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가 돈의 무게 같던 자취 초반
22살 초입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홀로살이를 시작하며 용돈은 가족이 설정한 룰대로 받지 않기로 했고, 오직 월세만 지원받았다. 나머지 생활비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먹고살았다. 일주일에 13만 원 정도 벌어서, 월에 60~70만 원 정도를 벌었다.
혼자 살아본 적이 없으니, 공과금도 식료품비도 통신비도 어떻게 처리하는지 몰랐다. 어느 정도가 적정한 선인 지도 몰랐다. 불안한 마음에 최소한의 돈만 쓰기로 했다. 커피든 옷이든 사치란 사치는 전부 금지한 채 칩거생활을 했다. 그때는 코로나 팬데믹 시절이라, 밖에서 소비생활을 하는 건 허용되지 않는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돈을 아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긁어모으려 애썼다. 구글, 유튜브, 인터넷 커뮤니티, 인스타 불문하고 '자취 생활꿀팁'들을 노트에 빼곡히 받아 적었다.
100원 200원에 벌벌 떨어가며 느타리버섯 대신 값싼 팽이버섯을 먹고, 쌀도 20킬로를 한 번에 샀으며, 대용량의 값싼 식료품을 구매해서 삶을 영위했다. 살았다는 표현보다는 아무래도 영위 쪽이 더 맞는 표현 같다. 그 정도로 악착같이 불안에 떨며 돈 아끼는 데에 진심이었으니 말이다. 생활비 표를 만들어서 식료품/공과금/통신비/교통비/구독료/개인용 돈으로 돈을 나누고, 통장을 분할했다. 이때의 습관은 여전히 내게 유효하게 작용하여 삶의 밸런스를 잘 맞추게 도와주고 있다.
인간은 역시 갖은 수고를 겪어봐야 스스로를 알게 된다 하던가. 팽이버섯은 폭싹 썩고, 절반쯤 비워낸 쌀포대에는 곰팡이가 앉았다. 여름과 겨울에는 더위와 추위를 견디다시피 하니 녹초가 되었다. 집의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척박한 공장 같았다. 삶의 공장.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나의 동력은 저축이었다. 60만 원가량을 벌어서 한 달에 40만 원 정도만 사용하고 차곡차곡 20만 원씩 모았다. 일 년 반정도 그렇게 열심히 모았다. 어릴 때부터 모아둔 세뱃돈과 용돈들을 합치니 600만 원은 족히 되었다. 자린고비의 심정으로 현재를 인내하고 쌓여가는 곳간을 보며 매일을 살아냈다. '너 정말 대견하다'라는 말이 내겐 독이 든 성배와 같은 말이었다. 그럴수록 더 헝그리정신에 찌든 나 자신을 몰아붙였던 까닭이다. 더 알뜰해야, 더 많이 모아야 괜찮게 살아가는 20대 건실한 청년이라는 인정을 받을 것 같았다. 비틀어진 인정욕구는 현재의 내 행복을 앗아간 채 무엇이 될지 모를 공허한 미래만을 바라보게 했다. 아무렴 지금의 난 그때의 나를 동정하고 연민한다. 그런 박복함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거가 있기에 현재의 충실함과 행복의 가치를 알게 되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돈을 모으는 것 자체에만 흥미를 가진 나머지 이 돈을 어떻게 운용할 지에 대한 목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해외여행에서 늘 수많은 감정과 가능성을 바라본 나는 이 돈은 곧 여행을 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비용이라 생각하며 저축했다. 100원에 벌벌 떨던 자취생은 여행에서 만큼은 채찍을 내려놓고 설정한 여행비용 내에서 한도껏 즐겼다.
돈이란 늘 가능성의 씨앗이었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잘리게 되더라도 몇 달은 버틸 수 있는 가능성, 여행을 갈 수 있는 가능성,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 처음엔 가능성이라는 말 자체가 크게 들려서 돈을 사용하는 것엔 굉장한 대의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자린고비 같은 내 마음을 달래서 납득할 수 있었다. 여행을 가서 쉼과 휴식이라는 가치를 알게 되자 하루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늘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미래에 다른 가능성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이번 한 번의 여행을 위해 이 많은 돈을 쓰는 게 올바른 선택일까 고뇌한다. 그럴 때마다 책이나 유튜브에 나오는 강연이나 부모님과 이야기를 한다. 사실 답이 이미 정해진 문제다. 가고는 싶은데, 나중에 다른 일이 생기면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이야기니까 말이다. 할까 말까 할 때는 일단 시도하는 게 낫다는 걸 매 여행을 통해 깨닫는다. 처음엔 가치 있는 돈 사용이 여행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나마 여행에 쓴 돈이라고 한다면 '아 그랬구나'하며 스스로의 검열을 피해 넘어갔으니까.
