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이 닿는 곳마다 물음표 던지기
지금으로부터 3년 전, 2학년을 마치고 휴학에 돌입한 나는 집에서 쿨쿨 잠들다가 일어나서 집안일을 하다가 차를 마시다가 영화를 보는 것을 반복했다. 유튜브나 영화나 책을 계속 소비하고 시간을 계속 보내는 기분은 마치 음식을 계속 먹기만 하는 만화 캐릭터가 된 기분이었다. 배가 부른데도 계속 허겁지겁 지식과 세상을 먹어대는 나. 지금처럼 계속 지식과 영감만 우격다짐으로 매일매일 집어넣었다. 그럴듯한 성과도 없고, 상대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듯한 지금은 결국 무쓸모한 시간이 될까 라며 자조했던 기억이 있다. 한 분야에 정통해지고자 한다면, 그게 창작에 관련된 것이라면 나의 것을 계속 생산하는 입장 이어야 할까? 지금 당장에는 생산할 거리도 없고 그럴 마음도 잘 안 드는데.. 라며 번민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스펙이든 성과든간에 생산량의 정도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던 것같다. 인풋이 없는데 아웃풋이 나올리 없으니까 말이다. 세상을 탐험하고 영화를 보고 시각적 영감을 받는게 더 중요했고 즐거웠다. 베짱이같은 일련의 시간들에 변호를 하자면 (여전히 놀고 구경하는 걸 제일 좋아하지만), 어떤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을 인용하고싶다.
"디자인 잘 하고싶으면 말이야, 별거 없어. 계속 관찰해봐. 디자이너들 포트폴리오, 웹사이트, 애플, 삼성, 스튜디오 가리지 말고 다 보고 다 따라해봐. 그리고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를 생각해봐. 애플 웹사이트 한 번 같이 볼까? 자 어때보여? 나는 보기만 해도 너무 사고싶어. 근데 이 감정이 어떻게 나온건지를 한번 봐봐. 그리고 다 따라해봐 자간, 행간, 레이아웃 토씨하나 빠뜨리지 말고 똑같이 따라해봐. 그게 제일 빨리 감이 느는 방법이야."
훌륭한 아웃풋 하나가 나오기 위해서는 위대한 인풋 100개가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이 들었는데, 디자인을 접해보면 접해볼수록 정말로 맞는 말이었다. 툴 실력은 기본이요, 어떻게 해야 의도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반추하다보면 디자이너들의 뇌를 이식받는 셈이었으니까. 글을 잘 쓰고싶다면 책을 많이 읽는게 도움이 되듯이, 디자인역시 별반 다른 일이 아니었다. 여전히 그 교수님이 남기신 수많은 어록들과 가르침은 소중히 저장되어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표하고싶다.
완전히 자유주제로 시각디자인을 해야하는 과제가 있었다. 우선 개인 프로젝트이다보니 의뢰인도 나, 제작자도 나였다. 그때는 한창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많이 관람하던 터라, 흥미로운 주제를 하고싶었다. 그래서 정한 주제는 '500년 후'였다. 과거에 늘상 쓰이던 물건들을 현대의 우리가 곡해해서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어릴 때부터 생각해왔다. 이를 확장하여 현대에 우리가 널리 쓰이는 물건들을 500년 뒤의 미래에서 재해석해서 전시를 한다고 했을때의 곡해를 시각적으로 풀고싶었다. 가령 에어팟을 '콧구멍에 꽂아서 효과적으로 기관지 보호를 하는 호흡 보조장치'로 해석하는 상상을 가미했다. 그렇게 60개의 물건 리스트를 뽑고 도록과 포스터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낯설게 세상을 바라보는 건 아주 널리 알려진 디자인 감각을 키우는 방법이다. 다만 이 말을 처음 들을 때는 아주 의아한 생각들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이미 쓰임새도, 용도도 다 알고있는 예측가능한 세상 속에서 낯설게 보기란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앞선 예시와 같이 용도만을 달리 해석해야할 이유는 없지만, 낯설게 보기는 결국 관찰력과 시각적 문해력을 키우는 보조장치로 기능할 때가 많다. 세상을 향해 '왜 저렇게 생겼을까', '왜 이렇게 제작했을까' 라며 끝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과학적 호기심에 비해서는 매우 추상적인 발상법이다. 일단 호기심에 대한 정답이랄게 명확히 없고 개인의 주관이 50% 이상 개입하며 그 해석이 '난 이래서 이랬다고 생각해' 하는 자기확신으로 이어지니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디자인 감각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는 정답 여부에 관계없이 다양한 방향성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는 것이다. 시각적 결과물에 대한 이유와 논리를 다양한 관점으로 열거 할 수록 시각적 문제해결력(디자인 감각)이 향상된다.
어떤 한 문제를 보고 다양한 문제해결 방법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곧 앞선 두 훈련이다. 관찰과 낯설게 보기가 단순한 사고 실험에 그치지 않으려면, 결국 질문을 정리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디자인에서 감각이란 막연한 취향이나 직관이 아니라, 관찰을 통해 쌓인 질문들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버리느냐의 문제에 가깝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어떤 웹사이트를 보며 예쁘다고 느꼈다면, 그 감정을 그대로 두지 않고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분해해보는 일이다. 여백 때문인지, 정보의 위계 때문인지, 타이포그래피의 호흡 때문인지.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정답을 맞히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해석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디자인 작업에서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일 역시 질문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 브랜드는 왜 이런 톤을 선택했을까, 이 레이아웃은 어떤 행동을 유도하려는 걸까, 이 시각적 선택이 문제 해결에 정말로 기여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질문을 붙이다 보면 감각은 더 이상 막연한 재능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사고 방식에 가까워진다.
감각이 느껴지는 것이라면, 디자인은 그 감각을 설명 가능한 판단으로 옮기는 일이다. 관찰과 낯설게 보기가 충분히 축적되었을 때, 그 질문들은 자연스럽게 작업의 기준이 되고 우리를 다음 선택으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