자아가 완성되는 마지막 단계가 곧 자취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가 나를 싱크홀에 던져두고 ‘자 거기서부터가 밑바닥이거든? 알아서 이 위치 이상으로 올라와도 되고, 거기서 살아도 돼.‘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토끼굴에 떨어진 앨리스가 된 것 같았다. 중요한 건 엄마 아빠가 이 사회라는 싱크홀에 풀어놓고 떠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풀어준다는 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이 미지의 싱크홀 안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도와줘요! 이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소리치면 엄마 아빠는 머리를 빼꼼 내밀어 이야기도 해주고 가끔은 사다리도 건네주었다. 싱크홀에서 홀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해 주고, 가끔은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독립은 고립이 아니다

이렇듯 사회 속의 독립된 개체라는 것은 결국 배후에 정서적 연결이 있기에 작용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사랑받고 지지받는 사람임을 알게 해주는 가족들, 손을 뻗으면 도움을 줄 준비가 된 주변의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 모른다. 그렇기에 받은 것 이상으로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 이것들이 섞여 싱크홀 속에서도 따스함을 찾고 따스함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싱크홀에 나 홀로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가 아니다. 홀로 너무 힘들 때 들을 음악이 있다면,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친구들이 있다면 절대 혼자가 아니다. 지구에서 생을 살아가고 있는 한 난 고립될 수 없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