어느 순간 내게 소비란 두려움이 되었다. 돈을 쓰는 게 특정한 목적이나 납득 가능한 이유가 없는 한 죄악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목적 없는 저축에 너무 많은 에너지 소모를 하고 있었으므로, 돈을 쓰는 건 가능성의 씨앗을 내팽개치는 일인 양 생각했다. 현재의 나를 챙기는 나머지 미래의 나를 저버리는 기분. 단지 오늘 하루를 참아내면 될 일인데 왜 굳이 돈을 쓰느냐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행복욕구의 시한폭탄은 결국 터졌다. 너무 억울했다. 행복하고 잘 먹고 잘 살자고 저축도 하고 살아가는 건데 현재의 내 방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커피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식료품도 없었다. 거울 속의 나는 그저 '알뜰하게 살아가는 청년'이란 명패 뒤에 숨은 우울한 쥐새끼였다. 당장 추워 죽겠는데 보일러를 틀지 못하는 얼어붙은 손가락이 야속했다. 그렇게 나는 현재의 우울은 미래의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미련한 인내는 미련한 인내일 뿐, 이를 통해 보상이 꼭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그렇게 위대한 반란을 시작했다. 오늘의 집에 들어가서 예쁜 침구와 조명, 소품들을 스크랩했다. 생활비 표를 다시 들춰보고 '저축'목록을 삭제했다. 3년 정도 홀로 살아보니 아르바이트비 60만 원은 오롯이 한 달 생활비로 써야 만족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이전까지는 소비의 기준이 삶의 필요였다면, 행복하되 감당 가능한 선인가를 기준으로 전환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나는 어떨 때 행복한가'를 디테일하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가령 파스타 면 하나를 사더라도 가격은 좀 나가지만 이 브랜드를 사야 맛있다는 걸 알았다. '왜 더 싼 게 있는데 사지 않는 거야?'라는 질문에서 벗어나서 '난 이런 맛이 좋아, 난 이걸 이렇게 해 먹을 때 기분이 좋아'라고 낡은 사고의 틀에 붉은 딱지를 얹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검열에서 벗어나고 삶의 궤도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체화했다. 이렇게 해야 기분이 좋다는 것이 곧 삶을 사는 동력이자 소비의 이유가 되니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 피어났다. '난 이 정도 해도 돼. 난 이 정도로 기분 좋을 가치 있어.', '스스로에게 이 정도 할 여유는 있어'라고 선언하면서 점점 단단해졌다. 모든 게 값비싸고 럭셔리할 필요는 없지만 동경하고 좋아하는 이미지를 삶 안에 구현하는 건 문제가 아니게 됐다.
가격표와 가격 비교를 통해 돌아가던 삶은 어느새 이런 게 더 좋네, 아 이거 새로 해보니까 재미있네 라며 추상적인 행복의 가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안 하던 일도 적극적으로 시도해보고 있다. 자취 생활비의 적정선 찾기란 결국 돌고 돌아 맞는 방식을 찾게 되어있다. 나의 경우에는 편의점 알바와 함께 아주 극단적인 자린고비부터 시작을 한 케이스다. 아주 춥고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빈곤이 주는 알뜰함이라던지 착실함과 같은 메달을 훈장처럼 생각하며 '이 정도면 잘 사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건 너무 많은 타인의 정보를 참고한 나머지 얻게 된 비틀어진 인정욕구였다. 그렇지만 그 비틂을 경험해 봤기에 삶이라는 대장간 안에서 단단해지고 올곧게 펴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월세마저 스스로 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완전한 독립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래서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이너라는 꿈을 위해 달려 나가고 있다. 요즘은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고 공고를 알아보고 있다. 돈, 돈, 돈. 정말 많이도 이 녀석 덕분에, 이 녀석 때문에 울고 웃었다. 이 녀석을 완전히 내 친구로 만들기 위해 월세마저 책임을 지고 삶의 무게를 여실히 느껴보련다.
나의 독립을 위해, 나의 행복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