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행동 패턴에 대한 고찰
옷만큼이나 일상생활을 함께하는 물건이 있다면 그건 침대와 책상일 테다. 책상의 경우에는 하체와 상체는 사라지고 눈앞의 시야만 남는 곳. 앞을 바라보며 나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곳이고, 침대는 휴식을 하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책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에게는 일종의 책상 결벽증이 있다. 일에 필요한 물건이 아닌 이상 네모반듯한 작업공간 위에 불필요한 물건이 올라오는 걸 몹시 꺼린다. 그래서 책상 위에는 마우스패드도, 소품도, 책도 없다. 일을 할 때의 행동패턴을 생각해 보고 데스크테리어를 설계하는 게 참 재미있다. 가령 공부나 일을 할 때 늘 필요한 필수 아이템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언제든 볼 수 있는 메모지 한 장, 언제든 생각이나 일의 구조를 정리할 수 있는 무지노트, 폰트패밀리처럼 두께가 각기 다른 각종의 검은 펜들, 그리고 형광펜 2종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할 노트북 하나.
일단 모든 업무를 할 때에는 첫 번째로 머릿속에 일의 구조를 그려보고 해야 할 차례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걸 숭덩숭덩 파트를 나눈 후에 주의 단위, 오늘 할 일의 단위로 치환한다. 그렇게 오늘 할 일중에 처리해야 하는 일부터 시작을 한다. 그러다가 가끔 막히는 일이 생기면 즉시 책상 위의 무지노트를 꺼내서 어디서 어떻게 막혔는 지를 알기 위해 지금 당장 이해하고 있는 구조를 굵은 펜으로 적어보고 얇은 펜으로 분석하며 빠진 나사를 찾는다. 이렇게 해도 모르겠으면 AI의 도움을 받는다. 그렇게 알아낸 일의 구멍들을 메모지 한 장에 적는다. 그렇게 '빠진 나사 모음집'을 만든다. 대부분 이 빠진 나사들은 지금 당장은 해결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할 일을 마무리하고 조금씩 해결해 나간다. 그래서 늘 잘 보이는 곳에 컴퓨터 사인펜으로 아주 간략하게 써놓는다. 그래도 빠진 '나사' 정도의 작은 일이라서 시간이 좀 흐르고 팀원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대부분 해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일들은 머릿속에 저장해 놓는 정도로 한다. 아주 큰 문제였다면 맨 첫 단의 일의 구조파악 단계에서 보였을 테지만, 이 정도의 사소한 불량품 나사들은 내 집요한 결벽성에 기인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사소한 문제이 가득 쌓여 불량품 나사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 '이건 정말 고쳐야겠군'의 수준이 되기도 한다. 근데 그걸 위해서는 일의 구조적 변혁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상황 같다고 판단하면, 그냥 AI와 이에 대해 떠들면서 '그래 이런 방법으로 일을 해본다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지' 정도로 흘려보낸다. 이와 같은 업무 프로세스는 몸에 밴 습관이다. 그래서 이 프로세스 내에서 꼭 필요한 아이템이 아니라면 굳이 책상에 뭘 올려놓는 게 유쾌하지 않다. 심지어는 음료 캔, 물자국, 각종 선, 당장은 불필요한 문서, 소품, 심지어는 마우스패드까지 말이다. 이건 일을 할 때나 공부를 할 때나 요리를 할 때나 똑같다. 책상에 지금 당장 필요한 물건이 아닌 게 올라오는 건 무척 고역이다.
책상 결벽증의 기원은 이러하다. 부모님은 늘 집을 깨끗하고 간결하게 유지하는 것을 선호해서 내 기억의 주말 아침 우리 집 풍경은 늘 청소로 시작했다. 그러니 우리 집 대부분의 물건에게는 제자리가 늘 부여되어 있어서 시각적 혼돈이 딱히 없었다. 리모컨도, 각종 약도, 식료품도, 신발도 늘 정리되어 있었다. 병적인 수준은 아니고 딱 보기 좋은 이케아 쇼룸처럼 깔끔함의 수준이어서 부모님은 삶에 있어 성실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깔끔쟁이 dna가 내게 넘어온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마침 내가 예체능을 하고 감각에 예민한 아이었어서, 특히 일을 할 때 깔끔의 정도가 극심해진 것이다. 깔끔을 넘어 '필요하지 않다면 모두 보이지 않게'의 룰을 적용하여 산다. 우스갯소리로 책상 결벽증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사실은 이 부분을 매우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의 깔끔쟁이 dna가 있었기에 방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힘이 길러졌고, 나아가 일의 구조를 정리하고 처리하는 힘을 생성했으니 말이다. 성실함에 감사하게 되는 밤이다.